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올 때 / 김선호
말라가는 논바닥 풀벌레 소리 사라진다
때 아닌 객쩍은 비 쏟아져
고개 숙인 벼 성가시다
비거스렁한 저녁
노루종아리 그림자
평상에서 내려와 마당으로 기어가고
땅거미 허물 벗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매미 떠난 자리
창밑 귀뚜라미 저 홀로
가을을 파먹고 있다
일곱 살 아이 무밭 다 망가뜨리고
할머니는 보리쌀 말가웃이나 물어주고
달뜨면 차례 음식 곳곳에 발매놀고
누렁이 냄새따라 헌 바자에 대가리 내민다
탁발 스님 가사 자락에서 막새바람 인다
누추한 대문 늘 닫혀 있는데
가을이랍시고 귀신불 놀러 온다
오늘
여전히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
이제 대청봉은 바람 거세진다
늙은 아내는 창호지 오려
구멍난 문 때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