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청정국의 신화와 그 그늘

“마약이 없는 나라”는 지나간 옛 신화(Photo: UNODC)

by 약천

한때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다. UN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아시아에서 마약 오남용률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라고 기록됐다.

그러나 지금 그 평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균열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 청정국 신화의 배경

1990년대 이후,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국내에서의 마약 제조(밀조) 는 거의 사라졌다.

필로폰(메트암페타민)을 자체 생산하던 국내 조직들이 잇따라 검거되면서,

‘국내 생산 → 해외 공급’의 구조가 ‘해외 생산 → 국내 밀수입’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 적발되는 마약의 대부분은 해외에서 들어온 수입품이 되었다.

2012년 기준, 국내에서 압수된 마약 50kg 중 70% 이상이 외국에서 밀반입된 합성마약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렇게 믿었다.

“한국은 아직 괜찮다. 마약은 외국 이야기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문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2. 인터넷과 택배가 바꾼 밀수의 얼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마약 밀수는 완전히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SNS와 다크웹, 해외 직구 사이트를 이용해 ‘자가소비용 마약’을 직접 주문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트위터에는 ‘파티 약’, ‘행복 알약’이라는 암호가 돌고, 택배상자 속에 숨겨진 엑스터시·LSD가 공항을 통과해 집 앞 문턱까지 배달된다.

2019년 관세청은 ‘국제특송 마약 적발 전담팀’을 신설했다. 그해 적발된 마약은 1톤이 넘었다.

그중 절반 이상이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이었다.

범죄조직이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스스로 해외 사이트에서 구매한 것이다.

이제 마약은 “누가 파는가”보다 “누가 클릭하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3. 의료용 마약의 그늘 ― 프로포폴, 처방의 유혹

“수면마취 한 번인데, 왜 자꾸 하고 싶을까?”

의료용 마약인 프로포폴은 본래 수술용 마취제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숙면 효과가 있다’는 유혹이 퍼지며 남용이 사회문제가 되었다.

연예인과 의사, 일반인까지 불법 시술을 받는 사례가 이어졌고, 한때 한국은 브라질·아르헨티나에 이어 프로포폴 남용 세계 3위로 기록되었다. 병원에서 시작된 마약이 일상으로 스며든 것이다.

의료용 마약은 단속이 까다롭다. 처방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흐릿하다.

관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용 마약류의 불법 유통을 추적하지만, 온라인 처방과 해외직구의 확산은 이마저도 한계를 드러낸다.


4. 외국인 범죄와 ‘경유지 코리아’

또 하나의 새로운 흐름은 ‘중계 밀수’, 즉 한국을 경유지로 이용하는 국제 조직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허브 국가가 되었다. 물류는 빨라지고, 항공 네트워크는 넓어졌다. 그만큼 마약 조직에겐 매력적인 중간기착지가 된 것이다.

한때는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 등지의 조직이 한국을 거쳐 일본이나 호주로 마약을 옮겼다.

특히 인천공항은 ‘교묘한 경유지’로 자주 활용됐다.

한국 국적 항공을 이용하면 검문이 느슨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2012년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한국을 경유하다 적발된 외국인 마약사범이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필로폰, 헤로인, 코카인 등 세계 각지의 마약이 인천공항을 지나가고 있었다.


5. 세관의 최전선 ― 숨은 영웅들

마약 단속의 1차 방어선은 언제나 세관(Customs)이다. 인천공항, 부산항, 인천항 등 주요 관세국경에는 탐지견, 엑스레이, 분석장비, 마약반응 키트가 24시간 가동된다.

그러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감각’이다. 베테랑 세관원들은 짐의 무게, 포장의 두께, 여행자의 시선처리만 봐도 ‘이상한 징후’를 감지한다. 한 세관 관계자는 말했다.

“마약 수사엔 숙련된 검사기법과 감각이 중요하죠. 오감에 더하여 ‘직감’이라는 감각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들은 늘 부족한 인원으로 폭증하는 화물과 승객을 감시해야 한다. 가속화된 국제화로 인해 하루 수백만 명이 국경을 넘는 시대,

단 한 번의 실수로 수십억 원대 마약이 통과될 수 있다.


6. 마약과 사회, 비용으로 드러나는 현실

마약 범죄는 단속만의 문제가 아니다.

투약자 치료, 재활, 재범 방지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8년 기준 마약 오남용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약 1,642억 원, 암수범죄(숨은 범죄)까지 고려하면 최대 2조4천억 원에 이른다. 이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된다.

결국 마약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부담이다. 이 때문에 관세국경에서의 ‘선제적 차단’이 가장 효율적인 대응으로 평가된다.


7. 깨지고 있는 신화, 그리고 선택의 기로

지금 한국 사회는 ‘청정국’의 마지막 기로에 서 있다.마약류 범죄는 여전히 서구에 비해 적지만,

그 증가율은 2010년대 이후 10년간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특히 20~30대 젊은 세대의 비율이 급격히 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마약 없는 나라’로 인식된다. 하지만 세관과 경찰, 검찰, 의료현장은 이미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신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새 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3화지구를 연결한 검은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