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공간은 자리가 없다.
그 안이 너무 좁아 내 삶이 들어가기에도 너무나 벅찬 그 공간.
어떡하면 학창시절을 잘보내며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학생은,
어떡하면 사회생활을 잘하여 회사에서 흠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회초년생이 되었다.
엄마가 오늘 뭐먹고 싶냐고 묻던 말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고민하던 소년은,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한끼를 해결해야하나 걱정하는 배고픈 청년이 되었다.
호기심에 세상을 탐험하며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는 괜찮다며 웃던 씩씩한 아이는,
이제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과 사람들의 말 때문에 옹이가 생겨 도망치는 초라한 어른이 되었다.
모든 걸 놓고 일터에서 도망쳐 나왔던 때가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박동훈)이 회사에 갈 때마다 하는 생각을 말했던 장면이 있다. 마치 도축장에 끌려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이 말이다.
당시 20살 첫직장에서 자기가 하는 말을 무시했다며
매일 같이 내 귀에 입을 갖다대며 욕을 하며 부모욕도 했던 23살 장OO.
자기가 몰던 회사 전동차로 내 코앞까지 달려와 브레이크를 밝으며 넘어진 나를 보며 씨익 웃고 지나가던 모습이 생각난다.
"23살 왜 이렇게 말귀를 못알아 먹냐"고 머리가 나쁘다 욕하던 26살 엄OO,
양 옆에 깔린 조리대에 여럿 기대어 가운데 물 양동이를 붓고 밀대를 밀고 나아가던 나를 보며
"저건 머리가 나쁘니까 물 양동이 하나도 제대로 못붓네" 했던 말에 모두가 키득거리며 비웃던 날이 생각난다.
지금도 그렇다.
고졸에 경력이 없던 내가 받는 시선들은 친한 사람들이라고 다를게 없다.
그런데 그 아픈 말들 보다, 그 따가운 시선보다 무서웠던게 시간이었다.
젊은게 무기라고 뭐든지 해도 된다고 들었던 그 청춘이,
그저 가만히 놔두면 닳아 없어지는 그 젊음이 너무나 아까웠다.
모든 걸 포기하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던 날,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며칠을 세상을 등지며 살았을까.
갑자기 오밤중에 잠이 안와 생각이 깊어지던 밤.
저 지난날들이 떠올랐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시간들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당장 일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그 야심한 새벽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력서를 썼다.
너무나 간절했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적었고, 부끄러웠던 내 지난 시간들도 어느새 경험이 되어 이력서에 녹아들었다.
그 간절함 덕분일까 면접의 기회가 찾아왔다.
내 이력서를 스윽 보더니 말한마디 안걸고 일어나려는 공장장을 붙잡고
미친척 하고 눈을 부릅 뜨며
"제발 기회를 주신다면 뭐든지 잘하겠습니다.
모르면 밤을 새서라도 공부해 와서 일하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그 자리에 간 나는 고졸에 경력이 없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런 것까지 해야하나 하는 일도 있겠냐" 물었던 본부장의 말에
"당연합니다. 뭐든지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그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다시 자리에 앉더니 이력서를 보며
내 면접을 보고 "성실은 하네" 하고 웃고 나가던 공장장에 모습이 떠오른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들이 그저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렇게 발버둥 치며 참아왔던 시간들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지 않아 합격 연락이 왔고,
작은 식품 회사에 식품 관리원으로 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지난 시간들이 모두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게을리 보낸 시간이 없었다.
하는 일이 지난 날들에 하던 일과는 질이 달랐다.
여전히 회사에서의 직원들은 내가 온갖 일들을 하는 것이,
속칭 '짬맞았다'고 말한다.
그래도 감사하다.
자부심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말이다.
나는 취업하자마자 첫출근날 자취방을 계약했다.
"힘들어서 도망가는 거 아니냐"는 본부장에게
면접때 뽑아주신다면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자취방 보증금 먼저 내고 오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정말 첫출근날 케리어에 짐을 챙겨 출근했다.
1층에 놓여진 큰 케리어를 보며 누구꺼냐 묻던 본부장은
90도로 숙이며 인사하는 나를 보고는 그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았다.
퇴근을 하고 그 케리어를 다시 끌며 부동산으로 가 계약서를 썼다.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내가 들어갈 공간이 있었다.
내가 누울 자리, 내가 있을 자리였다.
그날 밤은 2월의 추운 겨울밤이었고,
첫날이라 가스도 안나오는 집의 차가운 마룻바닥이었지만
그 밤, 내 마음은 뜨겁게 달아올랐던 밤이었다.
내게 첫 명함이 생겼고
그 명함에 적혀진 일을 할 수 있다는게 너무 흥분되고 재밌었다.
일하다 공장시설에 머리가 찢겨도 다시 일하러 달려갔던 나는 별명이 생겼다.
머리를 피부 봉합용 스테이플러로 봉합해 '타카' 라는 별명이 생겼다.
자존심 상할새가 어디있나,
더한 말도 들었는데,
그저 그 또한 애정이구나 관심이구나 하며 넘겼다.
그렇게 인정 받았다.
입사하고 한달은 눈길 한번 주지 않던 공장장에게 말이다.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 늘 열심히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부모님 드리라 받았던 전무님의 선물이 내가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내 안을 더 넓혀가고 싶다.
나 하나 들어가기 벅던 그 공간이 아득히 넓어져 그 안에 소중한 것들 담고 싶다.
그 안이 너무 좁아 둘 수 없었던 좋은 추억들을 쌓고 아팠지만,
추억이 된 그 기억들을 이젠 놓아두고 싶다. 그리고 한가지 더 욕심내고 싶다.
나 혼자 있던 공간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그들이 들어와 있어도, 쌓아도, 놓아도 좁지 않을 소중한 마음들을 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