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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Mar 20. 2021

상하이 와이탄

꽁런과 영웅

퇴근 후 저녁을 들고 운동 삼아 와이탄(外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일상에 매여 사는 소시민에게 하루 일과를 끝내고 맞는 짧은 휴식은 더없이 푸근하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펴면 고향의 안방~" 가끔씩 오래전 병영에서 부르던 군가 <팔도 사나이> 한 구절이 저절로 입가에 맴돌 때가 있다.

상하이에 도착 후 이곳 제일의 명소이자 야경이 일품인 와이탄을 아직 찾아보지 못했었다. 내일 비 예보에 이어 주말 날씨도 장담할 수 없으니 오늘 밤만큼 딱 좋은 날도 없을 것이다.

이리루(伊莉路) 전철역으로 걸어가서 스마트폰에 미리 깔아 놓은 전철 탑승용 어플 '따뚜후이(大都会)'를 켜고 게이트를 통과하려는데 작동이 되지 않는다. 역무원에게 도움을 받으며 한참을 씨름하다가 결국은 무인 발권기에서 휴대폰 온라인 결제 어플 '알리페이(支付寶)'로 티켓을 뽑아 승차하기로 했다.

중국은 입국할 때 코로나19 검사 확인과 세관신고를 비롯해서 물품구매, 식당 이용, 지하철과 버스 승차 등 거의 모든 금전적 결재, 지불, 수취 행위를 은행계좌에 연계된 스마트폰을 통해서 하고 있다. 코로나 19 검사결과 음성이라는 녹색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제시하지 못하면 도시나 지역간 이동이 통제되고 공공장소 진입이 제지당하기도 한다.

거리에도 수많은 감시 카메라가 사람과 차량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1997년 개발되어 현재 중국 전역에 걸쳐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일명 '전자경찰' 시스템이 교통법규 위반 차량의 번호를 LED전광판에 즉시 표출하는 것을 시내 도로 곳곳에서 볼수 있다. 빨간불 주행, 후진, 과속, 정차선 넘기, 불법 주차 등 위반 차량을 전천후 모니터링한다고 한다. 한편, 안면인식 시스텀을 이용해서 출입시 보안검색을 하는 기차역 등에서 지명수배자들을 검거한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른 환경에 처하여 무엇이건 처음으로 하는 것은 쉽지가 않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기까지 많은 인내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처음이라 불편하던 것도 익숙해지면 오히려 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문득문득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예견한 것처럼 '빅 부러더(Big brother)'가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되는 사회의 모습이 이곳 중국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곤 한다.


전철 노선도를 보니 상하이에는 1~18호선과 세 개의 간선 등 21개 노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10호선 전철에 올라 아홉 번째 정거장 난징동루(南京東路) 역에서 내렸다. 넓은 대로 대신에 화강석으로 지은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옛 건물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 전철역에서 오백여 미터 와이탄으로 향했다.    

아편 수출로 무역적자를 해소하려던 영국이 일으킨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 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1842년 난징조약을 맺으며 영국에게 홍콩 할양, 광동 하문 복주 영파 상해 5개 항구 개항 등 강대국들의 반식민지로 전락하여 근대화를 강요당했다.

와이탄은 난징조약으로 개항된 상하이에 설정된 조계 지역(租界地域)으로 1845.11월부터 1943.8월까지 약 100년간 지속된 외국인 통치 특별구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가 각각 조계를 설정하였다가 나중에 영미 열강의 ‘공공 조계’와 ‘프랑스 조계’로 재편되었다고 한다.

양쯔강 하구를 향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황푸강으로 흘러드는 우쏭강(吴淞江) 위에 놓인 와이바이두교(外白渡桥) 부근 와이탄의 끝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다리 옆 가까이에 조명을 받아 선홍색 빛을 띤 상해시인민영웅기념탑이 아편전쟁과 5.4 운동 등에 희생된 중국 열사들을 기리며 우뚝 솟아 있다. 황푸강 건너편에는 동방명주 탑과 고층 건물군은 운무 속에 여러 색깔 조명을 받으며 신비롭게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황푸강에 접한 황푸 공원을 따라 걸으며 도로 건너편  약 1.5㎞에 이르는 대로를 따라 1890~1940년대에 지은 유럽풍 건물이 쭉 늘어선 와이탄 건물들을 찬찬히 감상하기 시작했다. 건물들은 서양인들이 모래톱이라는 의미로 부르던 '더번드(The bund)'에 순서대로 1~33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우쏭강이 황푸강으로 흘러드는 곳 모퉁이에 자리한 33호는 '外滩源'으로 불리는데 이는 1849년 영국 영사관이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와이탄 주요 23개 건축군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첫 건물에 이어 1852년과 1870년에 각각 지은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 건물은 1872년 지은 것이라 한다. 문혁 기간(1966-1976) 중 영국 영사관이 철수하자 여러 주인을 거쳐 2003년부터 와이탄위엔 1호로 이름이 바뀌어 '금융가 클럽'이 되었다고 한다.


