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딸기 아이스크림 줄까?"
우리 딸은 블록으로 딸기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참 좋아한다. 다른 아이들은 블록으로 소방차도 만들고, 사다리차도 만들고, 화려한 건물도 만들던데 조곤조곤 얌전히 노는 성향이어서인지 블록만 있으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역할놀이를 한다. 원뿔 모양의 블럭 위에 동그란 반구 모양의 빨간색 블럭을 올리고 가족들에게 딸기 아이스크림이라고 한 입 먹어보라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반구 모양 블록이 사라졌다
얼마 전부터 딸 아이가 아끼던 빨간색 반구 모양 블록이 보이질 않는다. 딸기 아이스크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콘과 아이스크림 중 아이스크림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블록인데 작은 틈 사이로 들어간건지 집 안 구석구석을 뒤져봤지만 찾아낼 수가 없다. 딸 아이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싶다고, 어서 빨간 블록을 찾아달라고 울먹이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
블록을 가지고 집 밖에 나간 적은 없으니 분명히 집 안 어딘가에 있을텐데 보이지가 않는다. 은근슬쩍 똑같이 생긴 다른 색깔의 블록을 내밀며 초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보자고 했지만, 이건 딸기 아이스크림이 아니란다. 분명히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간걸까. 가슴이 답답해진다.
잃어버린 블록 조각을 찾는 일과 비슷한 과로사 산재 사건
과로사, 과로요양 산업재해 사건은 잃어버린 블록 조각을 찾아내는 일과 비슷하다. 분명히 아이가 준 가짜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는 흉내를 내며 즐거워했는데, 분명히 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블록 한 조각처럼 과로사를 일으킨 중요한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는 당사자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장해로 인해 제대로 알려줄 수 없는 상태인 게 대부분이다.
과로사란 무엇인가
'과로사'는 정확한 법적 용어나 의학적 용어는 아니다.
"과로사"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1978년에 "카로시(karoshi)"라고 하여 업무상 과로로 인한 뇌졸증, 심장마비, 돌연사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1982년 일본에서 세 명의 의사가 "과로사: 뇌 심장계 질환의 업무상 인정과 예방"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면서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 최초의 과로사 사례는 1969년 일본 신문회사의 배송부서에서 29세 남성 근로자가 뇌졸증으로 사망한 것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1982년 노동부예규로 뇌심혈관질병 인정기준을 마련하고 수 차례 개정을 거친 뒤 2008년 7월 1일 산재보험법에서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시행령에서 구체적인 인정기준을 제시하며 대폭 정비된다.
현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은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기준(제34조 제3항 관련)에서 업무와 관련한 뇌혈관질병과 심장질병을 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과로사'라고 부르고 있다.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제34조제3항 관련)
1.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가.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원인으로 뇌실질내출혈(腦實質內出血),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 뇌경색, 심근경색증, 해리성 대동맥자루(대동맥 혈관벽의 중막이 내층과 외층으로 찢어져 혹을 형성하는 질병)가 발병한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다만, 자연발생적으로 악화되어 발병한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
1) 업무와 관련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도의 긴장ㆍ흥분ㆍ공포ㆍ놀람 등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뚜렷한 생리적 변화가 생긴 경우
2) 업무의 양ㆍ시간ㆍ강도ㆍ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으로 발병 전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증가하여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ㆍ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한 경우
3) 업무의 양ㆍ시간ㆍ강도ㆍ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ㆍ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한 경우
나. 가목에 규정되지 않은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의 경우에도 그 질병의 유발 또는 악화가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이 시간적ㆍ의학적으로 명백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다. 가목 및 나목에 따른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은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다.
과로사 산재 인정의 첫번 째 난관은 증거를 찾는 일
가족이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으로 사망했는데 과로사인 것 같다면, 업무가 많았고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증거를 찾아야 한다.
과로사를 업무상 질병,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재해자가 어떤 업무 부담 및 스트레스에 노출되었는지, 그 업무 부담 및 스트레스가 뇌심혈관계 질환을 유발 및 악화시킬만큼 과중했는지 증명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재해자가 어떠한 업무 부담 및 스트레스 요인에 노출됐는지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하는데, 이 단계가 첫번 째 난관이 된다. 제일 잘 알고 있는 당사자가 말을 해줄 수 없고,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잃어버린 블럭 찾는 것'과 '과로사를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업무상 요인을 찾는 것'에 다른 점이 있다면, 후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밝혀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블록이었다면 장난감 통을 탈탈 털어서 장난감 하나 하나를 살펴보고 침대 매트리스를 뒤집어보고 쇼파를 들어내보고 냉장고 바닥, 장롱 바닥과 같은 틈이란 틈 사이는 모두 막대기를 휘저어보는 것처럼 재해자의 삶을 구석구석 들여다보아야 한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집 안에서 잃어버려 집 안에 있는 블록과 달리 업무상 재해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들은 대부분 회사에 있고 과로사에 이르게 한 업무상 요인이 있을지, 있더라도 객관적인 증거로 남아있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가 없다.
과로사를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고되고 지칠 수 있는 과정을 견디기 위해서는 한 가지 믿음이 필요하다.
고인의 사망에 분명히 업무와 관련된 원인이 존재한다는 믿음.
그 믿음은 고인의 사망을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걸어가야 할 기나긴 여정에서 가족들이 무너져버리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