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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Nov 14. 2017

'연애' 아닌 '연애담'

(자)타공인 연애 카운슬러가 비연애, 비혼을 지향하게 된 이유

개강하기 전에 절친과 유우명한 타로 집을 간 적이 있다. 사실 진로운이 제일 궁금해서 갔고 다른 건 심심풀이로 봤다. 대인관계운, 건강운, 재물운 등을 봤는데 어느 정도 맞는 듯하다. 확실히 허리, 심장 쪽을 조심하라는 건강운은 맞았다. 나는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연애운도 한번 보라며 찔러보았다. 마음 있는 상대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연애운을 보는 방식이 다르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애인이 있는 경우는 “이 사람과 잘 될까요?” 혹은 “이 사람과 계속 만나도 될까요?”을 물어보고, 없는 경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까요?”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까요?” 등등을 물어본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길까요?”의 답은 나중에 말하도록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까요?”의 답은 이러했다. 


“본인이 본인 챙기느라 연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맞다. 나는 비연애, 비혼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연애, 결혼이 하나의 필수조건 혹은 스펙으로 생각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놀랍지는 않다. “왜?”라는 의문문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아니 20대 초중반에 좋은 대학 다니고 멀쩡하게 생긴 여자애가 왜 연애, 결혼을 안 한다는 거야? 대학 다니면서 연애는 꼭 해봐야지!”


그나마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은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 같다. ‘미혼’이라는 단어가 ‘비혼’으로 바뀌고 한국의 결혼 제도가 청년층, 특히 여성에게 절대 유리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은 다들 인지하는 듯하다(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연애를 그다지 안 하고 싶다는 말에는 다들 고개를 갸우뚱한다. 


“혹시 데이거나 특별한 사건이라도 있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이성애적 연애, 결혼을 피하게 되는 이유는 딱히 특별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혹은 사회적 남성에게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스젠더(생물학적, 사회적 젠더가 일치하는 사람) 이성애자 여성이 연애와 결혼을 회피하게 되는 경우는 다양하면서도 비슷하다. 


내 성향부터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의 일에 집중하는 편이고 그래서 누군가가 스스로의 세계로 쉽게 들어오거나 흔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넓고 얕은 인간관계보다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편이며, 이는 거꾸로 마음의 방어벽이 굳건하나 한번 무너뜨린 사람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살면서 누군가를 좋아한 기억이 많지 않다. 기준도 까다롭고 좋아하는데도 오래 걸린다.


한 사람에게 이상적인 사랑의 기준이 10이라고 치면, 1만 되어도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나는 10 중에 최소한 6-7은 되어야 돌다리를 두드릴까 말까 하는 사람이다(내 기준은 추후에 한번 써보고자 한다). 대신 한 번 마음이 가면 상당히 오래가는 성격인데, 생각보다 그런 사람과 잘 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타로 봐주던 분이 그러더라. 


“자기 친구는 하나만 보고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데, 자기는 자기 기준에 사람 자르려고 해-.”




앞서 말한 타로에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길까요?”의 답은 이러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이런 카드가 나오지? 객관적으로 인기가 없는 건 아닌데, 이성이 보기에 본인이 되게 높고 대단한 사람으로 보여서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겨도 대시까지 가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


음,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말하자면 소위 ‘대단해 보이지만 다가갈 수 없는 여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나 할까(오해할까 그러는데 자랑질이 아니다. 정작 내 자시은 왜 이런지 잘 모르겠다). 지인들은 ‘아우라가 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8년 지기 친구 왈) 자신감을 온몸에 두르고 다닌다’, ‘첫인상이 다가가기 어려웠다’고들 말한다. 대학교 새내기 때 과 남자 동기들이 (나름 칭찬이라고) ‘신여성’이라고 말한 기억도 선명하다. 차라리 여성에게 걸 크러시의 대상이 된 적이 많았음 많았지, 남성에게 직접적인 대시를 받은 기억은 진-짜 별로 없다. 가끔 스스로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의심해본 적도 있지만 (아직은) 이성애자가 맞는거 같고. 아, 워낙 성별 구분 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바람에 둔해서 그럴 수도 있다. 




진짜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나오는데, 내 자신 연애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으나 지인들이 연애상담을 요청하거나 연애담을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짐작되는 이유를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사람을 만날 때 경청을 잘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다. 

2) 아닌 건 아니라고 딱 잘라서 말하지만, 어차피 강요해봤자 본인 마음대로 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번만 말해준다. 

3) 한국 사회에서 아직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연애 상담을 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러다 보니 친구 표현에 따르자면 ‘연애에서 실패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연애 경험 없이도 목격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과도 밀접하다. 

데이트 폭력을 겪는 여성들이 결코 뉴스 속에서만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에게 데이트 폭력 상담을 권해주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 

이성애자이자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나를 존중해줄 사람을 한국 사회에서 만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내게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 역시 알게 된다. 


마초성을 견디느니 외로움을 견디는 게 낫다. 연애 관계가 꼭 외로움을 해소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연애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한다. 


이 매거진의 이름이 다른 매거진들과 달리 ‘누군가의 ~’가 아니라 <연애 아닌 연애담>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형화되고 옳다고 생각되는 ‘연애’만 다루고 싶지 않아서다. 이는 필자가 비연애, 비혼을 지향하게 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정작 사랑, 연애, 결혼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래퍼토리는 어쩜 그리 식상하고 상상력이 부족한지. ‘이성애자 남녀 커플이 만나서 남성이 다가가서 고백하고 여성은 연애 관계에 돌입하면 치마를 자주 입고 화장을 더하게 되며 데이트하고 연애하다 마음의 균형이 달라지며 남성이 떠나버리는 연애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고 재미없잖아. 


내 이야기를 쓸 수도 있고 주변 이야기, 주워들은 이야기도 쓸 수 있다. 

짝사랑/외사랑 이야기도 좋고 연애지상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할 수도 있다. 

Friends with benefit, 데이트 메이트와 같은 중간에 존재하는 관계, 

자유연애와 폴리아모리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연애’가 아닌 ‘연애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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