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우한(武汉)과 위에양(岳阳)을 거쳐 창사(长沙) 남역에 도착했다. 역사 밖 부근은 빌딩 공사가 한창이다. 상하이 시내를 비롯해서 어느 도시건 중국은 목하 건설 공화국처럼 곳곳이 공사판이다. 국가발전 5개년 계획에 해당하는 <14.5 규획>에 따라 2021-2025년 기간에도 중국은 소위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샤오캉 사회(小康社会)' 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전철로 창사 역으로 이동해서 예닐곱 번 시도 끝에 찾아 예약해 둔 외국인 투숙이 가능한 호텔(山水时尚酒店)에 짐을 풀었다. 시각은 벌써 오후 다섯 시다. 원행에 길지 않은 여행 일정을 감안하면 짧은 자투리 시간도 요긴하게 잘 활용하는 지혜와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땀을 씻고 호텔을 나서니 여전히 후덥지근한 열기가 온몸으로 밀려든다.
창사는 민국(民国) 시절부터 창장(长江) 지역의 중칭 우한 난창 등과 더불어 중국의 '4대 화로(火爐)' 도시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우두머리(炉魁)라 불렸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 싶다.
택시를 잡아 샹장(湘江) 건너 악록산(岳鹿山)으로 향했다. 중국 여행 중에는 주로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로 이동하지만, 어중간한 거리는 택시에게 발을 빌려 발목을 잡으려는 시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곤 했다.
신민루(新民路) 악록산 들머리에 내려서 성루 아래를 지나서 국무원이 2002년 국가 중점 풍경 명승구(国家重点风景名胜区)로 지정한 악록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입구부터 정문을 지나고 나서 한동안 이어지던 너른 돌계단은 아스팔트 포장길로 바뀌었다. 그 길을 따라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덧 무성한 숲길에는 어둠이 내렸고 사람들을 가득 실은 전동차들이 간간이 오르내린다.
산마루 저쪽에 띠앤스타이(电视台)가 높이 솟았고 추석을 이틀 앞둔 둥근달이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샹장(湘江) 건너편 화려한 불빛의 도시 빌딩 숲 위에 휘영청 떠서 운치를 돋운다.
식당 카페촌이 산정 북쪽을 온통 차지하고 앉아 있어 마땅한 조망처도 없다. 앞뒤로 가족 연인 친구 등 끼리끼리 짝을 지어 마주 오거나 같은 방향으로 오르는 시민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산정 숲에서 가을벌레 소리가 들렸다가 이내 소음에 묻혔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동쪽 시내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관일대(观日台)라는 지점으로 산 아래 샹장(湘江) 건너 시내의 빌딩군을 스크린 삼아 화려한 조명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틈에 섞여 붉은 장미꽃 보다 더 붉은 꽃무늬등 형형색색 아름답게 표현하는 빛의 향연에 정신을 빼앗기며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전망대를 지나 내려가는 길도 순탄하다. 작은 아이를 등에 업은 가장이 첫째 아이, 아내와 함께 재잘거리며 아스팔트 산길을 내려가는 모습이 단란하고 정겹기 그지없다.
"워 비니 콰이(我比你快)"
어린 남녀 아이가 경주하듯 내리막길을 달음박질하고 아이들 아빠는 아이들이 넘어질까 조바심을 낸다.
악록산 산마루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휘돌아 내려오는데 2시간쯤 예상된다. 이천의 설봉산과 산세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악록서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팔라 올라오는 사람들의 걸음은 느리지만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소쿠리처럼 휜 산등성이 저편 멀리 지나왔던 능선 마루의 덴스타이(电视台)가 여전히 조명을 받으며 표족하게 솟아 있다.
애만정(爱晚亭)을 지나고 어둠이 내린 계곡 깊숙이 묻힌 악록서원 뒤쪽 담장을 휘돌아 내려선다. 계곡을 따라 지붕만 내려다 보이는 서원 너머 저쪽 시내 빌딩 하나가 뿔처럼 솟아 있다. 딱 두 시간 만인 여덟 시 반경 남대문(南大门)으로 나섰다.
우비(禹碑) 운록궁(云鹿宮) 고록산사(古鹿山寺) 애만정(爱晚亭) 악록서원(岳麓书院)과 황극강(黄克強) 호자정(胡子靖) 진작신(陳作新) 등의 묘를 비롯한 이 자그마한 산이 품고 있을 수많은 볼거리들과 사연들을 지척에 두고도 그냥 지나쳐 올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적지 않다.
악록서원 입구에서 덩까오루(登高路)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마오쩌뚱의 대형 동상이 자리하고, 악록산에 기대고 남북으로 흐르는 샹장(湘江)을 앞에 두고 후난대학(湖南大学)이 자리한다.
쥐즈조우 교(橘子洲桥)로도 불리는 샹장제일교(湘江第一桥) 위를 밀려가는 택시 천장에 두둑 거리며 비가 떨어진다. 차창 밖에는 빌딩을 스크린 삼아 선보이는 영상쇼가 끝나지 않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잠깐 뿌리다가 그친 비에도 '루쿠이(炉魁)' 창사(长沙)의 열기는 가시지 않고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