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이혼하는 사람은 이혼 증서를 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와 이혼하면 그 아내를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누구든지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하는 것이다. (마5:31-32, 우리말성경)
"You have heard the law that says, 'A man can divorce his wife by merely giving her a written notice of divorce.' But I say that a man who divorces his wife, unless she has been unfaithful, causes her to commit adultery. And anyone who marries a divorced woman also commits adultery. (Matthew 5:31-32, NLT)
예수님의 이혼에 대한 관점이 드러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대계명으로 비추어 볼 때 진의를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모세가 율법에서 이혼할 때 이혼증서를 내주라고 한 것은 이혼을 허용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고대근동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한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막10:2)
당시 바리새인들의 질문의 어투와 같이 예수님 시대에 조차 아내는 '버리고 말고'의 대상이었다. 반면 고대에는 아내의 지위가 여종에 가까운 까닭에 모세는 '이혼증서'라는 까다로운 조건과 법적단계를 만들어 무차별적인 버리움으로 인한 여성들의 생계와 위험의 고통을 예방한 것이다. 모세의 약자를 향한 이웃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진의와 무관하게 "아, 이혼증서만 내주면 이혼할 수 있겠구나"라고 문자그대로의 해석으로 자신의 악함을 자위한다.
이에 예수님은 모세의 이혼에 대한 율법을 본문 말씀을 통해 재해석해 주셨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반사적인 질문이 나온다.
"오잉? 그럼 배우자가 음행한 경우에는 이혼해도 되겠구나?"
이에 예수님은 아래 두 가지 말씀으로 진의의 쐐기를 박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지 못한다." (마19:6, 우리말성경)
그때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주여, 제 형제가 제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일곱 번만 아니라 70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18:21-22, 우리말성경)
그라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오늘도 성령을 통해 더럽고 추악한 나를 또 용서해 주시며 새 기회를 매일 주고 계신다.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부부 간의 도를 저버린 배우자를 용서하고 이전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은 능력으로는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뜻은 좋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먼, 실제 행하기 위해 이런 각론으로 들어가보면 하나하나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성령의 임재가 없이는 이웃사랑은 불가능하다. 내 안에 마귀가 심어놓은 교만과 욕심이 뿌리깊은 상황에서 단순한 의지와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음행까지는 고사하고 단순히 부부간에 성격이 안맞거나 경제적인 어려움도 견뎌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게 사람의 나약함이다.
예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나의 제 일 이웃은 아내이고, 아내부터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사랑하고 품는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능력으로는 저의 아내와 자녀들조차 온전히 사랑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성령님 제게 임하여 주셔서 온전히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가장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