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져서 시간에 백내장이 낀 것처럼 사는 것도 뿌옇고 죽는 것도 뿌옇다. 슬플 때는 웃음이 나오고 기쁠 때는 눈물이 나오는데, 웃음이나 눈물이 나 물량이 너무 적어서 나오는 시늉만 한다. 안구건조증이 오면 눈이 쓰라리고 눈물이 흐르는데, 눈물이 흘러도 안구는 건조하다. 병원에 가면 눈물 흐르는 눈에 또 인공눈물을 넣으라고 한다. 눈물에 약물이 합쳐져서 눈물은 넘치는데, 젖은 눈이 메마르다. 어째서 이러는지 나도 모르고 의사도 모른다.
- <허송세월> , 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