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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pr 12. 2022

고양이 신부전 간병기2

요다 제31화

10월 22일 금요일 <자가치료 첫날>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벽에 붙여놓고 순서대로 아침 처치를 시작했다.      

1. 항생제(식전 1시간)

요다의 입을 벌려 캡슐을 집어넣었다. 요다가 캡슐을 뱉어냈다. 다시 집어넣었지만, 또 뱉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캡슐이 침에 젖어서 물렁했다. 비싼 약을 버리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은 뒤 요다의 턱을 꽉 붙잡고 입을 벌려 캡슐을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뱉어내지 않았다. 삼킨 것이다.     

2. 유산균(식전 1시간) 

추르에 유산균 가루를 섞어서 줬더니 추르만 먹고 유산균을 안 먹었다. 결국 유산균은 못 먹였다.     

3. 피하수액 100cc

J가 요다를 붙잡고 내가 요다의 목덜미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그런데 피스톤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몸에서 피스톤을 밀어내는 압력이 굉장히 셌다. 힘을 주다 바늘이 빠졌고 바늘을 갈다가 손가락을 찔렸다. 역할을 바꿔 내가 요다를 붙잡고 J가 피스톤을 눌러보았지만, 그래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J가 주사기를 거꾸로 뒤집어 피스톤을 바닥에 대고 주사기를 온몸으로 내리누르다가 주사기와 수액을 연결한 호수가 빠지면서 수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그 바람에 요다가 참을성을 잃고 몸부림치면서 바늘이 또 빠졌다. 간신히 정해진 양의 수액을 주사하고 나서 주사기를 치우는데 끝내 바늘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4. 인 흡착제(식사와 동시)     

5. 아침 식사 

요다가 처방식 냄새를 맡더니 입도 안 대고 고개를 돌렸다. 입을 벌려 억지로 먹였지만 삼킨 것보다 뱉어낸 게 더 많았다.     

6. 레나메진(식후 1시간)      

이렇게 아침 처지가 끝났다.    

  

저녁에 피하수액만 빼고 위의 과정을 반복했다.   

  

10월 23일 토요일 <자가치료 둘째 날>

유튜브의 집사들은 혼자서도 수액주사를 잘 놓는다. 고양이는 한 손으로 컨트롤이 될 만큼 얌전하고 피스톤은 바닥에 대고 약간의 힘을 가하는 것만으로 쑥쑥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는 둘이 매달리는데도 안간힘을 써야 수액주사를 놓을 수 있었다. 주사기 피스톤은 심해 같은 압력으로 버텼고 요다는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주사를 다 놓고 요다를 잡았던 손을 놓으면 손가락과 손목이 아팠다. J에게 무슨 사고라도 나서 나 혼자 이 일을 하게 되면 어쩌나 덜컥 걱정됐다. J도 같은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사고가 날까 봐서는 아니고 내가 힘들어 못 하겠다고 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J가 내 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맞췄다.  

   

10월 24일 일요일 <자가치료 셋째 날>

요다가 밥을 입에도 대지 않고 잠만 잤다.      


10월 25일 월요일 <자가치료 넷째 날>

요다가 계속 잠만 잤다.      


10월 26일 화요일 <숨바꼭질>

아침에 방문을 여니 바닥이 휴지로 난장판이 돼 있었다. 요다가 음식물을 닦아 버린 휴지를 휴지통에서 꺼내 거기 묻은 걸 먹겠다고 그 난리를 친 거였다. 요다가 밥을 달라고 내 종아리에 감기며 야옹거렸다. 며칠째 새 모이만큼도 안 먹었으니 왜 배가 안 고프겠는가. 요다의 식욕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1초라도 빨리 밥을 주고 싶었지만, 밥 먹기 한 시간 전에 항생제를 먹이는 게 먼저였다. 항생제를 먹이고 나서 한 시간이 까마득하기만 했다. 요다는 먹을 걸 찾아 싱크대와 식탁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했고, 멸치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려고 바닥을 킁킁거리고 다녔다. 몇 번이나 시계를 봤을까. 시간이 되자마자 준비해놨던 처방식을 줬다. 그런데 요다가 냄새를 맡더니 입도 대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평소 먹던 동원참치를 줘봤지만, 그것도 좁쌀만큼 먹다가 고개를 돌렸다. 하는 수 없이 강제로 처방식을 먹였다. 요다가 밥을 뱉어내며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싫다는 걸 억지로 먹여도 되는지 자신 없어서 요다를 놔줬다. 요다가 매 맞는 아이처럼 나를 피해 구석에 숨었다.     

오후에 J가 요다를 데리고 나갔다가 놓쳤다. 요다가 목줄을 한 채 도망쳤다고 했다. 요다를 찾아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 계단에 앉았다. 가을볕이 따뜻했다. “요다! 요다!” 멀리서 J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다도 어딘가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볕을 쬐고 있을 터였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나는 요다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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