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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탈리아 여행(5)

모로 가도 피렌체로만 가면 되는 것

by 라라
모로 가도 서울, 아니 피렌체로만 가면 되는 것

볼로냐에서 피렌체로 넘어가는 날.


볼로냐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피렌체 여행을 위해 넘어가기 위해 우리는 이동 수단을 기차로 선택했다.

피렌체까지는 볼로냐에서 기차로 약 40여분 걸린다.


이탈리아 기차는 두 가지 종류다.

우리나라 KTX처럼 국유 철도인 트랜이탈리아, 그리고 SRT 같은 민영 기업 철도인 이딸로가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회사 후배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주의 사항들이 있었다.


1) 기차 탑승 전 플랫폼 확인 잘할 것

2) 연착이 잘 되니 시간 잘 확인할 것

3) 플랫폼이 갑자기 바뀔 수 있으니 긴장을 놓치지 말 것


우린 긴장을 놓지 말기로 다짐을 재차 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우리가 예매한 기차는 이탈로, 민영철도라서 조금 더 괜찮다는 평이 있어서 선택한 기차였다.

한국에서 시간을 확인해서 사전 예매 후 티켓도 출력, 이탈로 앱도 미리 설치해 놨었다.

아침 일찍 이동하는 기차여서 새벽에 서둘러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을 찾아가고 시간표를 확인해서 플랫폼까지 정확하게 확인했다.

우리가 탈 기차는 몇 시 몇 분 XXX 열차. 플랫폼 6번!

여기까지 좋았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기 마련...


우리가 탈 기차 플랫폼은 지하철처럼 지하 5층정도에 있었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타고 내려가서 드디어 우리가 탈 기차 플랫폼에서 나름 여유 있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플랫폼까지 찾고 기차 시간도 여유가 있어서였을까,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일행 언니가 화장실이 급하다 하여, 내가 짐가방 3개를 지키고, 나머지 둘은 짝이 되어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화장실도 그 층에 있는 게 아니라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2~3층을 올라가야 했다.

기차 도착시간 약 10여분 남짓 남은 시간. 시간은 충분하다 생각했다.

큰 캐리어 가방 3개를 자전거 체인에 묶어 기다리며 나는 잠시 핸드폰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흘렀을까. 전화가 울린다.


"라라야~어디야? 어디로 갔어?"

"응? 언니 저 아까 거기 그대로 6번 플랫폼에 있어요. 내가 이 무거운 짐가방들을 들고 어디로 가겠어요?"

" 6번? 없는데, 우리 6번에 왔는데 너 없어. 어디야? "

그러고 고개를 들어 플랫폼 전광판을 , 내가 서 있는 플랫폼 번호가 "3번"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6번은 조금 왼쪽 떨어진 편으로 더 가야 했었다.


OH MY GOD!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고, 일단 다시 일행은 내가 서있던 자리로 돌아와 각자의 가방을 챙겨

바뀐 플랫폼 6번으로 이동을 했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기차 도착 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었고

마침 기차가 시간에 맞춰 딱 들어왔다.

우린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기차를 탔다.

플랫폼 6번, 피렌체향 기차. 의심 없이. 지체 없이


탑승 후 예매표의 자리로 찾아가는데 자리의 일련번호가 좀 달라 보였다.

실제 자리랑 인쇄된 표기랑 다른가 라며 그저 자리를 찾아가는데...

이상하다. 우리 자리라고 생각했던 곳에 다른 승객과 이탈리아 현지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순간 뭐지?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든 낯선 동양인 3명이 평일 아침부터 기차 안에서 두리번거리며 당황하며 자리를 찾으니

한 어르신께서 일어나 우리의 예매표를 찬찬히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


"이 기차가 아닌고 다른 기차를 타셨어야 했어요" (물론 영어로 )


기차를 잘못 탔다고?

기차를 잘못 탔다는 것이다!!!

(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플랫폼이 바뀐 게 이탈로 열차가 아닌, 트랜 이탈리아 열차의 탑승 플랫폼으로 바뀐 것이었다. 워낙 연착이 잘 되다 보니, 하필 우리가 탈 그 시간에 트랜 이탈리아가 열차가 도착한 것이었다.)


이미 기차는 출발했고, 당황한 우린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잠시 정적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래도 다행히 그 어르신이 "피렌체 까지는 갑니다"라면서 서투른 영어로 얘길 해주셨고,

본인도 마침 피렌체에 내리니 하차 시 우리에게 알려주시겠다고 친절히 얘길 해주셨다.

천만다행 아닌가!

잘못 탔지만 그래도 피렌체까지 가니, 모로 돌아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비록 자리엔 앉지는 못했지만, 복도 끝에서 서서 40여분을 갔다.

뭐 출퇴근 지하철에서 서서 가는 느낌 정도였으니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오히려 짐가방도 안전하게 잘 지킬 수 있었으니.


복도에 서서 그때 잠시 머리가 하얘졌을 때 각자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물어보니

언니들은 " 바로 다음 역에서 내려서 갈아타려고 했지"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피렌체 안 가면 이 기차 어디든 도착하는 곳 여행하면 되지 않나. 어차피 어디든 이탈리아일 거니깐"라는 편한 마음을 먹었었다고 했다. 자유여행의 묘미, 돌발 변수에서 오는 생각지도 않은 즐거움과 추억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우린 피렌체 역에 도착을 했다.

공기가 달랐다. 웃음이 났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던 그 순간으로. 더 아름다운 도시로 느껴졌다.

여기 피렌체에서 머물 이틀의 일정이 더 기대되고 흥분되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모로 가도 피렌체만 가면 되는 것을!

새벽의 볼로냐 기차역
지나고 다시 보니, 트랜 이탈리아 기차였다. 그래도 피렌체행
역에 도착하자마자, 에스프레소와 달달한 도넛과 팬케익으로 잠시 배를 달랬다. 너무 맛있었던 커피와 빵
역 바로 앞에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보였다. 하늘마저도 아름다웠던 곳
역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어딜 가나 멋진 거리의 피렌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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