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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미 Nov 13. 2019

#3. 시누이가 된 며느리

나는 어떤 시누이일까?

 언젠가 동생과 대화를 하다 동생이 불쑥 이런 얘기를 꺼낸다.


"누나가 외국 살아서 다행이다."

"왜?"

"니 성질에 ㅇㅇ을 가만뒀겠어?"


내 남동생은 나보다 한 살 어리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죽도록 싸웠고, 몸이 약했던 내 동생은 항상 나에게 두들겨 맞았다. 동생이 보는 누나는 성질 더럽고 시끄러운 사람이다. 매형이 어떻게 내 성격을 맞추며 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 네가 뭘 알겠냐 내 속사정을!'


SNS에 올라오는 시댁 식구와의 일화를 읽을 때마다 난 언제나 며느리의 입장에서 읽었다. 당하는 며느리들이 불쌍하고, 시도 때도 없이 이간질하는 시누이들은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사람들이라며 욕을 했다.


'이런! 천하에 못된 시누이라고! 아주 시어머니가 안하무인이구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시누이이다. 난 어떤 시누이일까? 그리고 혼자 내린 결론은, 그냥 연락 안 하고 안 보고 사는 내가 그나마 괜찮은 시누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외국에 살고 있어서 1,2년에 한 번 한국을 방문했고, 밖에서 외식 한 번 하는 게 다였다. 우리는 그 흔한 '가족 카톡방'도 없다. 나는 올케의 SNS를 알지 못하며, 그녀에게 따로 연락해본 적도 없다. 우린 적당히 선을 긋고 사는 관계이고, 연락할 일이 있으면 동생에게 직접 한다. 항상 그래서 난 꽤 괜찮은 시누이라고 생각했었다.




우연히 몇 년간은 설에 한국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가족도 조촐하기에 명절엔 엄마가 음식을 다 해놓으면 동생네는 엄마 집에 들러 차례를 지내고 3시간 후 바로 친정으로 떠난다.


"이번 명절 음식은 내가 할게. 제사 음식도 내가 할 테니 너네는 와서 그냥 밥 먹고 가."

"진짜? 그래도 돼? 난 누나가 있어서 음식도 같이 해야 하나 했지."

"제사는 정성이지... 뭘 거창하게 해.. 그냥 딱 6인분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난 시장에 가서 최소한의 과일과 재료를 사서 음식을 했고, 명절날 아침 동생 식구는 차례를 지내고 밥을 먹었다. 늘 그렇듯, 내 동생은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를 봤고, 올케와 나는 아주 당연하게 설거지를 했다. 벌러덩 자빠져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야! 이 설거지 네가 해."

"내가 왜? 나 하기 싫어, 누나가 해."

"네가 해! 음식은 내가 했으니 네가 설거지하라고! 좋은 말 할 때 싹 치워라."

"아이고 무서워라, 늬에늬에."


내 동생은 눈을 부라리는 나를 보며 마지못해 설거지를 했고, 깔끔 떠는 동생의 성격에 걸맞게 아주 뽀독뽀독 소리나도록 그릇을 닦았다. 그런 아빠가 재밌다는 듯 조카는 깔깔깔 웃었다. 내 동생이 평소에 얼마나 벌러덩 누워 있었는지 상상이 가는 상황이었다. 동생네는 밥을 먹자마자 친정으로 떠났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서운한 감정이 몰려왔다. 아침 세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껴졌다. 친정에 가니 즐거운 올케 보다도, 명절에 혼자 있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만 혼자 음식을 하고, 밥 한 끼 먹고 보내면 다시 혼자가 되는구나. 아빠도 없고, 나도 없는 한국은 이렇게 세 시간의 즐거움으로 끝나는구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 역시 이렇구나.




내가 동생과 연락을 하는 건 일 년에 단 한 번이다. 서로의 생일에 축하 메시지 하나, 그것이 우리의 소통이다. 꼭 만남을 많이 가져야 가족애가 생겨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고 있고, 서로 잘 지내고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살아갔다. 동생네와의 만남은 난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을 떠나기 전 잠깐 만난 동생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ㅇㅇ이가 우리 집은 콩가루 집안이래."

"왜?"

"이렇게 모임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가족은 처음이래."

"그게 무슨 말이야?"

"ㅇㅇ이네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밥 먹고, 가족 카톡방도 있고 연락도 자주해."

"야! 우리가 안 만나고 싶어서 안 만나니? ㅇㅇ가 불편할까 봐 안 만나는 거지! 걔는 가족 단톡 방을 우리랑 같이 열고 싶다니?"


동생네 부부는 이른 나이에 아이를 가졌고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는 다 힘들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엄마, 유학을 떠난 나, 아직 초짜 신입이었던 동생. 동생 부부는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고, 엄마는 몇 달에 한 번 돈을 모아 가전제품을 하나씩 사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올케는 항상 말했다. '가진 거 없이 시작해서 인생이 고달프다고.' 남들은 시댁에서 대출받아서 집도 사주고 손주 학원도 끊어주는데 자기는 돈이 없어서 아이 발레 콘테스트도 보내지 못한다고.' 한 번 씩 만난 자리에서 그저 신세 한탄하듯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 우리는 죄인이 되었다.


선을 긋고 사는 관계가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했다. 나의 시누이도 1년에 한 번보면 반가웠다. 그것으로 족했다. 그런데 문득, 난 어떤것을 더 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동생이 아무생각 없이 툭 내뱉는다.


"ㅇㅇ이가 엄마한테 엄청 섭섭했대."


다음편 [#4. 시어머니가 된 친정엄마]


Photo by Leon Bis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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