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바르셀로나의 리빌딩과 리더의 중요성
FC바르셀로나(이하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리가 26회 우승, 코파 델 레이(스페인 컵대회) 31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에 빛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클럽 중 하나입니다.
그런 바르셀로나가 올 시즌(2021-2022) 소위 ‘폭망’해버렸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GOAT 리오넬 메시를, 클럽의 재정적 이유로 인해 이적료 한 푼 받지 못한 채 떠나보냈고, 천문학적 이적료로 영입한 앙투앙 그리즈만, 필리페 쿠티뉴, 우스만 뎀벨레는 모두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 채 떠나보냈거나 떠나보낼 예정입니다.
<바르셀로나를 떠날 당시, 리오넬 메시 눈물의 기자회견>
클럽의 레전드 출신 감독이었던 로날드 쿠만은 작년 10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고, 클럽의 리빌딩을 위해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레전드, 챠비(사비) 에르난데스가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스페인 국가대표와 바르셀로나의 찬란한 영광을 함께하며 몇 년 전까지 선수로 활약했던,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라 불리는, 그 챠비 말입니다.
하지만 팬들의 기대와 챠비 감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는 무려 21년만에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되고, 많은 팬들은 ‘바르셀로나에 암흑기가 왔다’며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상당수 팬들은 ‘아직 챠비 감독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며 여전히 지지를 보냈지요.
하지만 챠비 감독이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아래는 2022. 1. 3.자 바르셀로나 vs 마요르카 전 선발라인업입니다. 바르셀로나 팬이 아닌 분들이라면 ‘쟤는 대체 누구야?’혹은‘바르셀로나 선발라인업에 아는 이름이 거의 없네’라고 생각하실 법합니다.
<2022. 1. 3.자 마요르카전 선발라인업>
(네이버 해외축구 기록실에서 발췌)
전임 회장 등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많은 선수들을 떠나보내야 했고, 제대로 영입도 못한데다, 부상 등까지 겹쳐 위와 같이 어린 선수들로 가득한 라인업이 완성되었는데, 비록 위 경기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최근 바르셀로나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입니다.
챠비 감독은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은 2022. 2. 7., 챠비 감독은 바로 직전 시즌 라리가 디펜딩 챔피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만나게 됩니다. 저는 이 경기를 라이브로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차비 에르난데스. 그는 반드시 위대한 감독이 될 것입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 선수들을 지휘하는 챠비 감독>
위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는 몇 가지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첫 번째, 바르셀로나의 축구 철학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빠르고 정확한 패스, 강렬한 전방 압박, 극도의 점유율.”
바르셀로나의 축구 철학입니다.
이러한 바르셀로나의 축구 철학은 바르셀로나 유소년팀부터 성인팀까지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새로 올라온 어린 선수가 1군 팀에서 뛸 때, 몇 년간 같이 훈련한 것처럼 삽시간에 경기에 녹아들 수 있는 것은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같은 축구 철학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이러한 바르셀로나의 축구철학은 실종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함께 한 선수들이 나이가 들고 기존 바르셀로나의 전술에 대한 대응방안이 나오면서, 전통적인 바르셀로나 축구철학을 고집하는 것만으로는 예전과 같은 화려한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감독이 바뀌고 성적을 위한 실리적인 전술을 찾다보니 바르셀로나 고유의 축구철학이 희미해진 것이었죠.
그러다보니 최근에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느리고 부정확한 패스, 느슨하고 손발이 맞지 않는 전방압박, 의미없는 점유율”로 귀결되고야 말았습니다.
경기에 이기더라도 팬들은 만족하지 못했고, 발베르데, 세티엔, 쿠만 등 전임감독들은 성적이 좋지 않자 바로 경질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2022. 2. 7. 강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는 전성기 시절의 ‘티키타카’를 어느 정도 재현해냈습니다.
패스를 받으려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늘어나고 원터치 패스가 많아지면서 ‘빠르고 정확한 패스’가 구현되었고, 어린 선수들의 기동력을 바탕으로 ‘강렬한 전방 압박’도 이루어졌습니다. 볼점유율도 63% vs 37%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압도했습니다(경기 후반 바르셀로나 선수 다니 알베스가 퇴장당해 수적 열세에 처한 것을 감안할 때 압도적 점유라고 생각됩니다).
<2022. 2. 7.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 경기기록>
(네이버 해외축구 기록실에서 발췌)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감독시절 무적의 전력을 자랑하며 유럽을 제패하던, 그때 바르셀로나의 향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놀라웠던 점은, 선수들이 위닝 멘탈리티를 되찾은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바르셀로나는 중요한 순간에 무너지곤 했습니다.
① 17-18시즌 로마전 참사(1차전 4:1로 이기고 2차전 0:3으로 패배해 탈락), ② 18-19시즌 리버풀전 참사(1차전 3:0으로 이기고 2차전 0:4로 패배해 탈락), ③ 19-20 뮌헨전 참사(2:8 역대급 점수차이로 패배해 탈락)를 겪었고, ④ 쿠만이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강팀을 이긴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강팀만 만나면 힘을 못쓰고 지거나 탈락하기 일쑤였습니다.
