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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02. 2018

대청봉에 바람이 분다


가을 올 때 / 김선호


말라가는 논바닥 풀벌레 소리 사라진다

때 아닌 객쩍은 비 쏟아져

고개 숙인 벼 성가시다

비거스렁한 저녁

노루종아리 그림자

평상에서 내려와 마당으로 기어가고

땅거미 허물 벗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매미 떠난 자리

창밑 귀뚜라미 저 홀로

가을을 파먹고 있다

일곱 살 아이 무밭 다 망가뜨리고

할머니는 보리쌀 말가웃이나 물어주고

달뜨면 차례 음식 곳곳에 발매놀고

누렁이 냄새따라 헌 바자에 대가리 내민다


탁발 스님 가사 자락에서 막새바람 인다

누추한 대문 늘 닫혀 있는데

가을이랍시고 귀신불 놀러 온다

오늘

여전히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

이제 대청봉은 바람 거세진다

늙은 아내는 창호지 오려

구멍난 문 때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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