더 번드 6호(The bund 6)는 중국통상은행 건물로 유일하게 19세기인 1897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조명을 받아 초록빛 지붕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사슌따샤(沙逊大厦)는 1929년 건축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다고 하며 찰리 채플린 등 유명인들이 머물렀던 호텔이라 한다.


1937년에 건축된 중국은행 건물은 외탄의 건축물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인이 설계했다고 한다. 1923년 건립된 푸동발전은행 건물은 와이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데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연상케 한다.


1927년에 완공된 상하이 해관 건물은 꼭대기에 '빅칭(Big Qing)'이라 불리는 시계탑이 있어 랜드마크처럼 보인다. 미국 국회의사당 시계탑을 참고한 것으로 백은 2천 냥을 들여 미국에서 제조한 것이라 한다.


해관 건물은 세번에 걸쳐 지어졌는데, 1857년 처마가 한껏 치켜올라간 중국 양식의 건물에 이어 1891년 같은 자리에 지붕에 6층 시계탑이 있는 붉은 벽돌의 빅토리아 양식 건물로 개축되었다. 현재 건물은 8층 90미터 높이로 와이탄의 9개 건물을 설계한 Palmer & Tuner 社가 설계하고 30개월만에 완공했으며 도리스 양식의 정문 현관에 건축양식은 아테네 파로테논 신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건축 당시에는 제일 고층으로 다른 건물들과 멀찍이 떨어져 자리하여 황푸강을 오르내리는 선박들을 굽어보았다고 한다.


상하이꽌(上海关)으로도 불리는데 조계지 내 유일하게 외국에 조차해 주지 않은 땅에 세워진 건물로 와이탄 건물군의 한가운데 의연히 자리하고 있다. 외세에게 관세 주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상징처럼 수려한 건물들 사이에서 저만의 유니크한 모습이 당당하고도 아름답다.


중국공상은행 건물은 일본계 은행이 1924년 건립한 것으로 중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받아내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저마다 독특한 모양을 지닌 건물들은 건축주나 설계자의 국적이나 용도 또한 매우 다양했는데, 와이탄 건물 대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호텔, 은행, 고급 레스토랑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청나라가 열강에게 내어준 모기가 들끓고 농사나 어업에도 적합하지 않은 불모지 진흙땅이 와이탄 지역이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부터 외국인들이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반 무렵에 기념비적인 건물들을 대거 세워 소위 '세계 건축 박물관’ 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상하이는 하노이, 바쿠, 바르샤바, 라호르 등 여러 도시들과 함께 '동방의 파리'라는 찬사를 받는다고 한다. 상하이가 파리의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와이탄을 밤에 와본다면 '상하이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는 말에는 저절로 공감하지 싶다.

2010년 상해 엑스포를 계기로 와이탄 주변 차도의 절반 이상을 지하화하고 넓은 보행자 도보 공간을  조성하여 쾌적하고 여행객들이 걷기에 편하다. 인파로 북적이는 난징루(南京路) 보행자 거리를 지나 전철을 타고 귀로에 올랐다. 이리루역에서 내려 숙소로 향하는 길 밤 11시가 가까운 늦은 시각까지 꽁런(工人)들이 보도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

만리장성을 비롯한 숱한 역사유적들은 물론이고 와이탄의 즐비한 건물들도 역사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민초들의 땀과 희생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와이탄 건물군과 멀찍이 떨어진 황푸 공원에 홀로 우뚝 솟아 있던 인민영웅기념탑이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인민'들을 영웅으로 기억해 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참고> 와이탄의 근대 건축물

1호 亚细亚大楼 1913년
2호 上海总会大楼 1910년
3호 有利大楼 1922년
5호 日淸大楼 1925년
6호 中国通商银行大楼 1897년
7호 大北电报公司大楼 1907년
12호 浦东发展银行大楼 1923년
13호 海关大厦 1927년
14호 交通银行大楼 1948년
15호 华俄道胜银行大楼 1901년
16호 招商银行大楼 1924년
17호 友邦大厦 1921년
18호 麦加利银行大楼 1923년
19호 汇中饭店大楼 1906년
20호 沙逊大厦 1929년
23호 中国银行大楼 1937년
24호 中国工商银行 1924년
26호 中国农业银行 1916년
27호 怡和洋行大楼 1920년
28호 格林邮船大楼 1922년
29호 东方汇理大楼 1914년
4호(中山东一路3호) 有利大楼 1916-18년
8호 金延大楼 2000년
10호 逐源大厦 2017년
22호(中山东二路22호)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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