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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그들에게 축배를

바람이 우는 소리를 들어보셨는지요

  해풍에게

  해풍, 지금 서울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와 눈이 섞여 내리는 걸 진눈깨비라고 하지요 아마. 이런 날은 고등학교 시험 치러 가던 때가 생각납니다. 제 학년부터 중학교는 ‘뺑뺑이’를 돌려 무시험으로 입학을 했고, 고등학교는 제 학년까지 시험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때 서울과 일부 대도시에선 이미 고등학교도 무시험 제도를 시행할 때였지요. 일명 ‘박지만 세대’라는 명칭으로 우리 ‘58 개띠’들은 가슴에 노란별을 붙인 유태인(?)처럼 분류되었답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자란 저는 고등학교 시험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사지 선다형의 정답이 모두 삐딱하게 인쇄되어 있었지요. 그 희대의 입시 부정사건으로 아마 교육감이 자살을 한 걸로 기억됩니다. 해풍, 입시 추위라고 아시지요. 멀쩡하던 날씨도 입시 날만 되면 동장군이 적군처럼 쳐들어오곤 하지 않습니까. 그 시절은 또 왜 그리 추웠는지. 그런 강추위 속에서 두 번씩이나 입학시험을 쳤으니, 대구 ‘58 개띠’가 아마 전국에서 가장 팔자가 세지 않나 생각됩니다. 


  재시험을 치러 가는 날, 버스에서 내렸을 때입니다. 길바닥에는 진눈깨비가 녹아 흙탕 얼음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습니다. 그 얼음물에 발목까지 빠진 채 시험을 치러 갔습니다. 그 날 일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때부터 아마 제 삶이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진눈깨비처럼 질척이는 삶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진눈깨비는 그 예전의 진눈깨비처럼 질척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 천천히 땅을 적시다, 이윽고 하얗게 쌓이고 있답니다. 어쨌든 눈이 내리면 설레 입니다.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올 것 같고, 혹은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누군가는 첫사랑이었던 사람이면 제격이겠지요. 막연한 그리움과 설레임을 남기고 떠난 첫사랑 말입니다. 아아, 이런 센치함도 없다면 다 살은 거겠지요. 


  4.19, 5.16, 월남전, 10.26, 12.12, 5.18...... 숫자만 나열해도 속이 울렁입니다. 하도 격동적인 세월의 파도를 타다보니 제 주위의 58 개띠들은 ‘허무주의자’가 아닌 친구가 없습니다. 그 중 봄이면 화들짝 핀 철쭉과 밤 새 대작을 하는 도연명 같은 친구도 있습니다. 생(生)의 비밀을 아는 자만이 자연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겠습니까. 生이라는 단어에는 어쩐지 비극의 냄새가 배여 있습니다. 그 친구는 어쭙잖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지리산으로 도망을 갔는데, 피아골에서 잡혀 그대로 군에 끌려갔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존재감에 시달렸으며 그 친구의 아이디는 ‘beman’입니다. 그 친구가 가르쳐 준 이태리 산 흰 포도주 ‘모스카토’를 한 잔 가득 담아 왔습니다. 아주 감미로운 술입니다. 차가운 모스카토가 제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해풍, 저는 지금 창밖의 오동나무에 쌓이는 눈을 슬쩍 훔쳐보며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해풍, 잘 지내시지요? 저는 봄에 낼 작품집 원고정리를 막 끝냈습니다. 사랑과 강물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 제가 일전에 한 말 생각나는지요. 언젠가 제게 문학의 신이 있다면 이렇게 문학을 사랑하는 너를 정말 예뻐 할 것 같다고 해풍이 한 말 혹 기억하시는지요. 그 때 전 눈앞이 펑 붉어져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답니다. 사랑이 길을 잃는 법은 결코 없지요. 물리적인 방해 요인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파랗게 타오르는 게 사랑의 속성 아닙니까. 또한 강물이 제 길을 잃어버리는 법도 없답니다. 전 늘 모든 사람들이 강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아무리 물꼬를 다른 곳으로 돌려도 물은 제 갈 길 찾아 거친 벌판을 지나 혹은 사막을 지나 이윽고 바다에 이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없이 고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일은 눈물겹고 경건하지요. 그들은 호들갑스럽게 힘들다고 파도를 일렁이지도 않으며, 속으로 고행을 삭히는 수도자들의 만행처럼 조금씩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외운 국민교육헌장을 지금도 달달 외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지만 조개탄을 넣은 난로 가에 앉을 수가 있었으니까요. 그 헌장을 다 외우지 못한 순이는 추운 겨울 날, 그걸 외울 때까지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목조 건물에 남아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순이는 안타깝게도 끝까지 그 헌장을 못 외웠고, 선생님은 끝까지 순이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순이는 충농증이 있어 기억력이 떨어지는 아이였습니다. 그 순이는 고등학교 땐가 자실을 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동네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충농증이 뇌로 들어가 정신병력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인지 알 수 없으나, 가끔 눈이 영화 ‘길’의 젤소미나처럼 큼직하던 순이가 생각납니다. 그 눈에는 언제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어려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마 순이는 고등학교 때 입시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이 오지 않나 생각됩니다. 한 때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던 순이의 명복을 새삼 빌어 줍니다.


