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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pr 12. 2022

고양이 신부전 간병기1

요다 제30화

  

2021. 10. 14 목요일 <입원>

요다가 몇 차례 토했는데, 고양이는 체질상 잘 토하는 편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요다가 밖에 잘 안 나가고 집에 틀어박혀 잠만 잤는데 그것도 날이 추워져서 그러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밥을 안 먹는 걸 보고서야 어디가 아프구나 싶어 J가 병원에 데려갔는데, 병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나 전화가 왔다. J가 울먹이며 택시 타고 빨리 병원에 오라고 했다.     


각종 검사결과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의사와 마주 앉았다. 영문과 숫자가 빽빽하게 적힌 혈액검사 자료, 엑스레이와 초음파 사진들. 내가 그것들을 본들 이해할 리 없는데도 의사는 굳이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려놓고 화면이 꺼질 때마다 다시 켜 보여줬다. 모니터 가득 길쭉한 타원이 보였다. 콩처럼 팥처럼 생긴 그것이 요다의 신장이라고 했다. 타원 한가운데 커다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데칼코마니로 찍은 것 같은 나비 문양. 의사는 건강한 신장에는 아무 문양이 없다고 피가 통하지 않아 석회화된 부위가 그렇게 보이는 거라면서, 한번 석회화된 부위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비 날개가 신장을 절반 이상 덮고 있었다. 요다의 신장이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신부전이라고 했다. 고양이가 신부전에 잘 걸리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신부전의 주요 증상이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뒤로 나는 요다의 물 마시는 양을 주의 깊게 살폈다. 어느 날인가 요다의 물그릇이 너무 성큼 비어있어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J에게 말할까 하다가 괜히 병원 데려가 검사한다고 돈만 쓸까 봐 말하지 않았다. 그때 병원에 데려갔으면 병이 덜 진행됐을까.     


의사는 상태가 위중하다면서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요다는 신부전 합병증으로 빈혈이 있었다. 의사는 빈혈이 심해 요다가 치료를 견디기 힘들 거라면서 수혈을 권했다. 의사는 수혈 여부를 우리에게 결정하라고 했는데, 수혈용 피는 구하기가 쉽지 않고 가격이 비쌌다. 피를 주문하면 대구에서 올라오는데 가격이 120만 원이라고 했다. 의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대구에 살고 있을 공혈묘를 떠올렸다. 

“수혈을 안 하면 어떻게 되나요?” 

내가 물었다. 공혈묘 때문이 아니라 비용 때문이었다. 

“꼭 위험하게 되거나 그러지 않을 수는 있어요. 근데 애가 좀 힘들고, 고생하겠죠.” 

의사가 대답했다. 

“비용을 최소한으로 해서 치료했으면 해요.” 

내가 말했다.

“수혈을 안 하고 버텨보자는 말씀이신 거지요?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에요.” 

의사가 말했다.

“아니에요. 수혈할 거예요. 제가 요다 적금 들어놓은 거 있으니까 그거 깨면 돼요.” 

J가 말했다. J는 올 초 요다의 노후를 대비해 적금을 들었다. 적금 통장에 든 돈은 90만 원. 한번 수혈할 돈이 안 됐다. 

“나머지 치료비는 어느 정도 드나요?” 

내가 물었다. 

“하루 입원비는 25만 원인데 거기에 검사비가 추가될 수 있어요.” 

의사가 대답했다.

“그럼 하루에 35만 원 정도면 될까요?” 

J가 물었다. 

“넉넉잡고 그 정도 예상하시면 될 거에요.” 

의사가 대답했다.

“해야죠. 수혈하고 입원도 할 거예요.” 

J가 말했다.    

  

“아까 왜 그런 말을 했어?” 

대기실에서 J가 말했다. 

“.......”

“요다는 내가 꼭 살릴 거야. 적금 깨면 돼.” 

요다 적금이 아니라 다른 적금을 말하는 거였다.

“.......”

“그걸로 안 되면 집을 줄여서 이사하자.”      


10. 19. 화요일 <면회>

매일 요다를 면회 갔다. 요다는 처음 며칠은 잠만 자다가 차차 기운을 찾더니 나를 보면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다른 고양이가 내는 소린 줄 알았다. 요다는 평소 잘 안 울고 울어도 짧고 가는 소리로 야옹하고 만다. 그런데 요다가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큰 소리로 울었다. 요다는 내가 입원실 유리문을 열어야 울음을 그쳤고, 유리문을 닫고 돌아서면 또 울었다. 예전에 딱 한 번 요다가 그렇게 우는 걸 본 적 있다. 새끼 때 요다를 혼자 두고 집을 비웠는데 사흘 만에 집에 들어가니 요다가 뛰어나와 내게 매달리며 울었다. 한참이나 큰 소리로 울었다. 그때도 지금만큼이나 불안했던 것이다. 뒤늦게 마음이 짠했다.     


