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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pr 21. 2022

고양이 신부전 간병기5-2인 3각 경기

요다 제 34화

11월 2일 월요일 <2인 3각 경기>

아침저녁으로 목줄을 해 요다를 데리고 나갔다. 목줄을 하면 목에 줄을 맨 요다뿐 아니라 손에 줄을 쥔 나도 그 줄에 묶인다. 둘이 짧은 줄에 묶여 같이 다니는 건 한쪽 발을 상대와 묶고 뛰는 2인 3각 경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체 크기, 보행 속도, 습성이 크게 다른 사람과 고양이가 한 팀을 이루다 보니 경기는 쉽지 않다.      

요다와 나는 평소 다니는 길부터가 다르다. 나는 대문으로 드나들지만 요다는 개구멍으로 드나들고, 나는 길로 다니지만 요다는 길가의 철조망 밑으로 다니는 걸 더 좋아한다. 내가 다닐 수 있는 길로는 요다도 다닐 수 있지만 거꾸로는 불가능하므로 같이 다니기 위해선 내가 다닐 수 있는 길로 다녀야 한다. 그래야 한다는 걸 요다도 쉽게 이해했다. 요다는 처음에 한두 차례 실랑이를 한 뒤로 현관문을 나서면 개구멍이 아니라 대문을 향했고 철조망 앞에선 망설이다 그냥 지나쳤다.      


보다 어려운 문제는 서로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는 일이다. 사람은 다닐 때 최저속도와 최고속도에 별 차이가 없다. 마지막으로 뛰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내 경우는 더 그렇다. 그런데 고양이는 다닐 때 최저속도와 최고속도의 차이가 크다. 사람이 구사하는 속도가 좁은 음역대에 머무는 음악이라면 고양이의 그것은 저음에서 고음까지 폭넓은 음역대를 구사하는 음악이라고나 할까. 요다는 아랫집 할머니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다가는 바로 다음 순간 바람처럼 내달린다. 나로서는 일정 속도 이하로 느리게 움직이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속 터지는 걸 참아가며 보조를 맞출 수는 있는데 바람의 속도로 내달리는 건 마음을 달리 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다가 뛰면 엉겁결에 나도 따라서 뛰게 됐는데 뒤뚱거리기만 하지 전혀 속도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자꾸만 평소 자신의 속도로 가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상대에 의해 제지됐고, 결국 서로의 눈치를 보며 누구의 것도 아닌 어색한 속도로 서성댔다.     


고양이와의 산책에서 주요 활동은 걷기가 아니라 서 있기다. 서 있기 애매한 장소를 골라 옮겨 다니며 서 있기. 요다는 나 혼자라면 절대 갈 일 없는 곳을 골라 다니면서 나 혼자라면 절대 멈춰 설 일 없는 곳에 멈춰 섰다. 요다가 둔덕을 오르다가 끈이 짧아 중간에 주저앉았다. 나는 둔덕 밑에서 요다의 둔부를 바라보고 서 있었는데,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아 자세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요다가 일어서길 기다리다 안 되겠어서 요다를 들어 평평한 곳으로 옮겨놓았다. 그러나 머물 자리를 정하는 건 내가 아니다. 요다는 그 자리에 안 있고 구석진 곳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요다가 좋아하는 곳은 밭일하는 이들이 오줌 누기에도 좋은 곳이라 거기선 지린내가 진동했다. 나는 여러모로 그 자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바닥이 경사져서 앉아 있는 엉덩이가 비스듬히 기울어졌고 시야는 답답하게 막혀 있었다. 자리를 조금만 옮기면 탁 트인 전망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련만, 그런 건 요다의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아쉬운 대로 눈 둘 곳을 찾아냈는데, 요다 뒤로 국화가 노랗게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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