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이 나를 공격한다

by 라온재


면역계는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든든한 방패다. 그런데 때로는 이 방패가 방향을 잘못 잡고, 스스로를 향해 칼을 겨눈다. 내 몸의 세포를 외부 침입자로 착각하고 공격하는 현상, 이를 자가면역질환이라 부른다. 류마티스 관절염, 루푸스, 크론병, 갑상선염 등이 대표적이다. 면역계는 외부 항원과 내 몸을 구별하는 정교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적 요인, 바이러스 감염, 환경적 스트레스 등이 겹치면 이 기준이 흐려진다. 면역계는 자신의 세포를 오인하고, 마치 적을 대하듯 공격을 시작한다.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전적 소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일수록 면역계가 외부 자극에 노출될 기회가 적어, 면역 시스템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청결 가설도 주목받고 있다.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이 면역계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다는 역설이다.


자가면역질환은 급격히 발병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조용한 염증 상태로 시작된다. 몸속 어딘가에서 미세한 염증이 지속되고, 그 결과 관절이 붓고, 장이 망가지고, 피부가 손상된다. 염증은 원래 면역계의 정상적 반응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지속되면 몸을 갉아먹는 병이 된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의 핵심은 과잉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면역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감염에 취약해지고, 암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면역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율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관리, 규칙적인 운동, 항염증 식단 등이 모두 면역 조율의 일환이다.


면역계는 내 몸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충성심이 방향을 잃고, 나를 해치는 칼날이 된다. 자가면역질환은 이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내 몸을 제대로 이해하고, 면역과 공존하는 지혜를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가면역질환과 함께 살아가는 첫걸음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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