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29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지 후두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들 수 없는 밤이 고통스럽다
어젯밤 널어둔 빨래가 떠올라 젖은 듯 무거운 몸을 애써 일으켜본다
반쯤 젖은 빨래를 한 팔로 껴안고 나머지 한 팔로 창문 안쪽 방충망을 닫아보려 하지만
어째서인지 닫히지 않는다
방충망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빨래를 안고 있던 내 가슴이 축축해져 왔다
마음이 급해서일까 잔뜩 품에 껴안은 빨래 탓일까
훤히 열린 창으로 빗물이 들어와 바닥까지 젖고 있었다
그제서야 난 애써 빨았던 빨래들을 거실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두 손으로 방충망과 창문을 닫아낸다
엉망진창이다
다시 빨래를 돌려야한다
어차피 지금 돌린다고 해도 마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젖은 빨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멍하니 있다 거실 바닥에 주저앉는다
너는 비를 싫어했다
너를 만나기로 한 날은 혹시나 비가 내릴까 늘 걱정했다
일을 마치고 내 근처로 오겠다던 네가 비가 내린다며 약속을 취소한 적이 있었다
널 만날 생각에 가장 먼저 문을 나섰던 나는 만나기로 했던 곳에 우두커니 혼자서서
나 역시도 더이상 비를 좋아할 수 없게 될 것이란 직감을 했다
비가 내리면 넌 항상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다행히도 오늘은 너와 함께 있는 동안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의 끝은 너무나도 쉬웠다
웃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독한 말을 내뱉는다
마치 나는 너로 인해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내려는 듯이
예상치 못했던 듯, 떨리는 너의 목소리가 나는 안타까웠다
이런 어쭙잖은 연기에 속아 넘어가다니
끝까지 넌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굳이 거기까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너의 마음을 눈치채버린 내 마음탓이다
저녁 11시 5분. 아직 비가 내리지 않던 그 시간
내가 먼저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먼저 돌아서는 연기를
애써 해낸다.
원망스럽게도 사람의 몸은 따스하다
부둥켜안고 있으면 36.5도 그 체온만큼 따뜻한 사람일 거라고 착각하곤 한다
웃으며 가만히 내려다보던 다정한 눈빛,
몇 번이고 천천히 머릴 쓰다듬어 주던 다정한 손,
안기면 쿵쿵거리던 다정한 너의 심장소리.
‘다정하다’는 표현은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는 늘 같은 온도로 존재했고,
그 온도를 다정하다고 이름 붙인 것이 나였을 뿐이다.
장마다.
매일 같이 비가 쏟아질 것이다.
장마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싫어하는 이 비가 계속해서 쏟아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길 빈다
엉망진창이다
이미 예감했던 끝이다
울지 않는다
슬프지 않다
그저 덤덤하다
아직 내 가슴에 닿았던 너의 온기가 따스하다
온기가 사라져야 울 수 있을까
비가 그쳐야 슬퍼질까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다시는 널 만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나는 이 새벽이 끝나기 전에 잠들 수 있을까
잠들 수 없는 새벽이 몇 밤이 지나고 나면
비는 그치고
젖은 채로 쌓여있던 내 빨래들은
여름 한낮의 온도에 퀴퀴하게 말라비틀어져 갈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