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유로운 영혼 - 생각만 해도 행복해

by 오성진

수년 전 한 예술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커다란 컨테이너 하우스를 얻어서, 그 안에서 아내와 함께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재즈연주자들을 초청해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술을 좋아하면서도 깊이 들어가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매우 신선했고 흥미로웠습니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자유로운 영혼이네”


아내의 어투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삶 -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무엇인가를 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그렇지만 그 삶에 관해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나의 삶의 모습과 비교하지 않고 말이죠.


자유로운 영혼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 말에 관해서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 막연히 자유라는 단어만 기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니, 그 모습을 더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 환경의 특징


요새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을 해 가는 동안에 자기의 꿈을 키우지 못하고 부과되는 과제를 해야 한다는 부담만 가지고 긴 시간을 자랍니다. 그리고 사회에 뒤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꿈 - 구체적이든 아니든 마음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미루어 두고, 사회의 통념에 따라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향해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청소년기는 아직 두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입니다. 뇌에서 가장 늦게까지 발육하는 부분이 이마 쪽에 있는 이마엽 겉질(전두엽피질)인데, 25세 전후에 성인의 수준으로 완성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판단은 보호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보호자의 책임은 이 시기에 막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한참 발육하는 시기인 중고등학교 시절이란, 보호자들이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 온 힘을 쏟고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보호자로서도 정신적으로 충분한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자녀들을 대하기 쉬운 시기이지요. 그래서 청소년들은 그런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죠.


보호자들에게 제일 바쁜 시기가 청소년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기회죠. 그래서 그런 누림을 가질 수 있는 가족은 복 받은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시기가 주어졌다는 자체로 말이죠. 그래서 보호자의 소양이나 재정능력보다 우선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사실을 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호자로서도 자신들의 삶의 성숙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시기인데, 자녀들을 어떻게 이끌어서 그들의 미래가 행복하게 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많은 보호자들이 이런 문제로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어머니의 경우에는 주위의 정보들을 들을 때마다 늘 긴장하면서 자신의 삶을 뒤로 미루고 자녀들에게 온 힘을 쏟고 살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생각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녀나 보호자나 모두에게 삶의 올바른 길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할 시기라는 점을 말이죠.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나는 인간으로서 할 일을 하기 위하여 일어난다'고 생각하라. 그 때문에 내가 태어났고, 그 때문에 내가 세상에 나온 일을 하려는데 아직도 불평을 한단 말인가?”(주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삶에서 받는 모든 것은 감사할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그동안 자연으로부터 받아서 누린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감사할 것 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게으르게 살 틈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니면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워 몸이나 데우려고 만들어졌단 말인가?”(주 1)

그는 계속해서 이 세상에 있게 된 것의 의미를 생각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너는 작은 식물들이, 참새들이, 개미와 거미와 꿀벌들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서 우주를 구성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주 1)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열등한 생명체도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합당한가를 깨우쳐줍니다.


우리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보호자로서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부지런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자녀들이 그 모습을 보고 그것이 행복의 근원임을 알아가게 하면, 가정은 항상 기쁨으로 가득하고 희망이 가득한 곳이 됩니다.


어린 시절에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바라보았던 세상은 그저 좋았습니다. 들판에서 동네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다가, 저녁이 되어 어머니의 “밥 먹어라”라고 부르시는 소리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던 매일매일.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에 살게 되어 재미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매일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 정신적으로는 미숙한 상태였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성숙하게 되었을 때보다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삶을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마음의 짐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들어간 후부터는 하나 둘 알아가게 되는 짐들. 지고서 나아가지 않으면 삶이 힘들어지고 재미 없어진다는 불안감으로, 주어지는 과제들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고, 노는 것이 불안감을 이기면, 괴체는 던져버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신나게 놀다 들어오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것이 좋은 삶이 아니었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서 야단도 맞고 마음을 고쳐 먹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거치면서 말이죠.


세상에서 조금의 실수도 해서는 안된다는 중압감. 그래서 완벽이라는 것을 향해서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나아가지만, 그것이 자기의 꿈이 아니라면 나중에 어떤 생각으로 자기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될까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완벽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이 그것으로 끝나고 사라질까요?


자유로운 영혼과 자기의 삶을 살기


아이들의 성숙은 부모들의 시간표와 얼마만큼 관계가 있을까요? 부모들도 인생에 있어서는 미숙한 존재이면서 자신의 삶의 시간표도 완벽하게 세우지 못하면서 자녀들에게 부모의 시간표를 요구할 수 있을는지요? 그 시간표는 아직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 이루어야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이 갖추어질 것인지는 누구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의 꿈이 무엇인지 부모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부모만큼 자녀를 잘 아는 존재는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것은 아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보호자의 역할이 아닐까요? 그리고 아직 충분히 모르겠다면, 알기 위해서 보호자가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녀의 꿈과 재능에 관해서 말이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자녀로 큰다는 것만큼 부모에게 효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늘 왜소하게 느끼면서 사는 자녀를 봐야 한다면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미국의 한 외교관이 빅터 프랭클을 찾아왔습니다. 상당히 고위관직인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상담을 받고 나서 그는 과감하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직업으로 바꾸었습니다. 수년 후 프랭클에게 쓴 편지에는 그가 매우 행복하게 자기의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외교관을 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강력한 요망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지 않은 일을 한 것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이죠.(주 2)


자유로운 영혼이란 자신의 꿈을 향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사는 모습일 것입니다. 행복한 정소년들의 미래를 위해서, 행복한 부모들이 되기 위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글에서 보호자와 부모를 혼용해서 쓰고 있습니다만, 청소년 가운데에는 부모님이 아닌 양육자의 돌봄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혼용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 1: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전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24

주 2: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이시형 역, 창아출판사, 200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