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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Yeon Cha Sep 25. 2015

오늘은 무얼 먹나?

오늘도 새댁은 밥상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어릴 적 엄마가 매일 같이 하시던 말씀 중 하나가

"오늘은 뭐 해 먹나?"

였다.

그때는 무얼 그런 게 고민일까 싶었다.

그런데 주부가 된 나로서 이제야 깨닫는다.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최고의 고민이다.

직장을 바삐 다니느라 마음이 있어도 집밥을 하기 어려운 주부들 또한

밖에서 먹을거리 고민하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잠시 일을 쉬면서 백조 놀이 중인 나로서는 똥줄 타게 일하는 신랑을 위해서

집안일이라도 열심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중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작업이 매일 식탁을 채우는 일이다.

우선 식탁을 채우기 위해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트라는 재료상점을 찾아야 하는데

국이든 찌개든 머 하나라도 만들려고 하면 금세 장바구니는 무거워져 어깨를 누르고

지갑은 가벼워진다.


정말 요즘은 만원으로는 한 상 차리기 참 애매하다.

그래도 나름 4년 차 주부인지라 마트 세일 시간에 쏜살같이 달려가 일원 단위라도 저렴한

가격표가 붙은 것을 골라내는데 달인의 손놀림을 발휘한다.

어떨 땐 득달같이 달려가 뺏기기라도 할까 봐 독수리가 먹이를 잡아채듯 물건을 집어내는 스스로를

순간 유체이탈 한 듯 바라보게 되는데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거추장 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손에는 카드지갑과 핸드폰 외에는 잘 들지도 않았던 

향기 나는 아가씨는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유난스럽게 손과 발을 움직이며 장을 보던 아주머니들을 째려보던 나를

지금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똑같이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손에 이미 집은 것은 내려 놓을 수는 없다!

'난 아줌마 이니까!'하는 뻔뻔함으로 얼굴에 가면을 씌우고 그 곳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버린다.

여기서 잠깐!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매일같이 뻔뻔한 아줌마 모습만 하지는 않는다.

아줌마여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쉽게 다가가기도 하고

가끔은 원더우먼처럼 멋있는 옷을 입기도 하니까!(ㅎㅎㅎ누가 뭐랬나?)


어쨌든 집으로 돌아와 알차게 채워 온 장바구니를 풀어서 하나하나 해체 작업을 한다.

분명히 메모해 갔음에도 꼭 머 하나씩 빠져있다. 에휴~

그래도 괜찮다.

메뉴를 변경하면 되니까!!!


요즘은 테레비 (나만의 옛 스러운  애칭)에서 하도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아서

재료 손질부터 씻는데만 해도 벌써 진이 빠진다.

또 나름 깔끔 떠는 성격이라 시키는 대로 다 한다.(사서 고생하는 스타일)

그래도 모르면 모를까 몸에 해롭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모르는 척 할 수는 없다.


한참을 정성 들여 까고 씻고 자르고 해서 밑재료 준비를 마치면

나름 쉐프의 자태로 팬과 주걱?을 꺼내 비장한 모습으로 가스레인지 앞에 선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불  조절해 가면서 팬 속에서 조금씩 음식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아이들을

만지작 거리다 보면 어느 새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기대의 한 스푼을 팬에 찍었다가 입에 가져다 댄다.

음... 이 맛!

이 아니야...

이럴 때 어쩔 수 없이 슬쩍 감춰 둔 비밀의 상자를 꺼낸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아무도 없지만 뒤를 한 번 슬쩍 돌아본다.

그리고는 상자 속의 새 하얗고 보드라운 신성한 가루를 아주 살짝 집어 든 후

팬에다 백분의 일초의 속도로 넣는다.

다시 팬에 확신의 한 스푼을 찍어서 입에 가져다 댄다.



'하아...... 이 맛!

이야!!!!!!!!!!!!'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엄마의 손 맛이라는 것이

이 비밀의 상자 속 신성한 가루가 빚어낸 마법의 맛이 아닐까?

깔깔깔...



음식 타박 한 번 없이 접시 싹싹 비워주는 신랑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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