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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ug 24. 2021

여름밤

요다 제 28화

   

자가 격리를 힘들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도 집에만 있는 터라 자가 격리 2주쯤 힘 안 들이고 할 자신 있었다. 집안에 갇혀있는 게 뭔지 몰라서 가졌던 자신감이다. 평소 집에만 있다고 해도 집안에만 있는 건 아니다. 현관문을 냉장고 문 열 듯 뻔질나게 여닫으면서 마당에 왔다 갔다 하고, 수시로 동네 한 바퀴를 돈다. 그러나 기온이 35도를 넘어가면서 정말로 집안에 갇혀버렸다. 현관문을 열면 햇빛이 폭우처럼 쏟아져서 현관문 밖엘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열기에 포위된 채 집안에 갇혀 지내기를 벌써 몇 주. 종일 하교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해지기를 기다리지만, 여름 해는 좀처럼 질 생각을 않는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혹시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았을까 하고 몇 번이나 창문을 열어보지만, 그때마다 더운 열기가 얼굴에 확 끼친다. 마침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밖으로 탈출한다. 좁은 골목엔 낮의 열기가 숨 막히게 고여있지만, 머리 위에서 이글대는 해만 없어도 한결 돌아다닐 용기가 난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바람이 분다. 바람도 고양이처럼 자기 자리가 있다. 고양이들이 어디 있는지 살피듯 바람이 있는 곳을 살피며 걷는다. 바람, 바람, 바람 없고, 바람. 공터를 지나 일방통행로는 길 한쪽이 트여있어 계속 바람이다. 그런데 일방통행로 중간에서 바람이 뚝 끊긴다. 도로 아래 비탈에서 자란 소나무 세 그루가 도로 위로 가지를 뻗고 있는데, 그것들이 바람을 막는 것이다. 바닷가 마을 입구마다 방풍림이 서 있다. 겨우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바닷바람을 막을 수 있을까. 어림없다고 여겼다. 바닷가 방풍림을 과소평가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세 그루 소나무를 지나는 동안 정말 바람 한 점 없다. 바람이 없는 곳에는 고양이도 보이지 않는다. 산책로를 중간에서 뚝 잘라 방풍림 직전까지만 걷는다. 게걸스럽게 바람을 쫓아다니며 걷는다.     

 

집에 돌아오면 더위에 익은 얼굴이 벌겋다. 옷을 훌훌 벗어 빨랫줄에 걸고 수돗가에 앉는다. 수돗물을 틀자 찰리가 호수에 머리를 디민다. 고양이는 졸졸 흐르는 물을 좋아한다. 물을 세게 튼다. 호수에서 쏟아지는 물이 웃음처럼 쾌활하다. 화장실 물과 수돗가 물은 한 파이프에서 나오는 데도 성격이 딴판이다. 화장실 물이 내성적이라면 수돗가 물은 외향적이다. “으 차거!” 물을 끼얹으면 절로 나는 비명을 간신히 삼킨다. 담 너머가 골목이라 누가 들을까 봐 조심스러워서다. 물이 튀기자 찰리가 저만치 물러난다. 장독대 계단에는 요다와 고소영이 엎드려 있다. 눈 덮인 온천에서 일본원숭이들과 노천욕하는 게 나의 오랜 꿈인데, 고양이들에 둘러싸여 목욕하면서 그 꿈이 여름 버전으로 실현됐구나 싶다. 노천욕이 별건가. 지붕 없는 곳에서 하면 노천욕이지. 백일홍 핀 수돗가에 여름 정취가 물씬하다.    


샤워가 끝나면 빨랫줄에 걸린 옷을 챙겨입고 옥상에 올라간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바람이 나를 맞는다. 마당에는 바람 한 점 없어도 한층 계단 위의 옥상엔 언제나 바람이 분다. 옥상 평상에 누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람을 뒤집어쓴다. 바람이 고양이처럼 온몸에 감겨온다. 아, 이보다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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