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Jun 30. 2021

새벽 1시 29분

새벽 1시 29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지 후두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들 수 없는 밤이 고통스럽다


어젯밤 널어둔 빨래가 떠올라 젖은 듯 무거운 몸을 애써 일으켜본다

반쯤 젖은 빨래를 한 팔로 껴안고 나머지 한 팔로 창문 안쪽 방충망을 닫아보려 하지만

어째서인지 닫히지 않는다


방충망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빨래를 안고 있던 내 가슴이 축축해져 왔다

마음이 급해서일까 잔뜩 품에 껴안은 빨래 탓일까

훤히 열린 창으로 빗물이 들어와 바닥까지 젖고 있었다

그제서야 난 애써 빨았던 빨래들을 거실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두 손으로 방충망과 창문을 닫아낸다


엉망진창이다

다시 빨래를 돌려야한다

어차피 지금 돌린다고 해도 마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젖은 빨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멍하니 있다 거실 바닥에 주저앉는다


너는 비를 싫어했다

너를 만나기로 한 날은 혹시나 비가 내릴까 늘 걱정했다

일을 마치고 내 근처로 오겠다던 네가 비가 내린다며 약속을 취소한 적이 있었다

널 만날 생각에 가장 먼저 문을 나섰던 나는 만나기로 했던 곳에 우두커니 혼자서서

나 역시도 더이상 비를 좋아할 수 없게 될 것이란 직감을 했다

비가 내리면 넌 항상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다행히도 오늘은 너와 함께 있는 동안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의 끝은 너무나도 쉬웠다


웃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독한 말을 내뱉는다

마치 나는 너로 인해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내려는 듯이


예상치 못했던 듯, 떨리는 너의 목소리가 나는 안타까웠다

이런 어쭙잖은 연기에 속아 넘어가다니

끝까지 넌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굳이 거기까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너의 마음을 눈치채버린 내 마음탓이다


저녁 11시 5분. 아직 비가 내리지 않던 그 시간

내가 먼저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먼저 돌아서는 연기를 

애써 해낸다.


원망스럽게도 사람의 몸은 따스하다

부둥켜안고 있으면 36.5도 그 체온만큼 따뜻한 사람일 거라고 착각하곤 한다


웃으며 가만히 내려다보던 다정한 눈빛,

몇 번이고 천천히 머릴 쓰다듬어 주던 다정한 손,

안기면 쿵쿵거리던 다정한 너의 심장소리.


‘다정하다’는 표현은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는 늘 같은 온도로 존재했고,

그 온도를 다정하다고 이름 붙인 것이 나였을 뿐이다.


장마다.

매일 같이 비가 쏟아질 것이다.

장마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싫어하는 이 비가 계속해서 쏟아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길 빈다


엉망진창이다

이미 예감했던 끝이다

울지 않는다

슬프지 않다

그저 덤덤하다

아직 내 가슴에 닿았던 너의 온기가 따스하다


온기가 사라져야 울 수 있을까

비가 그쳐야 슬퍼질까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다시는 널 만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나는 이 새벽이 끝나기 전에 잠들 수 있을까


잠들 수 없는 새벽이 몇 밤이 지나고 나면

비는 그치고

젖은 채로 쌓여있던 내 빨래들은

여름 한낮의 온도에 퀴퀴하게 말라비틀어져 갈테다

작가의 이전글 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