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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앤라라 Oct 14. 2021

나에게만 너무 어려운 결혼

마음의 자리_서른다섯, 여전히 결혼하지 못한 나에게 

A의 꿈은 처음부터 현모양처였다. 처음의 기준이 시간의 순서상 맨 앞이 아니라 ‘자기 의지에 의한 결정’이라면 그녀는 처음부터 현모양처를 꿈꿔온 게 확실하다. 꿈이라는 건 이상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현모양처라는 꿈은 굉장히 낯설었다. 결혼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때 되면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냐?(이게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서른을 훌쩍 넘긴 뒤에 깨닫게 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39세가 된 A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다. 역시 꿈이라는 건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인가 보다. 현모양처를 꿈꾸지 않았던 많은 친구들이 (현모양처까지는 모르겠지만)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반해 그녀는 여전히 꿈을 좇고 있다. 그렇다고 A가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던 건 아니다. 끊임없이 사랑에 빠졌고, 연애를 했고, 결혼 직전까지 갔던 남자도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자신을 가꾸고, 연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것뿐이다. 




서른을 넘기면서 A의 연애패턴에는 조급함이 묻어났다. 독립해 홀로 살던 그녀는 월세집의 계약을 1년 단위로 연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이 1년 안에 결혼하게 되면 계약기간이 많이 남아있는 월세집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남자친구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A는 한결같이 집 계약을 1년씩 연장했고, 지금도 계약기간이 9개월 남은 집에서 살고 있다. 


서른다섯 살 이후 A가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능력이 있었고, 바빴고, A는 더 사랑받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던 남자도 막상 연애를 시작하면 태세를 전환했다. 더 자주 연락하기를, 더 자주 만나주기를 애원하는 A에게 조금씩 차가워졌다. 당장이라도 결혼하자고 할 것 같던 남자는 차츰 결혼 이야기를 뒤로 미뤘다. 초조해진 A는 자주 연애상담을 해왔고, 남자가 변한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어쩌면 내가 정말 아버지랑 똑 같은 남자를 만난 거네요. 날 사랑해주길 바라면서.”
“이제 깨달았으니 됐죠.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증명하기 위해 찰스 볼링거를, 혹은 다른 어떤 남자든 기쁘게 해줄 필요는 없어요.”
-로이 넬슨 스필먼 <라이프리스트> 중에서 


A의 연애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연애는 결혼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상대로 연인을 대했기 때문에 관계는 자주 균형을 잃었다.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A의 모습이 상대에게 불안감을 줬을 수도 있다. 


반대로 A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증명해야 하고, 자신의 장점을 알아봐주길 바라면서 사랑을 갈구해야만 하는 관계가 결코 행복했을리 없다. 시시때때로 나를 증명해야만 하는 팍팍한 삶 속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믿고 지지해줘야 할 연인에게조차 증명받고 싶어했으니 둘의 관계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마음은 결국 피폐해진다. 상대에게로 향해 있는 마음의 크기도 중요하다. 마음의 크기를 조절하지 못하고 삶의 균형을 잃으면 나와 상대 모두 불행해진다. A는 나이의 조급함에 떠밀려 진짜 중요한 삶의 균형을 잃어버린 것이다.  




서른과 마흔 사이, 친구들과의 대화는 늘 ‘결혼’으로 향했다. 취업 고민이 사라진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결혼이 메웠다. 마치 결혼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지금 남자친구가 결혼상대로 어떨지, 결혼은 어떤 남자와 해야 할지, 주변 사람의 결혼 성공담과 실패담을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때로는 부러움의 탄성이, 때로는 안타까움의 탄성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른 다섯을 넘기면서 조급함에 초조함이 더해졌고,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누군가는 뒤돌아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혹여나 친구들 무리에서 자신이 제일 늦게 청첩장을 돌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영원히 청첩장을 돌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남모르게 걱정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여전히 미혼여성에게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쉽게 넘길 수 없는 무게감을 지닌다. 당차고 쿨한 성격의 소유자조차 주변의 시선과 지나친 관심이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든다. 언젠가 연애상담을 주로 하는 유튜브 채널을 검색해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이 서른다섯을 넘긴 여성에게 눈을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나이를 넘기면 좋은 남자를 절대 만날 수 없다고 장담하듯 말하는 유튜버의 말에 왠지 모를 분노가 일었던 건 내가 서른다섯을 넘긴 여자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흔쯤 되니 돌아왔다는 친구들의 소식이 속속 전해져 온다. 그 중에는 나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서둘러 결혼했던 친구도 있다. 나이의 무게를 느끼는 지점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여성에게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결코 녹록치 않다. 결혼은 ‘언제’가 아니라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자신이 주인공이 됐을 때 우리는 평정심을 잃고 섣부른 결정을 하게 된다. 소수보다는 다수에 편승했을 때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조급함은 언제든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옳은 판단력을 가로막는다. 초조한 마음으로 한 선택들은 대부분 큰 후회를 남긴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결혼은 더더욱 그렇다. 


지금 느끼는 결핍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예요.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 당신은 행운아예요. 필요하다는 시실을 인정하고 있으니까. 세상엔 그것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랑을 갈구하다 보면 상처받기 쉬워져요.
-로이 넬슨 스필먼 <라이프리스트> 중에서 


사랑은 갈구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닌데, 이걸 깨닫기까지의 과정도 쉽지가 않다. 상대가 결혼하기에 적당한가 아닌가를 고민하기 전에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지, 그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일정의 결핍 속에 살아가고 있고, 배우자는 그런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서른다섯, 사랑을 시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은 나이다. 연인 사이의 중심은 ‘결혼’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지나온 30대의 나에게 돌아가 딱 한마디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결혼’이 아닌 ‘너 자신’이 중심인 삶을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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