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Jul 01. 2021

울음을 터트릴 '때'

문득몇 년 전 초등학교에서 일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아이들 체육대회 인솔교사로 따라갔던 적이 있는데우리 학교 아이가 800m 달리기 결승에 올랐다.

 

키가 큰 아이들에 유리한 경기라 작고 마른 그 여자아이는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덤덤하게 경기에 나선 아이는 800m를 1등으로 완주해냈다아이는 결승선을 끊음과 동시에 울음을 터트리며 그대로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내 옷을 쥐어뜯을 듯 꼭 움켜쥐고는 서럽게도 소리 내어 울었다.

 

누가 보면 꼴등이라도 한 줄 알 정도였다그때의 난 영문도 모른 채 한참을 아이를 토닥이다

그 서러운 울음을 그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내게 돌아온 대답은 너무 힘들어요선생님너무 아파요너무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이었다.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그래너무 힘들고 너무 아팠구나그래서 우는구나.

힘들고 아프면 그렇게 울 수 있는 거였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울었던 적이 있었겠지. 

얼마 전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했다그때 내심난 스스로를 걱정했었다울고 싶어지면 어떡하나혼자서 괜찮을까그럴 땐 누구한테 전화라도 걸어야 할까 잠시 고민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뿐이었다내내 가슴이 먹먹할 뿐 나는 너무나 태연하게 잘 웃고잘 먹고잘 지내고 있다.

 

나는 언제부터 울지 않게 되었을까울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려서일까인생을 걸 거라며 몇 년을 준비하던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도몇 주를 야근하며 만들어낸 보고서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을 때도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그날에도 나는 울지 않았다.

 

우습게도난 요즘 한강을 뛰고 있다죽을 만큼 뛰다 보면 나도 그 아이처럼 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나도 울고 싶었다그러면정말 후련해질 것도 같았다그러고 나면 평생을 함께 살아온 이 먹먹함이 좀 가실지도 모를 텐데.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했었는지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었는지내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먹먹함으로 남아있는 모든 것들을 알아 달라 소리 지르고 울고 나면 무겁던 가슴 한 편이 좀 후련해질 것도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그뿐이다숨이 차게 달리고 나서도 눈물은 터지지 않았다죽지 않을 만큼의 숨을 몰아쉬며 나는 생각했다내가 우는 법을 잃어버린 이유는 어쩌면 내가 그것들을 정말 목숨 걸고’ 하진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웃음이 나왔다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나도 무서웠다고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나도 힘들었다고 그래서 포기했던 거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 생각해본다그 아이가 그치지 못했던 눈물은 힘든 모든 것을 마침내 끝낸 안도감에서 나온 눈물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리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었다나도 그 마음들의 끝이 오면 그때는 울 수 있을까사실은 포기하지 못했던용서하지 못했던잊지 못한 그 마음들을 마주하고 비로소 끝내고 나면 나도 그제서야 너무 힘들었다며 소리 내 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제야 작게 대답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새벽 1시 29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