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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Nov 30. 2023

요구르트 이모 영업 잘하네

( feat. 팔랑귀 호갱)

고객님~신제품이 나왔습니다


나는 귀가 얇은 팔랑귀다. 요즘 말로 "호갱"이라고도 하지.

누구든 나에게 어떤 물건이든 판매 홍보를 한다면,  분명  그 제품은 팔릴 것이며 그 영업 사원의 판매 실적은 올라갈 것이다.

누구든 나에게 '물건'에 대한 장점을 어필하기보다 , " 어머 고객님, 이거 하니 너무 이쁘세요, 너무 젊어 보이세요"라는 나에 대한 칭찬만으로도, 그 물건이 무엇이든 팔리게 될 것이다.

이런 나를 잘 파악하는 화장품 가게나 옷가게 또는 식당에서 나의 지갑은 쉽게 열리기 마련이며, 가끔 이런 나를 잘 아는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도 나의 "기분"에 따른 "현금" 뭉치가 뿌려지기도 한다.


띵동~배달 왔습니다


회사에 종일 앉아있다 보면, 먹을 거라곤 커피 이외 특별한 간식거리가 없다. 그래서 오후의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비상식량" 차원에서 주 3회 이상 우유나 요구르트나 기타 건강 음료를 받아먹은 지 십수 년째다.

XX 우유에서 우유만 받아먹은 적도 있었고, XXX에서 야채 즙 건강음료를 받아먹은 적도 있고, 지금은 XX요구르트에서 건강 음료를 먹고 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작은 건강 음료마저도 배달하는 "구역"과 담당 배달원이 나뉘는 것 같다.

내가 근무하는 OO동은 사무실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아침 출근길이면 다양한 우유나 음료, 또는 샐러드를 배달하러 다니는 배달원 이모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기계적으로 배달이 오고 가는 동네이다 보니 , 특별히 배달해 주시는 배달원 이모와 연락을 주고받을 일도 없으니 전화번호도 저장되어있지 않다. 혹시 제품을 변경한다던지, 중단하고 싶으면, XX 요구르트 홈페이지에 가서 변경을 하거나 아님 출근길에 그 배달 이모의 "구역"으로 가서 직접 얘길 하곤 한다.


우리 사무실 내 담당 배달 이모는, 나이 지긋한 60대 정도로 뵈는 어르신이다. 이 요구르트 이모는 여타 다른 "영업"직 사람들처럼, 청산유수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요,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좋아서 설명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신제품이 나오면 어느샌가 사무실로 올라와서 내 옆에서 멀뚱히 선채로  "이모~ 신제품이 나왔는데요, 이모 이거 진짜 좋아요~ 한번 먹어보세요 " 이렇게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을 하는데, 도대체 이 신제품이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는 설명도 없이, 그저 무조건 "좋으니 먹어봐"로 제품을 홍보한다. 무엇이 좋은지, 어떤 제품인지 나중에 내가 홈페이지에서 검색을 해봐야 할 정도다.

그럼에도 "엄마"같은 어르신 배달원이니, 어차피 먹을 거니,  판매실적이라도 올려 주자 싶어 군말 없이 뭐든, 권하는 건 몇 년째 먹고 있다.


그러던 최근, 내가 받아먹던 눈 건강 음료가 단종된다는, XX요구르트 홍보 문자가 왔었다. 이런 "단종" 제품에 대해서도 그 배달 이모는 나에게 설명조차 없었다. 신제품 설명도 없는데, 단종 제품이라고 설명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이참에 다른 제품으로 바꿔보던지, 아님 다른 "회사"의 음료를 먹어보던지, XX 요구르트 제품을 중단해야겠다 맘을 먹었었다. 그러나 제품이 단종된다는 그날 이후, 배달은 계속되었는데, 아마 재고분  소진차 며칠 계속 같은 제품이 배달 온 듯했고, 그러다 마지막 날엔 완전 다른 "맛없는"제품으로 배달이 온 것이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아무 제품의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으로 배달을 한 것이다.  

이건 아니지~싶어서, 그다음 날 출근길 XX요구르트 이모의 "구역"으로 찾아갔다.  단호하게 '그만 먹겠다'라고 말하여야지 다짐을 했었다.


"어머 ~ 이모~ 안 본 사이에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몰라봤어요"


대뜸 그 배달원 요구르트 이모가 나를 보고 한 말이다.

내 얼굴에 "오늘부터 그만 먹을게요 " 란 말이 쓰여있기라로도 했는가, 내 마음을 어찌 읽었을까.

대뜸 "칭찬"부터 늘어놓는 이모 앞이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


"아니 그런데, 이모, 내가 먹던 제품 단종되었다는데, 말도 없이  XXXX을 넣으셨더라고요. 별로 맛도 없던데... 그래서....."

"그럼, 이거 먹어보세요. 이거 새로 나왔는데, 진짜 좋데요. 이거 먹어봐요. 이모, 근데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몰라보겠네~ 근데 이거 진짜 좋은 거래요. 이걸로 바꿔 배달하까요? "


그 순간, 나의 귀는 팔랑거렸다.  

단지 제품이 먹어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나보고 "예뻐졌다"라는 소리에 나의 귀는 활짝 열렸고, 그만 먹어야지 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신제품을 보니, 다이어트 음료수다. 나쁠 것  없겠다 싶다. 손해 볼 것 없겠다 싶다.

살이 빠진다잖아. 가격도 괜찮고 말이지. 이왕 먹는 거 살 빼고 더 예뻐지면 좋지 라는 나의 '마음의 소리'에, 덜컥  "그럼 이모, 내일부터는 이걸로 넣어주세요"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나는 팔랑귀다. 

그리고 이 요구르트 이모는 영업을 아주 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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