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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wyergo Dec 09. 2018

[국세청에서의 5년] 23 금지금 사건 소회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국세청에서의 5년] 23 금지금 사건 소회

이제 금지금사건에 대해서 마무리해야겠다. 써있는 글도 아직도 많고 할 말도 많지만 더이상 말하는 것은 사족이다. 단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정도만 간략히 언급하기로만 한다.

드러난 금지금업체들은 수십 개이지만 수백 개일 수도 있다. 단지 세금계산서로 추적한 업체가 수백 개까지는 아닐 뿐이다. 처음 일일이 국세청 전산망의 TIS로 거래도를 그려나가다보니 결국 수출업체가 금을 홍콩 등으로 수출하고 이를 국내수입업체가 수출가격보다 싼 가격으로 수입해서 도매업체들끼리 거래단계를 거쳐 꼭 부가세를 안 내고 폐업하는 폭탄업체로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폭탄업체는 매입가격보다 낮은 가액(94.5% 정도)으로 국내소매업체에게 판매하여 외국에 수출하겠다고 한 금을 국내시장에 돌려버리는 역활을 하였다. 어차피 세금 안 내고 도망갈 것이기 때문에 사장들은 통상 바자사장이었다. 실제 운용자는 드러나지 않았다. 금지금거래도에서 폭탄업체가 꼭 있어야 하는 이유는 국내소매업체들이 매입세액공제를 받아 부가가치세를 국가로부터 환급받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중에 국세청이 매입세액을 불공제하고 수백억 또는 수천억 의 부가가치세를 과세하자 자기들은 선의라고 주장하면서 불복을 하게 된다. 폭탄업체인 줄 몰랐다고 항변하였고 이게 나중에 먹혀들어가게 된다. 율촌이 대리하면서 써낸 서면들을 지금와서 보니 참 많은 것을 배워서 이를 써먹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지식들이 어디서 나와겠는가 싶다. 결국 국세청이지 않나싶다. 그래서 당시 조사총괄과장이
거기로 간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금지금사건을 하던 초창기에는 순진하게 로펌을 국세청 대리인으로 선임해서 대응하였는데 나중에서야 비로소 금지금팀 직원이 김앤장에 가서 설명을 해줬는데 칠판에 썼던 내용들이 디지털화되어 저장되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결국 일부 로펌은 나중에 금지금업자들을 대리하여 국세청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그 기초지식을 국세청으로부터 배워 국세청을 공격하는 데 써먹은 것으로 보인다. 조세전문가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금지금거래도에 있어서 폭탄업체 만큼 중요한 존재가 수출업체다. 이 업체들이 메이저들이다. 큰 업체들이다. 금지금시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졌다. 수출업체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수출을 해야만 영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영세율이란 부가가치세가 영의 세율이라는 의미다. 그러면 매입세액 전부를 환급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출세액이 100억이고 매입세액이 90억이면 국가에 납부해야 할 부가가치세액은 10억(매출세액 100억 - 매입세액 90억)이 되는데 만일 수출로써 영세율을 적용받으면 오히려 90억의(매출세액 0 - 매입세액 90억) 부가세를 내는 게 아니라 환급받는 걸로 나오게 된다. 국가가 내주는 이 환급세액과 중간 도관업체들인 소매업체들에게 환급해준 부가세액은 나중에 폭탄업체로부터 국가가 받아야 하는데 폭탄업체는 어차피 세금을 내지 않고 도망갈 의도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국가가 한마디로 사기를 당한 것이다. 돈 들어올 줄 알고 미리 돈을 내줬는데 나중에 받지를 못한 경우라고 보면 된다. 개인이라면 금방 알았을 것인데 국가는 돈이 많다 보니 수조 정도는 티가 얼른 나지 않는다. 일일이 따져봐야 아는 것인데 부가가치세 공식을 이용해서 해버렸기 때문에 전체 구도가를 쉽게 알지 못한다. 기껏 폭탄업체와 거래한 업체 정도만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로 부가가치세를 과세했었을 뿐이다. 이 전모를 파헤친 것은 영세율을 적용받기 위한 구매승인서에 착안해서 추적해보다 보니 칡넝쿨처럼 얼기설기 꼬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당시 법무과 직원들 조차도 소송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장담하고 다녔다. 금지금팀원들을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고도 하였다. 과장에게 협조해주지 말라는 이도 속이 밴댕이 같은 이들도 있었다. 직원들 중 연배가 높은 이는 술자리에서 "금지금소송이 이기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도 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원래 입으로만 일하는 이들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과원이 37명이어도 그 중에 5명만 일하고 나머지는 가만히 있어주면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나빠할 필요도 없었다.

