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시성과 제안 사이에서, 나는 어떤 심리상담사인가
나는 가끔 이런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내가 믿는 것이 과연 ‘진짜’일까?”, “내가 전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 방식일까?” 하는 질문들.
나는 오랫동안 상담자로, 명상 전문가로, 때론 코치로 살아왔다. 그리고 늘 조심스러웠다.
타인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중해야 할 일인지,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의 자율성과 가능성, 내면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었다.
비지시적 태도. 열린 경청.
“답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내 실천의 철학이었다.
그런데,
임상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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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관점은 지워지지 않는다”
임상에서 17년..
이제는 나의 관점을 인정하고, 말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완전히 중립적인 사람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학문적 배경, 경험, 말투, 질문하는 방식,
그 모든 것이 이미 나의 철학과 관점을 반영하고 있고,
내담자는 그런 나를 선택하고, 나도 나의 방식으로 그들을 돕는다.
나는 라온에서 감각기반 정서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명상과 몸의 감각을 통해 감정의 흐름을 회복하는 여정을 안내한다.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내가 삶 속에서 확신하게 된 철학이고,
현재 신경과학이 말하는 학문적 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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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기 위한 ‘제안’은, 지시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담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기다리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안다.
• 감정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몸으로 훈련하고 익힐 때 더 깊이 회복된다.
• 감각, 호흡, 리듬, 일상 속의 루틴을 함께 만들어 가야 신경계 수준에서 안정감이 자리 잡는다.
• 이 모든 건, 때로는 내가 먼저 ‘제안하고 안내해야 가능한 여정이기도 하다.
이런 ‘제안’은 결코 지시가 아니다.
그건 내 경험과 신념에서 나온 하나의 초대장이다.
“이 길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건 오히려 상담자나 교육자의 윤리적인 용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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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믿는 철학과 진실을 제안할 수는 있다.”
내가 안내하는 길이 모든 사람에게 옳은 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에게는 지금 꼭 필요한 ‘전환의 문’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믿는 진실이 있다.
내가 함께 걷고 싶은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신 있게
이야기를 건넨다.
“이 길에서 만나지 않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