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스타일링이 도대체 뭔데?
'혹시 집안일 좋아하세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할 때, 당신의 머릿속에 어떤 것들이 떠오를지 생각해보자.
저녁을 먹고 잔뜩 쌓인 설거지, 뒤돌아서면 보이는 가득 찬 빨래 바구니, 발에 밟히는 머리카락...
자,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나에게 집안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설거지란 '귀찮은 일'이다. 더 정확히는 귀찮은 일이었다.
배부르면 눕고 싶고, 누우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인데 설거지라니, 그야말로 '딱 질색'이었다. 게다가 어디 그릇 닦기 뿐인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하수구 청소, 눌어붙은 레인지 청소까지...
어느 날은 설거지가 하기 싫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있더랬다.
그러나 지금은 설거지에 아주 작은 정을 가지고 있다. 한 연예인의 인터뷰 기사 덕분이었다.
'우울한 감정이나 무기력증에 빠질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시나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일단 몸을 움직여 무엇이든 하려고 하죠. 눈앞에 쌓인 설거지라던지. 그렇게 그 기분에 속지 않으려 합니다. 이 기분 절대 영원하지 않고 내가 5분 내로 바꿀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요.'
정확한 멘트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 인터뷰가 꽤나 인상적이었고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 새로운 공식을 만들었다.
설거지 =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나를 깨우는 일
그날 이후로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나, 온종일 일을 쌓아두고 빈둥거리고만 싶을 때면 설거지를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집 식구들은 밥 먹고 설거지를 쏙 담가만 두기에 설거지가 떨어질 일도 없었고
그 방법은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하기에 꽤 효과적인 촉매제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어떤 까닭으로 설거지를 싫어하게 된 건가 고민해보니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어딘가에게서 그렇게 듣고 자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요즘은 주변에 설거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이 들린다. 무언가 깨끗해지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뽀독뽀독한 촉감이나 물소리, 슬쩍슬쩍 느껴지는 세제 향이 좋다거나, 잡생각이 사라진다거나... 하는 말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정의하는 프레임, 즉 내가 만들어낸 '나의 세계' 안에서 생각하고 느낀다.
그 생각과 느낌을 만드는 프레임, 나의 세계는 '나의 언어'로 만들어진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어떤 이름과 정의를 붙이는지, 그것이 내 세계를 만들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나의 말과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점검하고 스타일링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중간에 잠시 멈추어 '과연 어디서부터 내 생각이 비롯되고 있는가',
'내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과 언어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명확하게 나의 언어로 바꾸어 '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이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언어의 힘을 모두가 깨닫기를 바라며 묻는다.
당신에게 설거지는 무엇인가요?
혹시, 집안일을 좋아하시나요?
저와 함께 언어스타일링 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