  사람에 따라 외우는 것을 잘 못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획일적으로 그 국민교육헌장을 악착같이 다 외우게 한다는 건 어쩐지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 때부터 제게 반항의 눈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중학교 때는 한자교육을 폐지해 글쟁이가 된 지금 저는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개구리처럼 얼룩덜룩한 교련복을 입고, 키가 큰 저는 기수로 차출이 되어 로봇처럼 행진을 했습니다. 학교 전체 학생이 저를 기준으로 운동장을 돌았지요. 저는 제자리걸음으로 돌기만하면 되었습니다. 그런 군사훈련이 이상하게 수치스러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학에 들어가자, 유신 계엄령으로 도대체 공부를 제대로 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대학 3학년 때인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비극적 종말을 맞았고, 4학년인 1980년 5월에 저는 교생실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전하는 무서운 소문이 진실이 아니길 빌었습니다. 5, 6공 군사정권을 거치는 동안 저는 심한 자괴감과 죄책감으로 명치끝에 무거운 추를 달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그 추의 진동으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아십니까? 살아남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하는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결혼을 막 한 저는 그 때 아들을 업고 서성이며 민주화에 몸을 던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데 절망하고 또 절망했습니다. 


  몸에 신나를 뿌리고 이십 층 도서관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어 가는 후배들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바퀴벌레처럼 방안에 웅크리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환한 햇살을 볼 자신이 없었지요.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입니다. ‘크로버’ 수동 타자기로 ‘글자’를 찍기 시작한 것이. 감히 펜으로 세상을 제패하려 들다니,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글자라도 찍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불안은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다시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지금까지도 제 등에 들러붙어 절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 허리를 펴고 불안이 저만큼 물러갔나 하고 한 숨 돌리는 사이, IMF라는 거대한 파도가 58 개띠들을 덮쳤습니다. 우리들의 나이 사십 세 때 일입니다. 그 때 또 다시 엎어진 친구들은 지금 ‘살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는 자조적인 허무의 노래를 부르며 소주를 마십니다.


  해풍, 골짜기 세대라는 말을 들어 보셨지요. 단위를 크게 나누기도 하지만 전 아주 작게 나누고 싶습니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렇습니다. 저의 오빠가 56년생인데 오빠의 사고는 저와 열 살은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처럼 보수적이고 약간의 권위적인 면도 있어 두 살 터울인데도 요즘은 아버지 보다 오빠가 더 무섭습니다. 다시 말해 오빠는 아버지 세대와 비슷한 사고를 하고, 60년생부터는 386세대(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을 한 세대)라는 묶음으로 분류됩니다. 386세대의 묶음에 비해 58개띠라는 매듭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은 민주화를 이끈 주역으로 인정받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습니다. 언론에서 386세대에 관한 기사를 가끔 전면에 다룰 때마다, 우리 58개띠들은 묘한 소외감을 느끼고는 합니다. 


  아버지 세대와 386세대 사이에 끼인 58년생들은 골짜기처럼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어 부평초처럼 떠돕니다. 그 당시 유달리 변화가 심했던 교육 제도와 행정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58 개띠들과 소주를 나누어 먹고 노래방을 한번 가 보셨는지요.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소주 먹는 모습을 눈여겨보십시오, 얼마나 눈물겨운지. 한 인간, 한 인간이 한 삶 살아내는 일이 고행 아닌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끝없는 파도에 말려 숨 돌릴 틈도 없이 격동의 세월을 견딘 그들이야말로 가장 구도자 같은 모습입니다. 


