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후배 치과의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좋은 때가 있었나요?”
지난 30년 동안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격랑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1997년의 IMF 위기를 거치고 그 이후로 편안한 날이 하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아현동 가스폭발, 대구 지하철 화재, 무안공항의 비행기 추락사고, 연평 해전, 신종플루 유행, 세월호 사건, 메르스 유행,...... 아, 일일이 셀 수 조차도 힘든 많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후배의 말이 새롭게 와닿습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 지내 왔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잘 지내고 있지요. 사람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좋은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날씨가 포근하고 바람도 없는 날, 이런 날이 계속된다면 좋겠지요? 사랑하는 사람 둘이서 잔디밭에 앉아 넓게 펼쳐진 평야를 바라보며 행복한 시간을 오래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끝없이 그렇게 지내면 어떨까요? 아마도 지루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을 자연현상에 비유해 가면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될 때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폭풍우로 흔들거리면서 높은 파도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에 비유를 하기도 하지요. 그것은 고통이라는 것이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삶이란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고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삶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소위 사는 것 같이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때가 좋았지
지내고 나면 옛날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서는 혼잣말로 읊조립니다. “ 그때가 좋았어......”
그런데 그 당시에는 좋은 줄 몰랐지요.
과거에 심한 고통을 겪은 일이 있다고 할 때, 그 당시는 죽고 싶을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려웠다는 기억은 남지만, 얼마나 힘들었는지의 정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필립얀시(주 1)는 인도의 나환자촌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나환자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와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제 쥐가 내 손을 물어뜯어먹었어요”
그에게서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서 얀시는 깨닫습니다. 고통이라는 것이 없으면 나환자처럼 위험에 처했을 때 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고통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말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습니다. 당시는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깨달았다는 기쁨을 기억하고, 또 지난 시간의 일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좋았다.”라고 말입니다.
후배의 이야기도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인 것이죠.
삶이란 좋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 것이죠.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가치 있게 산다는 것입니다. 보물을 계속 쌓아가는 것이죠.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이죠.
보물을 쌓아간다고 하니까 혹시 눈이 번쩍 떠지셨을는지도 모릅니다.
요새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작년 말에 지담 작가가 ‘엄마의 유산’을 발간하고 나서 이어서 위대한 시간이라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많은 작가님들께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참여를 해 주셨고, 그 이후에 반년이 넘게 저술을 위한 온라인 오프라인 모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참여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열의는 용광로보다 뜨겁습니다.
줌 모임을 거의 매일 가지고 있는데, 자주 울음보가 터지곤 했습니다. 그 울음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감격에 넘치는 울음이었습니다. 그런 모임이 반년 이상 계속이 되었고, 이제 7월에 두 권의 책이 발간됩니다. 14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저술을 마무리하여 곧 여러분에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을 출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모는 그동안의 고통을 다 잊어버릴 정도로 기쁨에 싸입니다. 책을 쓴다는 것도 그런 기쁨을 맛보는 것이죠. 그래서 보물을 쌓아가는 것이 되는 겁니다.
“그래 잘 지내고 있어”(주 2)
에픽토테스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죠.
행복은 매일매일을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로또 당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의 이면에는 눈물이 반드시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지요? 시편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수확을 하리로다”
그렇습니다. 기쁨을 얻는 데에는 반드시 눈물을 흘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삶이란 것이죠.
주 1)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필립 얀시 저, 이영희 번역, 생명의 말씀사, 1999
주 2) 에픽토테스의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