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나를 찾아가는 과정] 인생의 전환점이 된 뉴질랜드에서의 체험 2
건강미 넘치는 사람들
지금도 생각난다. 웰링턴의 자유의 숨길이. 햇빛은 강하고 공기는 맑고 깨끗하고 하늘은 푸르고. 사진을 찍어도 멀리 있는 배경이 가깝게 보였다. 아침이면 조깅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였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여자든 남자든 가리지 않고 체력이 너무 좋다. 항상 뛰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건강미가 넘쳐 보기에도 아름다워 보였다. 어느 임산부는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유모차를 밀면서 조깅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체력에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때는 나도 조금 체력이 있었다. 어릴 적 뉴질랜드로 유학 와 그곳에 자리 잡은 같은 동갑내기인 인도네시아인과 같이 그의 동네를 한바퀴 달려본 적이 있었다. 마지막은 전력질주로 달려 내가 먼저 도착하였다. 근데 그는 나보고 체력이 너무 좋다고 하였다. 그도 꽤 달리는 축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에게 간단히 말했다. 한국 젊은 청춘들은 다 군대에 다녀오기 때문에 체력이 좋다.
한번은 운동하기 전에 몸을 풀고 있던 몸이 탄탄한 어느 젊은 아가씨에게 빅토리아 대학교를 가는 길을 물어봤다. 일요일이다 보니 20키로 이상 달려도 되겠다 싶어 평소 달리던 길을 벗어나 더 달리고자 하였다. 건강미 넘치는 그 아가씨는 손짓을 해가면서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쭉 가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왼쪽으로 그리고 ...... 딱 여기까지만 알아먹고 다음은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생큐!' 하고 '바이바이!' 하였다. 영국식 발음이라서 왼쪽을 레프트라 하지 않고 리프트라 하였다. 혼자서 가르켜 준 대로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뒤에서 그 아가씨가 쏜쌀같이 전력질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내 앞으로 가면서 '팔로우!'라고 하였다. '오케이!'하고 그녀와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근데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만하고 싶었지만 자존심때문에 쉽게 포기하지도 못했는데 마침 속도를 늦춰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와 그렇게 한동안 달렸다. 근데 갑자기 그녀는 길 건너 언덕에 있는 주택가쪽으로 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빅토리아 대학교는 계속 직진하라는 식으로 뭐라고 말하면서 손짓을 하였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혼자 달리다가 그냥 돌아와 버렸던 적이 있었다. 다음날 그 길을 형과 함께 차로 가면서 그 이야기를 해줬더니 '바보야! 언덕 저 동네로 가는 길이 지름길이야!'라고 하였다. 그 아가씨는 나보고 오른쪽으로 가면 지름길이고 직진하면 돌아가는 길이니 이쪽으로 가자고 말했던 건데 그 말을 알아먹지 못했던 것이다. 영어도 못하니 연애도 못할 수밖에. 고시공부한 것밖에 없으니 합격하지 못하면 실생활에 아무짝에도 써먹을 수 없는 지식들 뿐이었다. 그런 게 아쉽고 후회되었다. 공부를 한 게 막바로 써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공부라 해봐야 그냥 성적순위 정해서 합격여부를 가리는 정도에 불과한데도 힘들게 해야하는 우리나라 경쟁 현실이 너무 싫었다.
인생이 뭔지 모르겠어
뉴질랜드를 갈 때마다 부러운 게 예견가능성이다. 신용사회라고 하였다. 굳이 재주나 요령이 필요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남을 속여야 먹고 사는 사회가 아니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고 기초질서가 잘 유지되는 듯 하였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금연구역 팻말 앞에서도 흡연을 버젓이 한다. 그걸 누구하나 제지도 못하고 혹 누가 뭐라 말하면 흘겨보고 오히려 또라이 취급을 한다. 어릴 적부터 교육을 제대로 못받은 것이다. 경쟁만 할 줄 알다 보니 자기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극히 이기적이다. 그러니 권리의식만 높아져 부모에게도 자식들이 상전처럼 행동한다. 장유유서와 어른 공경을 말하면 씨가 먹히지 않는다. 이런 이들이 커서 정의를 말한들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골프만 해도 뉴질랜드 모든 골프장에는 똑같은 시스템이 존재한다. 컴퓨터에 자신의 정보를 입력한 후 매번 OMR 수능답안지 같은 스코어카드를 출력 받아 동반자의 서명을 받아 제출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면 컴퓨터가 스코어를 집계하여 자신의 핸디를 골프장별로 공표하고 있다. 뉴질랜드 전역 어디에서나 통한다. 이러니 우리나라처럼 고무줄 핸디가 있을 수 없다. 같이 골프를 쳐보면 어떤 경우도 볼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몸에 배있다. Give나 OK를 당연하게 요구하지도 않는다. 재주나 요령이 필요 없다. 그동안의 세상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대충’을 좋아하고 따지는 것을 싫어한다. 원칙을 말하면 앞서가는 말이 조랑말이라고 비아냥 대기도 한다. 그러니 알아서 눈치껏 처세하고 재주껏 요령을 부리는 사람이 능력 있는 것으로 치부된다. 어찌보면 규정이 상식에 맞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알면 봐주고 모르면 칼같이 하고, 돈 앞에 쉽게 관대해진다. 그러면서도 권위는 엄청 내세운다. 지위만 있으면 마치 선민인 것처럼 행동하려 한다. 함부로 막말을 하고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낸다. 이러면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어도 보통 전도된 것이 아니다. 상대적인 느낌이겠지만 뉴질랜드는 재주나 요령이 능력으로 치부되는 사회는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편하다. 각자의 개성대로 사는 게 당연하고 어떤 규격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일단 좋은 학교에 가고 고시를 합격해서 검·판사 임용을 받은 후 좋은 보직을 받고자 노력해서 고위직에 올라가야 나중에 예우를 받아 돈도 벌 수 있다는 규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법연수원 시절 “검·판사 임용을 못 받으면 인생 실패자야.” 그 말을 들었을 때 답답한 마음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는 불길이 얼마나 자신의 생명을 태워버리는지. 그도 공직을 나오자 '인생이 뭔지 모르겠어'라고 하였다. '지위가 있으면 인생을 알고 지위가 없으면 인생을 모른다.'는 게 우리나라가 그만큼 철저한 벌(閥) 사회라는 것이다. 세가 없으면 캄캄해진다. 그래서 세력에 의지하려 집착한다. 종속되면서도 자유를 구하는 모순이다.
