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폭행, 억울하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청소년 변호사 사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하소연입니다. 쌍방폭행 사건의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법의 세계는 우리의 억울함을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습니다.
법전에는 없지만, 실무에서는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양측이 모두 상대를 고소한 상황, 즉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케이스를 말합니다.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범죄(반의사불벌죄)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상호 합의로 마무리됩니다. 굳이 동반 전과자가 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생각만큼 쉽게 끝나지 않는 케이스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가만히 있는데 상대가 시비를 걸었고, 먼저 공격했고, 나는 방어만 했다고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법적으로는 정당방위나 정당행위를 내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더 황당한 상황도 있습니다. 계속 맞기만 하다가 참다못해 한 번 밀었는데, 상대가 넘어져서 허리를 삐끗했다며 진단서를 들고 오는 경우입니다. 순식간에 나는 더 무거운 상해죄의 피의자가 됩니다.
상해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닙니다. 합의해도 상대방 건만 끝나고, 내 건은 기소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습니다.
손도 안 댔는데 상대가 맞았다고 고소하는 경우입니다.
악의적인 사람들은 자기가 일방적으로 폭행했으면서도 역고소를 합니다. 쌍방폭행 구도를 만들어야 학폭 맞신고도 가능하니까요.
CCTV 같은 명확한 증거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결백을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몸싸움은 대개 좁은 공간에서 빠르게 일어납니다. 서로가 자기 피해만 주장하는 상황에서 학폭심의위원회와 경찰은 양측 모두를 피의자/ 가해학생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법적으로 폭행의 범위는 우리 생각보다 넓습니다. 주먹질뿐 아니라 밀치는 행위, 침 뱉기, 심지어 빛이나 소음 같은 것도 폭행이 될 수 있습니다. "싸우면 손 들고 CCTV 앞에 서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정당방위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판례와 실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정당방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경찰 수사지침의 정당방위 요건을 보면 모든 조건을 충족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논리적 모순도 있습니다. 상대의 공격이 약하면 피하면 되므로 정당방위가 필요 없습니다. 반대로 공격이 심각하면 실질적 방어가 필요한데, 판례가 인정하는 방어 수준은 "멱살 잡기" "손목 잡고 누르기" 정도로 너무 소극적입니다.
예전에 경찰이 쌍방폭행 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적극 인정하겠다는 뉴스가 나온 적 있습니다. 이걸 긍정적으로 봐선 안 됩니다. 오히려 그만큼 드문 일이라서 뉴스가 됐다는 뜻입니다.
실무에서는 정당행위(형법 제20조)로 위법성 조각을 주장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들도 "정당방위 또는 정당행위로..."라고 함께 적습니다.
하지만 둘 다 인정받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열 번 맞고 한 번 쳤어도, 그 한 번이 폭행죄를 구성합니다. 경위는 양형에 참작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참작'의 결과가 기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벌금 50만원의 차액이 아니라, '전과자'가 됐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범죄경력조회에는 일정 기간 후 삭제되지만, 벌금형 전과는 영구히 남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억울해도, 뻔뻔한 상대에게 합의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큰 부상이 아니라면 합의로 끝내는 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상대 학생은 어떤 사람일지는 모릅니다.
나는 원만하게 끝내고 싶은데, 상대는 자기가 먼저 때려놓고 상해진단서를 끊어와서 나를 고소할 수 있습니다.
진단서가 있다고 무조건 상해죄가 되는 건 아니지만, 당일 진단서 유무는 사건의 흐름을 크게 바꿉니다.
학폭위에서는 상해진단서 2주 이상일 경우 바로 학폭위로 이어질 정도이죠.
폭행 직후 즉시 병원에 가서 구체적인 경위와 부위를 의사에게 설명하고 진단서를 받아두세요. 그걸 제출할지 말지는 나중에 결정하면 됩니다.
오히려 평소 모범적으로 살아온 분들이 이런 준비를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폭행을 일삼는 사람들은 옷깃만 스쳐도 진단서부터 뗍니다. 그래서 선량한 사람이 상해죄 피의자가 되는 억울한 일이 생깁니다.
인터넷 정보만으로 자기 사건의 방향을 정하는 건 위험합니다. 억울해도 빨리 합의해야 할 사건이 있고, 힘들어도 무죄를 다퉈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쌍방폭행이라고 해서 5대 5로 똑같은 경우는 드뭅니다. 누군가 먼저 시비를 걸었거나, 폭행의 강도가 더 셌거나, 잘못이 더 큰 쪽이 있습니다.
다만 내가 느끼는 억울함과 수사관·검사·판사가 보는 억울함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쌍방폭행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억울하다고 해서 학폭위, 소년보호재판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초기 대응이 사건의 결과를 좌우합니다. 청소년 사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