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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어서좋아 Jan 19. 2024

중3 37등 왕따 학생이 2호선을 타고 대학에 가다!

나의 첫 늦은 공부 이야기

 엄마는 늘 우리를 2호선에 있는 대학에 보낸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셨다. 중학교 때 그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뭔가 큰 자괴감이 들었다.


 중3 때 나는 삶을 오늘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중2 때까지는 그래도 중간 정도는 하던 성적이 37등까지 떨어졌고, 2학년 때 시작된 왕따는 3학년이 되자 더 지독해지고 있었다. 키는 크지 않아 반에서 7번째로 작은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서울 지하철 2호선 대학?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도 걱정하고 있었다. 3학년 1학기 때 나름 괜찮은 공업학교나 상업학교, 요새는 특성화 고등학교라 불리는 곳의 지원이 있었는 데 담임선생님이 그마저도 힘들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매일매일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시험이었던 연합고사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급에서 공부 잘하던 아이 중에 하나였고, 시험만 끝나면 내 옆에 답 맞추러 아이들이 모이곤 했었는 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뭐 초등학교 4학년에 이사한 이후로는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얘기긴 했지만 뭔가 매일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나 자신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학교 끝나면 오락실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던 내가 얼마나 억울하던 지. 갑자기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내 몸 하나 누이기도 힘든 18평 아파트 내 작은 방에서 펑펑 울었다.


 눈물에는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엄청난 울보였지만 내가 울 때는 대부분 무언가 하기 싫거나 창피할 때였다. 하지만 그때는 무언가 정화되는 느낌이 들며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다음 날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고 쓸 거라고 다 들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의 전개가 엄청 뻔했으니까 결론도 그렇게 열심히 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될 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뻔한 결말이 되었다면 난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오락을 못 끊었다. 오락도 잘 못하는 데 이상하게 이게 보는 것에 맛을 들이니 중독성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2시간 이상은 계속 오락실에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는 떡볶이를 못 끊었다. 오락실 옆에 진짜 떡볶이 팔아 나중에 건물을 세운 떡볶이 집이 있었다. 그 집에서 떡볶이 한 접시와 김말이 2개를 먹어주지 않으면 나는 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에게는 전략이 있었다. 전략 과목을 정하기로 했다. 지금의 20, 30대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당시에는 음악, 체육, 미술을 포함한 전 과목 시험을 봤다. 그래서 그중에 전략 과목은 만점을 목표로 하고 토끼몰이식으로 공부를 했다. 부족한 과목은 과감히 포기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였다.


영어는 그나마 엄마의 치맛바람으로 5살부터 조기 교육받은 효과가 있어서 전략 과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전략의 퍼즐은 수학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포기한 수학이었기 때문에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포기해도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걸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나의 첫 늦은 공부가 시작되었다.


시험을 앞둔 3개월 전 나는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서를 펼쳤다. 3월에 폈다면 나름 가능성 있는 전략이었겠지만 나는 무려 3개월 전에 펼치는 어이없는 짓을 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뭔가 쓸데없는 자신감이 샘솟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고등학교 못 가도 그만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하며 풀 수 있는 문제와 못 푸는 문제를 구분하며 공부하였다. 풀 수 있는 문제라도 꼭 풀어내자는 생각이었다. 이 전략이 나중에 공무원 시험 합격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전략이 될 줄은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뭔가 간절함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시험을 봤다. 결과는 200점 만점에 180점! 이 점수는 고등학교 반에서 5등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37등 하던 내가 3개월 공부로 5등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자보다는 전략적으로 하자는 마음이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때는 전략적이라는 단어는 몰랐고 나는 남들보다 늦었으니 다른 방법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전법은 고등학교에서도 이어졌다. 기초가 없으니 고등학교 수학은 훨씬 더 절망적이었다. 50점 맞기도 힘든 상황에서 나는 도서관 열람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많은 친구들이 보던 책은 요약식으로 되어있어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책이 <수학독본>이라는 책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니 아직도 이 책을 팔고 있었다.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소설처럼 자세하게 수학 이론들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수학 공부할 시간에는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펴놓고 모르는 부분은 반복해서 읽으면서 공부했다.


그러고나서 수학 성적이 드라마같이 올랐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수학 성적은 바로 오르진 않았다. 하지만 높게만 느껴졌던 수학의 벽이 점점 낮아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성적은 답보상태였다. 그 과정이 너무나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그냥 할 만 했다.


결국에 수능에서 막판 포텐이 터져 주었고 평소의 수학 성적보다 20점을 더 맞아서 대학 합격에 큰 도움이 되었다.


중3 때 절망적이었던 나는 늦어도 포기하지 않고 시작했던 수학으로 인해 끝이 없어 보이던 늪에서 드디어 탈출할 수 있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가장 좋은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상위권에 속하는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이후에 대기업 취직도 해보고, 이민 경험도 가질 수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43살에 국가직 공무원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누나도 2호선에 있는 대학 중에 한 군데에 입학하게 되었고, 엄마는 졸지에 꿈을 이룬 사람이 되었다.


대학 합격 이후에 나나 누나나 엄마 속을 썩이는 순간이 엄청 많긴 했지만 아직도 두 아이의 2호선 대학은 엄마의 큰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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