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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pr 12. 2022

고양이 신부전 간병기3-동물의 고통

요다 제32화

10월 27일 수요일 <동물의 고통>

요다와 밖에 나갔다. 또 도망칠까 봐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요다는 팔순 노인처럼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이유. 날이 추워서 밖에 안 나오셨는가 봐. 그래도 추울 때에 비하면 아주 푹해진 거유.” 아랫집 할머니가 마당에 있다가 우리를 보고 말했다. 

“네. 날씨가 좋아요.” 내가 말했다.

“괭이를 끈을 맸네.”

“고양이가 아파요. 많이 아파요.”

“말도 못 하는데 어떻게 아픈지 안디야.”     


요다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프다는 내색도 하지 않는다. 야생에서 아픈 동물은 곧바로 포식자의 타겟이 되기 때문에 아픈 걸 일부러 숨긴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신부전이 4기에 이르도록 나는 요다가 아프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신부전 진단을 받고 나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요다는 기운 없어 보였을 뿐 그밖에 다른 신체적 고통을 겪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목줄 때문일까. 요다가 몇 걸음 가다 멈춰 서고 또 몇 걸음 가다 멈춰 서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코가 창백했다. 요다의 코가 원래 저렇게 창백했었나. 예전의 코 색깔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빈혈 때문에 코가 창백해진 걸까. 요다가 또 걸음을 멈췄다. 왜 자꾸 멈춰 서는 것일까. 혹시 어지러운 걸까. 그렇다. 요다는 어지러운 것이다. 나는 그제야 요다가 어지러울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빈혈이 있으면 어지럽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나는 요다가 수혈을 해야 할 정도로 빈혈이 심하다는 걸 알면서도 요다가 어지러울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의사가 수혈을 안 하면 요다가 힘들 거라고 했을 때, 길게 고민해보지도 않고 수혈을 안 하겠다고 한 건 그래서였다. 요다가 하루가 멀다고 토했는데, 그걸 보면서도 속이 메스꺼울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요다가 나와 똑같이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낄 거라고 상상을 못 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동물을 고통을 못 느끼는 기계로 생각했다. 누군가가 그에게 동물에게도 고통을 주면 소리를 내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는 피아노도 치면 소리가 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명 철학자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물이 토하긴 해도 메스꺼움을 느끼지 못하고 빈혈로 죽긴 해도 어지러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여기다니, 사실상 고통을 못 느낀다는 게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동물이 고통을 못 느낀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얼마 전 식용 개를 파는 업자가 식용 개는 집에서 키우는 개와 달리 둔해서 고통을 잘 못 느낀다고 방송에서 주장하는 걸 듣고 어이없어했는데, 인제 보니 동물의 고통에 대한 이해는 그나 나나 오십보백보로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요다가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뭔가에 시선을 뺏긴 것도, 방향을 바꾸려는 것도, 앉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요다를 안아 들었다. 너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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