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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Jan 12. 2019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마태복음 4장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어려서부터 모태 신앙이었다. 

태어나서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부모님의 의지에 의해 영아 세례를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친구들을 사귀며 뛰어놀고 자라온 교회는 나에게는 종교나 신앙이라기보다는 삶의 터전 자체였다. 


자연스럽게 성경에 대한 지식도 늘어갔고, 종교적인 의식이나 현상에도 익숙한 삶을 살았다. 

나이가 들자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교회에서 봉사를 하기 시작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며 교회 테두리 안에서의 삶은 더욱 공고해졌다. 

내가 교회를 열심히 다닌 것은 그것이 그 자체로도 나에게 여러 가지 유익함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아니었다. 예배하는 삶도 더더욱 아니었다. 

내 삶의 주인은 여전히 나였고 교회 생활은 내가 원하는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일종의 도구였다. 

성령의 존재는 지식적으로 경험적으로 알았지만, 성령 충만함의 의미가 무엇인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성령과 내 삶이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인지 알아듣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성령님의 임재 없이도 그런대로 잘 살고 있었고 그런대로 내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평생 따라다니는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왜 다른 사람들도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 물론 나는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녀서 좋기는 한데, 예수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이렇게 많지 않은가? 

정말 그랬다. 나에게는 교회생활이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삶의 일부였다. 예배도 좋았고,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좋았다. 교회의 프로그램과 설교, 강연 중 지혜로운 삶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내 눈에는 예수님을 모르면서도 너무나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몸과 정신이 건강하고 부요했으며, 친절했고, 성실했으며 자기 삶에 겸손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스스로 만족했기에 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타력에 의한 구원은 진심으로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저들의 삶은 저토록 완벽한데 왜 주님이 필요할까? 이것이 내게는 풀리지 않는 질문이었다. 


10년 전 2008년 그해 겨울을 잊지 못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시점. 

너무나 큰 두려움과 무력감, 수치감과 좌절감에 휩싸여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그때. 

어느 하나 내게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없었고, 나를 도울 수 있는 그 누구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것은 흑암이었다. 

그 흑암 중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내가 부를 수 있는 이름은 하나님뿐이었다. 


하나님은 2000년 여름에 그러셨던 것처럼 나의 부름에 응답하셨고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홍해를 건너오게 하셨다. 하지만 2000년 이후와 2009년 이후의 다른 점은 하나님은 홍해를 건너는 것만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권을 요구하셨다. 

너의 삶의 주권을 나에게 넘겨주겠니?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그걸 믿고 나에게 넘겨줄 수 있겠니?


나는 그분에게 주권을 넘기기로 하였고, 큰 빚을 보고 경험하게 되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마태복음 4장의 이 말씀이 이해가 간다. 공감이 간다. 

흑암에 앉은 나에게,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나에게 그 빛이 비치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사망이 무엇이고 영생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고 크리스마스가 어떤 의미를 인류에게 가지는 것인 지 알기 시작했다. 


이제는 과거 내 눈에 행복으로 보이던 요건들이 진정한 행복의 본질이 아님을 보는 눈이 생겨가는 것 같다. 

마태복음 4장으로 통해 선포된 그 빛이 구원과 영생과 안녕과 행복의 유일한 길임을 머리가 아니라 경험으로 조금씩 깨달아 간다. 

아직도 그 비밀을 알아가는 중이다. 알아가기 위해 갈 길이 너무도 멀다. 하지만 나는 그 빛 안에서 행복하다. 


빛을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아무도 없을 때에도 나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조금씩 느끼게 하시고 내 삶이 변해가는 것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족이 다 함께 매일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을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이웃사촌을 주셔서 이국 땅에서의 외로울 수 있는 삶에 큰 위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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