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이 됐다. 메이크업을 도통하지 않은지 말이다. 스무 살 이후로는 일과였고 일상이었다.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밖을 나가면 왠지 벌거벗은 느낌이었다.
파운데이션 용량의 줄어듦 속도는 월급날 통장에서 돈 빠져나가는 속도만큼이나 빨랐다. 벌거벗은 느낌이란 흡사 내 통장 잔고가 0.이 찍혔을 때, 믿고 싶지 않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무튼 그런 것이었다.
절대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여전히 노메이크업은 그냥 안 하는 게 편해서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철학이나 당연함 같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귀찮고 성가셨다. 코로나 때문에 매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탓도 컸다. 무엇보다 마스크에 묻어나는 누런 파운데이션과 선명하게 남은 립자국을 보는 게 싫었다. 지저분했다.
즉흥적이었다. 내일부터 화장하지 말자.가 아니었고 어차피 마스크 쓰는데… 오늘 그냥 나가자. 귀찮아. 딱 그거였다. 그날 하루가 무탈했다. 그날부터 난 메이크업에 손을 뗐다.
화장도 중독 같은 것일 수도 있어서 혹여 금단현상이 일지 않을까 싶었지만 당연히 없었다. 내 피부는 참 까다로운 녀석이다. 지독한 지성피부다. 여드름에 취약한데다 조금만 소홀하면 금방 티를 낸다.
외출을 위한 피부관리(관리라 하기 민망하나 대체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루틴은 이렇다. 약산성 폼클렌징으로 세수를 하고 수분크림을 아낌없이 듬뿍 발라준다. 마지막으로 자외선 차단제를 듬뿍 바른다. 아, 눈썹이 빠졌다. 눈썹 그리기는 필수다. 그리고 작년 남대문 시장에서 엄마와 커플로 맞춘 연핑크 버킷햇 소위 벙거지 모자를 쓴다.
수수한 민낯에 포인트는 귀걸이다. 동그랗고 작은 진주 모양의 귀걸이 아니면 청록색의 작은 사각형 귀걸이를 번갈아 착용해 준다. 이 모든 과정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세상 간편하다. 이렇게 1년을 지내왔다. 더욱 놀라운 건 이제는 사진첩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짙게 화장한 내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모든 이목구비가 밋밋한 지금이 더 자연스럽고 수수하고 예뻐보기까지 해 만족스럽다. 기미와 주근깨는 체념하고 내 친구로 받아들였다.
화장하지 않은 상태는 그 자체가 수수해서 화려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상태가 된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그러기에 노메이크업 상태에서는 화려한 장신구도 옷도 가방도 신발도 필요치 않게 되는데 이마저도 현재 내 삶의 방식과 밸런스가 아주 잘 맞고 있다. 마치 의도한 것처럼.
서너 달 전부터 내 피부에 큰 변화가 생겼다. 타고난 구릿빛 피부라 피부톤은 그대로나 피부가 아주 깨끗해졌다. 살면서 이렇게 좋았던 적은 없었다. 왜지? 피부가 이렇게 갑자기 좋아질 수 있는 거 였던가?
단정지을 순 없지만 내 생각엔 피부가 다시 자연상태로 돌아가기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좀 걸렸고 정화가 어느 정도 되자 본연의 상태로 금세 복구가 된 것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그 복구시점과 내 피부가 갑자기 좋아지게 된 시점이 정확하게 일치한다.혹은 그러지 않을까.라는 덧붙임까지.
결론은 맘에 든다. 귀찮고 성가셔서 안 하게 된 화장인데 화려한 예쁨은 잃었으나 그 대신 티 없이 맑고 산소 같은 피부를 얻었다.
요즘 나도 글을 쓰며 숨을 쉬고 있는 중인데 내 피부녀석도 요즘 아주 잘, 건강하게 숨 쉬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내가 아주 건강하게 아름답게 잘 나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내게 있어 성숙함과 성장의 단어가 같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이 또한 대견스럽다.
오늘 아침 절친한 언니로부터 기분좋은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언니는, "너의 글들을 통해 너를 다시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위로받고, 또 글쓰기도 글 읽기도 좋아하던 나를 다시 떠올려봤어."....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오래 수다 떨고 싶은 마음이 아침 내내 들었다는, 이번 주 토요일에 나를 보러 가고 싶다는 언니 말 한마디에 감동받고 참 많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