<역대급 역전극의 희생양이 된 바르셀로나의 18-19 챔피언스리그 4강 결과>
이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도, 초반 바르셀로나가 경기 분위기를 주도했지만, 8분만에 역습을 당하며 야닉 카라스코에게 실점하고 말았고, 또 다시 강팀을 상대로 한 패배의 그림자가 팬들의 머리 속에 드리워졌습니다. 하지만 선수들, 그리고 챠비는 침착했습니다.
우아한 패스 연계와 슛으로 바르셀로나 양 사이드백이 합작하여 2분만에 동점을 만들었고, 10여분 뒤 이번 겨울 집으로 돌아온 아다마 트라오레의 돌파와 어시스트로, 같은 집(라 마시아) 출신 17세 유망주 가비가 역전골을 작렬합니다. 이후 바르셀로나는 두 골을 더 넣으며 승기를 굳히게 되는데요, 후반 바르셀로나 다니 알베스의 퇴장이 있었고 추격골까지 실점했지만 바르셀로나는 더 이상 쉽게 무너지는 팀이 아니었습니다. 남은 시간 침착하게 수비를 했고 결국 4:2라는 값진 승리를 거두게 됐습니다.
<역전골을 넣고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파블로 가비>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리더의 변화, 즉 감독의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현대축구에서 감독의 중요성과 영향력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떠난 이후 맨유는 더 이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고, 아르센 벵거 감독이 떠난 아스날은 4위에 드는 것조차 어려운 클럽이 되어버렸습니다. 반면 리버풀은 위르겐 클롭을 감독자리에 앉힌 이후 클럽 역사상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하게 되었고, 첼시는 전술가 토마스 투헬이 감독으로 오자마자 9년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챠비는 어떤 감독이고 어떤 리더일까요?
먼저 챠비는, 능력있는 리더입니다.
챠비는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국가대표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스페인 라리가 8회 우승,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 UEFA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 2010 월드컵 우승, 2008, 2012 유로 우승을 이끈,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선수입니다. 선수로서의 능력과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선수로서의 노하우, 최고 레벨에서의 축구경험을 전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감독 챠비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챠비는 항상 축구는 두뇌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전술이해도가 뛰어나며, 그것을 경기장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탁월한 선수였고, 실제 카타르에서 ‘알 사드’라는 팀을 지도하며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입증했습니다. 아래는 챠비 부임 전/후의 알 사드 클럽의 기록입니다.
또한 챠비는, 철학과 신념이 있는 리더입니다.
챠비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인 ‘라 마시아’출신으로 바르셀로나의 축구 철학, 그리고 그 기반이 된 크루이프이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적용하는 감독 입니다.
아래 챠비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바르셀로나의 축구철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내게 좋은 플레이란 공을 소유하는 것이다. 경기장에서 상대방에게 일방적 으로 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은 플레이란 공간이나 자유롭게 위치한선수를 찾기 위해 20~30회의 패스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 Marca와의 인터뷰
“난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고, 볼을 받기 전에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 생각 하려고 노력했다. 난 크루이프이즘의 아들이며 나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다. 발 로 플레이하지만 머리로 생각한다. .”- El Periódico와의 인터뷰
물론 챠비의 선수시절, 때로는 점유율에 집착한다거나 아름다운 축구를 내세워 정신승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챠비 감독이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국가대표에서 선수로서 보여준 성과, 알 사드에서 감독으로서 보여준 성과 를 고려하면, 챠비의 축구철학이 결코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챠비 감독의 확고한 축구 철학으로 인해, 선수들은 어떠한 플레 이를 해야하는지 더 명확히 알 수 있고,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 으며, 이것이 곧 경기력의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챠비는, 격려하고 힘을 주는 리더입니다.
“봐, 지금 누구도 우릴 막지 못하잖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 승리 직후 챠비 감독이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한 말입
니다. 챠비 감독은 라커룸에서 모든 선수들과 스킨쉽을 하며 격려를 해주었고, 선 수들은 자신들의 플레이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 승리 직후 선수들을 격려하는 챠비 감독>
물론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했으니 기분이 좋아 그런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 만, 챠비 감독은 우스만 뎀벨레가 재계약 내지 이적거부 문제로 구단과 팬들로부 터 큰 비난을 받을 때에도 그에게 응원을 보내달라며 감싸주었고, 팀의 미래로 평 가받는 프렝키 데용에 대한 이적설이 터져나왔을 때에도 ‘데용은 우리에게 중요 한 선수’라며 확실한 신뢰를 보여주고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이끌었습니다.
선수들에게 신뢰를 주고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챠비 감독의 리더쉽은 바르셀로 나가 위닝 멘탈리티를 되찾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이라는 모토에 따라 축구에 관한 철학을 고수하고 발 전시켜온 클럽 바르셀로나. 그리고 무너져가던 클럽 바르셀로나를 다시 리빌딩하 려는 감독 챠비.
위대한 역사의 순간에는 항상 위대한 리더가 있었습니다. FC바르셀로나의 위대 한 역사의 순간은 이제 시작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위대한 역사적 순간은, 지금, 현재진행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