  어느 역술가가 그랬다지요. 우리나라 58 개띠들은 다 ‘중팔자’라고. 제 운명이 하도 궁금해 물어보러 다니다가 결국 명리학 공부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삼아 ‘역학 연구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은 거의 생업 수준입니다. 명리학으로 보면 무술(戊戌)생은 모두 괴강살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괴강살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성격이 강폭하고 맹렬하며 권위와 위엄이 당당한 살을 말하는데, 사주가 양호하고 일주에 괴강살이 있으면 대권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문제가 되는데, 한마디로 기가 세서 남편이 무능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 58 개띠는 남자 보다 더 팔자가 사납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주 여덟 글자를 다 풀이해야 운명이 나오지만요. 

  특히 58개띠 술(戌, 9월)달생은 여자든 남자든 하기 좋은 말로 ‘불제자 사주’라고 하고, 달리 얘기하면 ‘중팔자’라고도 합니다. 지지(地地)에 술술(戌戌)이 겹쳐지기 때문이지요. 개띠들은 희생정신이 강하고 戌달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달이니 주술사적 기질이 있다고 보는 거지요. 제가 음력 9월생이거든요.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어야할 사주로 이 속세에서 인연을 맺고 살아가자니 참 고단합니다. 뭐, 물론 소설가도 저는 구도자의 길이라 생각합니다마는. 늘 벽을 향해 면벽하고 글을 쓰니까요.


  철쭉과 대작하는 도연명 같은 친구도 말하는 폼이 한 도 닦은 듯해 얼치기 중 같고, 살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며 노래에 허무의 냄새를 피우는 친구도 머지않아 머리를 깎을 거라고 엄포를 놓더군요. 저 또한 히트작도 없이 직업병인 견비통만 얻었습니다. 책을 낼 때마다 왜 그렇게 큰 사건들은 터지는지. 제 책 광고나 기사는 한 점 먼지처럼 거대한 사건의 늪 속으로 스며버리고는 합니다. 물론 자기변명인 줄 압니다. 무슨 놈의 인생이 어떻게 행복했던 기억이 하나도 없냐고 엄살을 피우자, 해풍이 제게 그러셨지요. 바람처럼 살라고요.


  해풍, 이미 바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지금 제가 이 글이라도 쓸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간혹 기댈 나무를 만나면 엄살을 피우기도 하고, 응석도 부려보고, 징징 울어도 봅니다. 위로 받고 싶어서 말입니다. 거리의 나무들이 바람에 출렁이는 모습을 볼 때면, 아, 바람이 나무에게 위로 받고 싶어 잠시 머무르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바람인들 힘들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알 수 없는 엄청난 회한과 멍을 껴안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장미와 금빛 밀밭을 만나 오래도록 그들과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바람이니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숙명을 얼마나 슬퍼했겠습니까.

  바람이 우는 소리를 들어 보셨는지요. 그런 밤은 저도 하얗게 뜬눈으로 지새웁니다. 바람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으니, 그 울음소리라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러니, 58 개띠들이 가끔 술에 취해 변명을 늘어놓으면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이 사회는 혹은 다른 세대들은 좀 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간이 창 밖을 보면 한 쪽으로 눈이 쌓인 오동나무가 묵묵히 제 옆에 서 있습니다. 나무는 생명을 가장 안쪽으로 밀어 넣고 봄을 기다립니다. 그들은 죽은 듯이 가만히 서 있지만 가장 안쪽에 푸른 불꽃같은 생명이 타오르고 있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한 겨울을 납니다. 강가에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본 적이 있지요? 모든 탐욕을 다 벗어버리고 앙상한 가지인 채로 그들은 씽씽 찬바람 속에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마치 이 나라의 58 개띠들 이미지 같지 않습니까? 


  해풍, 눈발이 점점 더 자심 해 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긴긴 편지를 써 봅니다. 마음이 평온합니다.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도 외롭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고요함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간, 눈이 평화롭게 내리는 이 시간, 이 나라의 58 개띠들의 生을 돌아보는 이 시간, 잠시 행복합니다. 


  해풍, 잘 지내세요. 저도 시간을 잘 견디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자, 인고의 시간을 견뎌 온 그들에게 축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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