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란 무엇인가 - 자비(慈悲)
나만을 위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남을 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해서 한다는 것은 결코 그 하나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선이란 무엇인가> 스즈키 다이세쓰
밖에 나가는 것이 싫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 곁에 있어주려고 하는 사람들은 매우 힘들어했다. 소중한 사람이 아파하는데 어떻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삶도 서서히 조각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표정은 늘 어두웠다. 늘 마음의 부침이 가득했다 불안해보였고 버거워보였다. 집 밖에 나가 밥벌이는 하는 곳에서는 식당 사장 눈치보랴, 집 안에 와서는 자식 걱정하랴 자신의 삶을 지켜낼 수도 없고 그럴 의욕조차 없었다.
당시 언니는 첫 아이를 임신했다. 당신의 몸에 첫 생명이 생긴 소중하고 기적같은 시간들이었다. 몸 관리도 잘 해야하고, 먹는 것도 잘 먹어야하고, 주변의 도움도 참 많이 필요한 시간이다.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시간의 당신의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하지만 엄마는 둘째딸 때문에 첫째딸의 기쁨에 함께하지 못했고 신경쓸 새가 없었다. 그 중 다행은 형부가 언니와 늘 함께해주고 최대한 직장생활이 아닌 시간을 함께해주며 언니가 겪는 신체적 변화,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날 때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주었다.
소중하고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나에게 첫 조카가 생긴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 작은 생명을 보고싶은 기쁨은 나의 슬픔을 압도했다. 아무런 고민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아이를 보러가는 길에 큰 망설임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아이가 소중하고, 예뻤다면, 그 처음 세상밖으로 나온 아이를 정말 위했다면 난 그 날 문 밖으로 나왔어야 했다. 여전히 난 내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만 보고, 나만 중요하다고 여기는 마음은 진짜 나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나만 중요한 사람은 나를 위하는 삶을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그리고 나만큼 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나를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은 동시적이며 결국 같은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언니는 이제 아이를 더 이상 낳고 싶어하지 않는다.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도 먹지 못했고,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갖지도 못했다. 언니에게 아이는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고 혼자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을 다시 겪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슬픔은 세계의 슬픔이 되고, 나의 작은 기쁨은 세계의 기쁨이 된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한 아이의 생명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과도함이 아니었다. 너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들이 진정으로 나만을 위해 했던 행동들은 없었기에 가닿지 못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고의 텅 빈 반복이 아니었을까?
너를 소중히 대하지 못해서 나를 소중히 대하지 않았다. 나를 배려하지 않았기에 너를 배려할 수 없었다. 나를 돌보는 삶은 곧 너를 돌보는 삶이었다.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행하였던 것들의 물줄기의 방향은 주로 불행 또는 슬픔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자 배우고 또 배웠다. 하지만 그것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무도 내 것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배움을 가르쳐준 사람은 이미 너를 위하는 마음과 나를 위하는 마음이 같다는 것을 삶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너에게 주고 싶고, 나를 위하고 싶다. 나를 위하고 싶고, 너에게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