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만과 편견' 속으로
나의 여행은 때론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LA 여행을 계획했었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며 주인공처럼 아이슬란드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첫 ‘덕질' 영화는 ‘오만과 편견’이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은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2005년 개봉작으로, '어톤먼트', '안나 카레니나' 등의 작품을 연출한 조 라이트 감독의 작품이다. 조 라이트 감독은 빛과 자연을 이용해 아름다운 영상미를 뽐내기로 유명한데, 당시 '오만과 편견'에 푹 빠졌던 나는 영화 dvd를 구매해 여러 번 돌려봤고, 이 장면에서 어떤 대사를 할지 자막을 보지 않아도 알게 되는 정도가 되었다. 또 출판사별 원서와 번역서를 모아 책을 읽고 또 읽었었다.
영화에 깊게 빠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한 가지는 앞서 말했던 영상미 때문이었다. '오만과 편견'에는 아름답고 멋진 자연풍경이 담겨있었고, 우리나라와는 다른 영국식의 거대한 저택, 무도회 등을 볼 수 있었다. '저런 큰 저택에서 살면 무슨 느낌일까?' 하고 어린 마음에 궁금해했었다. 그리곤 언젠가 영국에 가면 반드시 미스터 다아시의 펨벌리 저택을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영국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여행 계획을 세우다 문득 어릴 때 미스터 다아시의 집을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오만과 편견' 촬영지를 검색했고, 펨벌리 저택이 '채스워스(Chatsworth) 하우스'를 배경으로 촬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영국 여행' 하면 대영박물관, 해리포터, 축구, 세븐시스터즈 등이 떠오르지만, 나에게 이번 영국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채스워스 하우스’를 방문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채스워스 하우스'로 가기 위해선 런던에서 약 3시간이 걸리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체스터필드로 가는 기차 2시간, 체스터필드 역에서 '바슬로우(Baslow)' 까지 버스 30분, 그리고 바슬로우에서 채스워스 하우스까지 30분 동안 걸어야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체스터필드 역. 버스를 타고 바슬로우에서 내리니 'CHATSWORTH'라고 적힌 나무 이정표가 먼저 나를 반겼다. 이정표 표시를 따라, 구글 지도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녹음이 우거진 나무길이 펼쳐졌다.
비가 자주 오는 영국답게, 땅에는 웅덩이들이 고여있었고 나뭇잎에는 물방울들이 맺혀있었다. 비 온 후 6월의 영국 날씨는 그야말로 상쾌했는데,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걷다 보니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미스터 다아시를 만나러 가는 기분을 내기 위해 미리 다운로드하여온 영화 '오만과 편견'의 ost를 들으며 갔는데, 여기에 흙내음과 나무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길을 걷다가 산책을 나온 노부부와도 마주쳤는데, 그들은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어 주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주민들의 따스함을 동시에 느끼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나무길을 벗어나니 정말 이색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주 넓은 푸르른 들판에 염소와 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고, 그 너머로 채스워스 하우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몇몇 염소와 양들의 몸에 번호가 적혀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저택에서 관리하는 것 같았다. 자유롭게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는 모습이 신기해 빤히 쳐다보다가 동물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비에 젖어 녹음이 우거진 푸른 들판,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염소와 양의 울음소리. 그저 듣기만 하고 바라보는데도 미소가 지어지고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게 바로 행복이라고 느끼며 걷다 보니 어느덧 채스워스 하우스에 도착했다.
‘Mr. 다아시를 만나러 가는 길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