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과정] 이고득락(離苦得樂)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by lawyergo

[나를 찾아가는 과정] 이고득락(離苦得樂)


탈출이민러시
가망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희망이 없다. 탈출하고 싶다. 내 삶의 여유를 찾고 싶다. 하루하루를 맘 편히 산 날이 없다고 어느 모임에선 맨날 이민이야기와 달러로 바꿔놔야 한다는 이야기 뿐이라고 한다.

1년 새 일자리 7만8000개가 사라졌다.
- 젊은 이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자신에게 따라붙는 ‘백수’라는 딱지에 좌절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중년 가장(家長)들은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을 맛보고 있다. 또 직장인들은 그들대로 언제 정리해고의 칼날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다(조선일보, 2003. 8.14.)

산다는게 고통이다. 생존의 몸부림이 얼마나 처절한가. 삶이 아릅답다고 하지만 그런 순간이 과연 살면서 몇 번이나 올까? 한두번만 있어도 목숨은 부지하고 살것이다.
마음이 고와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만 독립해서 살 수 있을까? 심신일여라고 하지만 이를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물질과 마음은 하나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물질가는데에 마음따라 가고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리이고 현실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더 정확히 말하면 내 가정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것이다. 강도를 하던지 사기를 치든지 우리 모두는 어떻게 보면 상대방에게 알게 모르게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 칼만 안들었지 말로써 사람을 죽이고 있는가하면,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돈으로 이어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되면 진짜로 감옥가야 한다.

세상사람들이 남을 해치는 일을 좋아할까? 사람의 본성은 경건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먹고살려고 하다보니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그게 원수다보니 나 하나 사는 것은 지장이 없지만 자식새끼 우유값 댈려다보니... 내 자식이 우유도 못먹고 있다면 어느 가장이 눈에 핏기가 서지 않겠는가? 결국 먹고살자보니 그런 것이다. 세상살이를 이해해야 한다.

세상살이에 지친 나머지 출가를 하거나 성직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행자라고 별수 있을까? 어떤 행자가 말했다.
“출가하면서 버렸던 것이 절에 와보니 모두 여기에 다 있더라”
물질은 승속을 가리지 않는다. 생존의 고통이 승속을 구분할까? 종교의 위선도 바로 물질에서 나온다. 물질을 진짜 뛰어넘는 사람은 두 부류일 것이다. 하나는 물질이 아주 많던지 다른 하나는 죽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던지
성직자, 수행자일수록 단계가 올라가면 물질의 유혹과 앞날의 불안함을 견딜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청춘을 걸고 했던 것이 티가 안나면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올 것이고 그러면 평소 수행을 잘하는 사람도 선택의 기로에서 물질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세상인심이 모두 물질쪽으로 쏠린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마음닦았다해서 뭐가 대수인가? 티도 안난다. 그리고 그게 자기 업장이 많아서 남은 안해도 될 것을 하고 있는 것임에도 성직자의 병폐를 오히려 고스란히 짊어진다.
사제적성격과 훈육적성격이다.
착한일 하라는 말을 세상사람들을 학생 가르치듯이 한다.
누가 몰라서 안하나.

그러나 어찌하리. 진리는 진리라고 말할 수밖에. 물질은 유한하지만 마음은 영원하다. 세세생생 유전하는 과정에서 볼때 지금 이순간은 한 찰나에 불과하다. 그런 순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양심을 그르치고 마음에 흔적을 남기면 이 몸에서 기운이 빠져버릴 때 언제 만회할 수 있을까. 그러니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내 마음의 기운에 따라 세세생생 유전의 궤도가 그려지기때문에 자꾸 마음이 중요하고 마음을 닦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인가. 순수하게 마음을 냈다가 순진한 놈이 돼버리고 사람에게 당하는 연속이라면 오히려 마음에 더 상처만 받을 것인데...

마음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닦는 일이 따로 있지도 않고 방법이나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바로 이 지금, 그리고 그 속에서 번민하고 갈등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하루에도 마음이 수백번 왔다 갔다할때, 그리고 뭣같은 직장하면서 직장 욕을 할때가 바로 마음공부할 때이고 그 고통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마음공부라고 말하고 싶다.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백프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자세가 결국은 해결의 키인 것 같다. 내 복이 부족해서 박복한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면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부모가 해준 것도 아니고 결국 내가 원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내 복이 박복해서 박복한 사람의 기운을 빌려 나왔다면 주어진 굴레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내 맘에 내키지 않는다해서 차버릴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는게 자연의 이치이다. 시간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결국 참다보면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하나하나 업장이 내 몸에서 떼어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때가 오기 마련이고 그때는 고통이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고통을 피하면 영원히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고등락이라고 했다. 연꽃이 진흙탕같은 물에서 피어나는 이치가 있다.

덧) 2003년 국세청을 들어갔을 때의 글인데 지금 봐도 절망의 글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이 바뀌고 삶의 질이 더 높아지고 더 발전하고 사람들의 얼굴에 다들 희망이 가득하기를 원하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내 눈에는 아직도 안개가 뿌엿게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청한 가을하늘과 싱그러운 가을 내음이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와 닿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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