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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2

연원한 이별

by 오성진

우리들 셋은 평생을 형제처럼 지내 왔습니다.

이민을 간 친구도 늘 소식을 나누면서 지내 왔지요.

그런데 우리 셋은 묘하게도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당시는 추첨제가 아니라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러야만 했는데도 셋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학교에 들어갔지요. 게다가 유도까지 같이 했습니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중에 유도를 그만두었습니다만, 나머지 둘은 대학 들어갈 때까지 유도부로서 활동을 했습니다.


동아일보가 탄압을 받던 시절, 한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해외로 진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언제나 그룹을 이끄는 리더였지요. 그리고 친구 하나하나를 잘 챙겨주는 마음도 컸습니다. 그러니까 리더가 되었겠지만요.


20년 이상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오로지 책 속에 묻혀서 살던 친구였기 때문에, 연해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외모가 별 볼 일 없었냐면, 키도 크고 얼굴도 미남이었기 때문에 인기는 매우 높았지요.


공부 속에서만 살다 보니 그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 우리 둘은 내 아내가 질투할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아내는 나에게 "당신 애인"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20년간을 얼굴을 못 보고 살았지만, 서로가 멀리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친구란, 자신이 믿는 것만큼 상대방이 자신을 믿는다는 믿음을 가진 사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이 붙어살아야만 친구가 아니라, 거리와 상황에 관계없이 늘 마음속에 있는 관계가 친구인 것 같습니다.


그도 바빴고 나도 바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 년에 열 번을 만나지 못했습니다만, 연말에는 반드시 함께 했습니다.

그 친구는 휴대전화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주 불평을 했지요.

"너는 나에게 연락하는데 불편하지 않겠지만, 나는 매우 불편해!"

그렇게 말해도 그는 유선전화를 고집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를 "원시인!"이라고 불렀죠. 문화적 이기(利器)를 사용할 줄 몰랐으니까요.


그에게 전화를 걸면 늘 자동응답장치만 응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귀가를 하면 자기에게 걸려온 전화는 반드시 확인하기 때문에, 사실 만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 년에 열 번 정도 밖에는 만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늘 만날 수 있는 사이였으니까요.


사람들과 저녁 약속을 할 때는 아내에게 눈치가 보이지요. 그렇지만 그 친구와 만난다고 하면 아무리 늦어도 아내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 결혼 때 함잽이를 했던 친구라, 아내에게도 각별히 가까운 사이였다고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친구 중에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었던 것이죠.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던 해 겨울. 연말이면 반드시 나와 만나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나는 자주 연락을 안 해서 토라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서운했지요.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났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성진아, 병원 좀 소개해줘.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턱관절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까 치과병원에 가보라고 그러거든"

그래서 병원을 소개해 줬지요.

그랬더니 그 치과병원에서 혈액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대학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학병원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진단을 받게 했습니다.


"성진아, 임파선종이라고 하는데......"


그를 대학병원에 소개를 해 주고 입원을 부탁했습니다.

병원의 과장 친구가 이야기를 하더군요.

"여기서는 더 할 게 없어"


그는 더 큰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입원해서 치료할 계획을 세웠죠.


그런데, 그 해가 바로 중동호흡기 증후군(메르스)으로 삼성의료원이 폐쇄가 되었습니다.

입원을 앞두고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죠.


그 친구는 휴대전화를 처음으로 구입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했지요.

그를 기다리는 제자들로부터 응원의 메시지가 많이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의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의 빈소를 찾았을 때, 50년 동안이 우정의 기억이 내 눈앞을 가렸습니다.


영원히 나를 떠난 친구.

10년이 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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