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생활 살림으로 공부를 멈추었던 딸이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나에게 읽어봐 달라고 해서 읽어 보았는데, 주제도 좋았고 내용도 좋았습니다.
올초에 학위과정에 지원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더니 두어 달 전부터 연구 주제를 뭘로 해야 할는지, 또,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할는지 모르겠다고 고민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연구주제야 자신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도시재개발을 주제로 하면 될 것이라서, 일단 가상의 논문을 써 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4년 동안을 연구생활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잘 써지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내가 학위과정에 들어가서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을 때, 먼저 연구계획서를 발표해야 했는데, 연구계획서는 가상의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의 목적과 방법, 연구결과, 고안, 결론 등등의 논문형식에 따라서 작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그렇게 쓰기부터 시작해 보라고 권했죠.
조금 전에 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논문 완성했는데 한번 봐주실래요?"
에? 벌써 완성을 했다고? 설마.
카톡으로 보내 준 논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와! 어떻게 이걸 두 달도 안되어서 완성을 했지? 다음 달이면 첫 아이 출산까지 있는데.
논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괜히 예뻐 보여서가 아니라, 내용적으로 아주 좋았습니다. 늘 자신의 마음속에 두고 있던 것을 한 편의 논문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최근에 올린 브런치 글이 벌써 2주 전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빠의 유산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동집필을 하다 보니 글 하나 쓰는데 시간이 정말로 많이 걸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브런치 글이 자꾸만 미루어져 왔네요. 다른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있고, 아빠의 유산 글도 계속 쓰고 있다 보니 다른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을 해 왔는데, 오늘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나의 젊은 시절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가 있습니다. 전헤린이라는 분이었는데 30대에 요절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자주 있었지요.
전헤린이 매우 좋아하던 독일의 작가가 있습니다. 루이저 린자라는 분입니다. 얼마나 그를 좋아했는지, 전헤린의 작품 가운데 루이저 린자의 글제목을 그대로 가져 온 것이 있습니다. 글의 제목은 "생의 한가운데에서(Mitte Des Lebens)"라는 글입니다.
글 속에서 린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끝없이 써 나갑니다. 그리고 편지봉투에 넣어서 보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고 나서는 보낼 마음이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그 편지는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마음이 쪼그라들어 버립니다. 우리 아이가 논문을 쓰겠다고 시작을 해 놓고는 한동안 진적이 없었던 이유도 아마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논문의 형식으로 가상의 논문이 완성이 되고 나니, 이 정도면 괜찮은 논문을 만들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단 마음이 정해지고 자신이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에 따라 자료를 수집하고 논문을 작성해 나가다 보니 원했던 글이 완성이 된 것이죠.
제대로 된 글쓰기의 초보로서 나의 생각을 좋은 방법으로 표현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글 쓰는 일이 갈수록 어렵게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요. 글 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이 맞습니다. 생각이 펜을 통해서 종이에 써진다고 글이 될 수는 없는 것이죠. 정확한 주제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읽을 사람들에게 양식이 될 수 있도록 갖추어져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일관되어야 하고요.
아빠보다 월등히 나은 우리 딸을 보면서 자랑스럽기도 하고, 내가 더 노력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깊어집니다. 딸에게 남겨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유산을 써야 하겠다는 마음을 더욱 다집니다.
그리고, 들쭉날쭉한 글쓰기 습관부터 고쳐야겠지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