선진국의 클래스
런던 유학 시절, 놀랄 만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런던 '피카델리 서커스' 정거장에서 목격한 일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알바를 하러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고 있었다. '피카델리 서커스'는 시내 한가운데 1 존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역 중에 하나이다.
어김없이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운이 좋게도 자리를 차지한 나는 멀뚱멀뚱 지하철 문을 째려보고 있었다.
곧이어 한 시각 장애인이 지하철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에 올라탔다.
"Alright Mr.Smith. Bye." 역무원은 자신이 내 준 한쪽 팔을 내리며 Mr.Smith가 올라타는 것을 지켜봤다.
정거장 어떻게 내리려고 하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난 속으로 혹시라도 못 내리면 나라도 가서 도와줘야 하나? 문 앞 틈이 엄청 넓은데 발이라도 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과 함께 그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3 정거장이 지났다
Mind the Gap! Mind the Gap Please! 틈을 조심하세요!
런던 지하철답게 혹시라도 내리면서 발이 틈에 낄까 귀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방송이 울려 퍼졌다. Mr. Smith 씨가 일어나더니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이 열리자 어떻게 알았는지 문 앞에 서있던 역무원은 큰 소리로 말했다.
Good evening, Mr. Smith!
역무원은 자연스럽게 한쪽 팔을 내밀었고 Smith 씨는 자연스레 그의 왼팔에 본인의 오른팔을 올렸다.
그 둘은 유유히 사라졌다.
무전기! 그렇다. 피카델리 서커스에서 Smith 씨가 타자마자 그 역무원은 무전기로 어디론가 연락을 했었다. 연락을 받은 역무원이 Smith 씨가 내려야 할 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은 Smith 씨의 팔을 잡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당연하고 자연스레 자신들의 한쪽 팔만 올렸다. 그리고 Smith 씨는 그 팔을 살며시 잡았다.
지하철역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재촉하거나 먼저 내리려고 서두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Mr. Smith가 내리는걸 뒤에서 지켜봤으며 역무원의 팔을 잡고 내리는 걸 본 후에야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런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런던에선 아주 많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쇼핑몰에서, 마트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자주 보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겐 필요 눈여겨보지 않았던 여러 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1. 런던 길은 턱이 없다. 턱이 있다 한 들 쉽게 지나갈 수 있거나 그냥 지나가던 사람들이 당연히 밀어준다.
2. 버스는 휠체어 리프트를 갖추고 있다.
3.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가장 신기했던 일은 3번이다. 흔히 말하는 양아치 부류들, 인종차별적인 막말을 쉽게 해 대는 10대 들 조차 그들을 재촉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만약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과연 사람들은 휠체어 리프트를 내리고, 올라타고, 다시 휠체어 리프트를 올리는 그 짧지만 긴 시간을 기다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