서른 살 전후로 뉴질랜드로 가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젊을 때 사고가 평생을 간다고 하는데 당시의 경험이 내 인생의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여행은 자연풍광을 보는 것도 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인 것 같다. 문화적 충격을 받는 게 여행을 통해 얻는 소득이라고 본다. 전혀 다른 문화를 접하면 저절로 비교가 되어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묘미가 여행에 있다고 본다. 생각이 바뀌니까 공부습관도 바뀌었다. "그 전에는 피곤한 몸으로 억지로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도 하루 종일 공부했다는 성취감에 뿌듯한 감정을 가지곤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효율적이고 실속 있는 공부는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그만큼 헛고생이 많았던 것이었다. 또한 사람들과 어울려 잡담은 할 시간은 있어도 막상 운동을 하려하면 시간이 아깝게 생각되곤 하였다. 쉬더라도 어떻게 쉬는지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자리에만 죽치고 앉아있어야 공부가 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공부가 지지부진하면 아무 망설임 없이 수영장으로 간다든지 등산을 하든지 테니스를 하든지 주로 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나면 확실히 생기가 다시 도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다 보니, 일요일에도 잠으로만 하루를 보내는 다른 많은 수험생보다는 체력적으로 월등하게 되었고, 공부 때문에 짜증나는 일도 줄어들었다. 공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복 있는 사람만이 공부를 하는 것처럼 느꼈다." (값진 실패 소중한 발견 일부)
2016년 18년만에 뉴질랜드를 다시 한번 찾아갔다. 그동안 뉴질랜드를 네 번 다녀왔다. 각 세달, 두달, 한달, 한달씩이었다. 예전 추억을 더듬고 싶었지만 뉴질랜드도 많이 변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게 뚱뚱한 여자들이 많이 보였다. 젊어서 봤을 때는 전부 건강미 넘치는 여인들만 보였다. 이런 말을 어느 뉴질랜드 사람에게 했더니 그동안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 가게들이 많이 진출했다고 하였다. 뉴질랜드도 옛날 같지 않았다. 돈의 냄새가 더 짙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뉴질랜드도 집값이 엄청 올랐다. 특히 오클랜드는 심하다고 하였다. 70 넘은 웰링턴 골프장 매니저는 "I love 웰링턴 I hate 오클랜드"라고 하였다. 웰링턴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 보였다. 뉴질랜드인들은 70이 넘어도 직장에서 일을 계속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녀에게 18년 전에 회원으로 등록해서 골프를 쳤다고 했더니 그러냐면서 별 의심없이 12월 한달 동안 회원등록을 해줬다. 거짓말한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같으면 의심에 의심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덕을 많이 베푸신 선교사를 찾아뵈었다. 그녀의 남동생은 몇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선한 분들이었다. 지금은 그녀는 요양원에 있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나이가 들고 결국 병이 오기 마련이었다. 그 선한 분도 몸이 편찮으셨다. 고급진 영어를 쓰라고 표현 하나도 지적해주시는 그분이 한국에 왔을 때 강화도를 구경시켜드린 적이 있었다. '뷰티풀!'을 연발하셨다. 나이가 80이 넘으셨어도 인상이 선한 모습 그대로였다. 뉴질랜드는 역사가 짧다. 호주인은 뉴질랜드인을 시골사람으로 폄하하지만 뉴질랜드인들은 호주를 범죄인들이 유배왔던 곳이고 자기들은 정치인들이 유배왔던 곳이라면서 자존심을 세운다고 하였다. 이래도 한 세상이고 저래도 한 세상이다. 인연 닿았을 때 봤던 사람들은 다들 변해 있었다. 세월이 가면 늙고 병든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세월이 가면 살아 온 흔적이 크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