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날씨에도 병원 로비를 걸어가는 내 몸은 덜덜 떨렸다. 서연이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찾아가기까지 수백 번을 고민했다. 내가 서연이 얼굴을 볼 자격이 있는 건지, 아직 우리가 서로에게 친구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멸균한답시고 들이부은 것만 같은 소독약 냄새와 하얗고 파란 인위적 빛들이 꼭 나를 취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가 여길 온다고? 네가? 땅 밑에서 누군가가 내 두 다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만 같다.
서연이가 입원한 병실은 8층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나는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흰 가운을 입고 굳은 얼굴로 뭔가를 설명하는 의사들,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뛰어다니는 간호사들, 잘잘못을 따지며 목소리를 높이는 보호자들이 시야에 걸렸다. 어떤 얼굴은 단호했고, 어떤 얼굴은 눈물범벅이었으며, 어떤 목소리는 화가 나 있었고, 또 어떤 목소리는 처참하리만큼 애절했다. 질서와 혼란, 위압과 위안, 경멸과 위로, 믿음과 불신이 병원이라는 한 공간 속에 응축된 듯 했다. 그리고 그건 마치 너와 나를 보는 듯도 했다.
조심스럽게 병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연이가 누워 있었다. 나는 들이쉰 숨을 내뱉지도 못하고 다리를 질질 끌며 침대 앞까지 걸어갔다. 내가 다시 숨을 쉰 건 천천히 들썩거리는 서연이의 가슴을 보고 난 뒤였다.
“서연아, 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해.”
배꼽 앞으로 두 손을 움켜쥔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는 역시 말이 없다. 깨어나지 못한 네가 대답할 리 없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도 나는 흠칫한다. 나와 너 사이에 지나가는 찬바람은 우리의 마지막 날과 지나치리만큼 똑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서연을 바라봤다. 서연은 두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서연의 모습 중에 가장 편안해 보이는 듯도 했다.
“네 말대로 했어야 했나 봐. 네가 절교하자고 말했던 날, 어쩌면 그때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는 좋은 날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체념 섞인 고백이 입 밖으로 비어져 나왔다. 서연이의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듣자 마음이 뻐근해졌다. 사랑이니 우정이니 하는 것도 해 본 사람이나 할 줄 아는 거지. 나 같은 놈은 그게 뭔지도,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른 채 교통사고 당하듯 치른 기분이다. 그러니 지금 이 사달이 난 이후에도 어떻게 수습하고 치료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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