진료실 한쪽 벽면에 2층으로 여섯 개의 유리 상자가 놓여있는데 거기가 고양이 입원실이다. 요다의 병실은 아래 칸. 병실이 낮으니 보호자용 의자도 낮았다. 목욕 의자에 앉아 요다를 무릎에 앉혔다. 요다가 무릎에서 바로 내려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앉아 세수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요다는 내 무릎에 올라와 앉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억지로 붙잡아 앉혀도 바로 내려간다. 그런데 요다가 내 무릎에서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요다의 입원실엔 입원실이 미어지게 큰 보료방석이 놓여있었다. 요다의 체취가 밴 물건이 있으면 병실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집에서 가져다 놓은 것이다. 보료방석이 유리 병실을 견디는 데 의지가 됐을까.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보료방석보다 더 요다의 체취가 구석구석 밴 요다 꺼로 그곳에 놓여있었다. 삭막한 병실, 낯선 고양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낯선 사람들이 오가는 속에서도 요다는 내 무릎 위에서 편안했다.      


요다를 무릎에 앉히고 시간을 보내는 건 나의 오랜 소망이었다. 그런데 등받이 없는 목욕 의자에 무릎을 세운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요다는 세수를 오래도 했다. 세수를 마치면 내려가려니 했는데 세수를 마치자 요다는 그 자리에 그대로 똬리를 틀고 잠을 청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요다가 깰까 봐 몸통을 고정한 채 고개만 돌려 벽시계를 봤다. 좌석 노릇을 한 지 1시간 10분이 지나고 있었다. 목 허리 무릎 발목이 다 결렸다. 보료방석과 임무 교대하기로 했다. 요다를 들어 보료방석에 눕히고 유리문을 닫았다. 요다가 화통 삶아 먹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퇴원>

“퇴원하면 보호자께서 하실 일이 많아요.” 의사가 PPT 자료를 띄워놓고 퇴원 후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을 30분 넘게 설명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처방식을 먹인다. 둘째 보조제를 먹인다. 셋째 피하수액을 주사한다. 우리 몸에서 신장은 음식이 소화되고 남은 쓰레기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청소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신장이 망가져 제 역할을 못 하게 되면 몸속은 음식물 쓰레기로 뒤덮이게 된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는 쓰레기를 덜 만드는 것으로 먹는 음식을 쓰레기가 덜 생기는 처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도 생겨나는 쓰레기는 임시 청소부를 투입해 그때그때 몸 밖으로 내보내는데, 수액과 각종 보조제가 그 역할을 한다.      

“보조제 먹이고 피하수액 놓는 걸 매일 해야 돼요?” 내가 물었다.

“네. 매일 하셔야 돼요.” 의사가 대답했다.

“언제까지요?” 내가 물었다.

“걔네들의 장점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다는 건데, 단점은 치료제가 아니라서 계속해야 한다는 거예요.” 의사가 대답했다. 

“계속이라면......살아있는 한 계속이요?” 내가 물었다.

“그렇죠.”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론 수업이 끝나고 피하수액 주사 놓기를 실습했다. 의사가 요다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살이 노인네 살갗처럼 쭉 늘어났다. 고양이는 사람과 달리 피부와 근육 사이 피하에 여유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 수액을 주입한다. 보호자 중 한 명이 요다의 목덜미에 주삿바늘을 꽂아야 했다. 의사가 주삿바늘을 내밀자 J가 내 뒤에 숨었다. 의사 앞에서 서로 안 한다고 싸울 수가 없어서 주삿바늘을 받아들고 요다의 목덜미에 꽂았다. 주사기의 피스톤을 누르자 요다의 목덜미가 혹부리 영감처럼 부풀어 올랐다.      


처방식, 각종 보조제, 수액과 주사기가 든 보따리를 양손 가득 들고 병원문을 나서며 마음이 바윗덩이처럼 무거웠다. 앞으로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세월을 아침저녁으로 요다에게 약 먹이고 주사를 놓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요다의 살에 주삿바늘을 찔러넣어야 하는 간병 일이 끔찍이 하기 싫었고 그 일에 묶여 단 하루도 집을 비울 수 없을 앞날이 암담하기만 했다. 그런데 나와 달리 J는 요다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기만 했다. “요다야, 잘 이겨냈어. 김지현 환갑 때까지 같이 살자.” J가 가슴에 안은 이동 가방을 토닥이며 말했다. 환갑까지 요다를 간병하며 살아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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