솔직히 금지금소송은 이기기 힘든 사건이다. 왜냐하면 대금결제는 인터넷뱅킹으로 해서 외관은 남기고 IP 흔적은 없었고, 실물운반도 운송업체 일지에 운송한 것으로 다 작성해놨기 때문에 무슨 수로 가공거래라고 입증하기가 힘들었다. 홍콩에서 금이 수입되어 오후 3심 30분에 출발하여 5개업체를 거쳐서 다시 홍콩으로 수출하기까지 4시간 25분밖에 안 걸린다. 어찌보면 직원들의 조롱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사국을 동원하고 검찰을 끌어들였으나 가공이라는 증거를 수집하기는 어려웠다. 가공거래보다는 위장거래로 몰고 과세하거나 수사방향이 틀어졌다.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검찰도 딜레마에 빠졌다. 가공거래로 하면 공소시효 문제가 있었다. 그 고민을 들었지만 내가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실적을 내야하는 사람 입장에서 알아서 하게끔 냅둘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벽이었다. 한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해볼 시도는 다 해봤는데 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금지금팀으로부터 보고를 받게 되는데 그 보고를 받으면서 서광이 비추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지는 팩스번호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러 업체들끼리의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간의 팩스가 모두 동일한 팩스번호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팩스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도 실물운송은 가령 종로에서 마포로 운송한 것처럼 짜맞춰져 있었다. 이를 발견한 계기는 금지금팀도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로 있었는데 김동호 반장이 여러 개의 캐비넷에 있는 서류들을 전부 다 꺼내서 다시 한번 검토해보자고 다른 팀원들을 독려하여 서류철을 묶은 노끈을 풀면서 묶은 부분인 팩스용지 가장 윗부분에 팩스번호가 찍혀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게 계기가 되어 실물운송일지에 따른 운송시간들을 일일이 계산하여 현실적으로 그 시간안에 운송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부터 당연히 환급받아야 할 관세를 환급받지 않았다는 것까지 여러 정황들이 수집되자 최소 이 사건만큼은 이기겠다는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그 사건이 시발이 되어 다른 사건에도 도미노처럼 연속으로 승소하게 되었다. 그 사건이 승소했다고 선고결과를 보고받자마자 즉시 당시 서울청장(한상열)에게 보고를 하자 기뻐하면서 그날 점심을 금지금팀원들에게 사주셨다. 그분이 조사4국장으로 오면서 금지금 조사가 제 궤도를 가게 되었다.

금지금사건을 하면서 나도 국세청을 나가면 금지금거래를 해봐야겠다는 유혹이 들 정도로 돈을 너무 쉽게 벌었다. 그러나 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 수 있었다. 당시 형사4부장과 의견을 나누면서 폭탄업체 바지사장들을 지명수배해서 그들을 찾아서 조사해보면 그들을 고용한 실질을 확인할 수 있을 것 아니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장 실적을 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되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판결문 하나를 보고받았는데 내용인즉 실질사장이 폭탄업체 바지사장을 청부살인 하려다가 미수에 그쳐 실형을 선고받은 거였다. 당시 적어놓은 글이다.

실질경영자 입장에선 바지사장의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국세청이나 검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바지사장이 존재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의 입을 통해 바지사장을 내세워 불법을 저지른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증거를 없애야 한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까?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우선 중국에서 사람을 불러들인다. 그는 청부살인업자로서 조선족 출신이다. 그가 들어오면 실질사업자는 노숙자이며 한쪽 다리를 못쓰는 바지사장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하면서 중국에 1달간 관광하러 갔다오라고 하면서 선심을 쓴다. 물론 청부업자는 바지사장을 중국으로 여행안내를 하는 것처럼 중국으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여행이 목적이 아니라 살인이 목적이다. 청부살인업자는 그가 알고 있는 한족들에게 100만원을 주면 감쪽같이 바지사장을 죽이도록 의뢰해 놓은 상태다.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지만 실상 청부살인업자도 7백만원 정도 받기로 하였다. 그가 실질사업자에게 돈이 적다고 투덜댔지만 다음에도 계속 죽일 일이 있으니 일을 계속 주겠다고 하였다. 바지사장은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중국으로 여행갈 생각에 싱글벙글하지만 결국 바지사장은 저승사자를 따라 가는 셈이다. 정작 중국 땅에 도착하면 이승에 머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 계통에서는 사람하나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리고 청부살인업자가 바지사장을 죽이고 나서 그의 여권을 가지고 한국으로 들어와 살인교사한 실질사업자에게 건네주면 잔금을 받는 단계를 거치면 바지사장의 존재는 영원히 찾을 길이 없게 된다. 완전범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丙과 같은 직원의 경우 우연하게 살인지시를 알게 된 후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이 바닥이 이렇게 무서운 곳인가?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사람까지도 죽인다 말인가?”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바지사장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우선 여관에 머물고 있던 청부살인업자를 찾아가 사실을 확인한 후 그를 설득시켰다. 청부업자 역시 실질사업자를 배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후 그로 하여금 바지사장을 일단 중국으로 데리고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데리고 들어오게 한다. 바지사장은 여관 등 안전한 곳에 숨겨놓는다. 그리고 청부살인업자로 하여금 실질 경영자에게 일을 완벽히 처리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한다. 실질사업자는 모든 일이 다 계획대로 끝난 것으로 믿을 것이다. 만일을 대비하여 실질사업자를 협박하기 위하여 그동안 청부살인업자로부터 살인교사를 지시받았다는 진술을 녹취해 놓고 있었다.
이게 현실이다. 돈이 무서운지 사람이 무서운지 物神이 지배하는 사회다.

금지금은 영세율로 장난친다해서 면세로 바꿨는데 정책자의 단견으로 오히려 더 대규모로 하게 되는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내자 면세담보제도를 도입하면서 수그러졌다. 그러나 현금유동성이 강한 다른 물건으로 전환하면서 숙주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움직이는 것 같았다. 폭탄업체로부터 수출업체까지 사이에 있는 업체들을 도관업체로 보아 부가가치세를 과세하였지만 2008년 국세청을 떠난 이후로 대부분 패소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 금지금팀원들은 초창기 같이 일했던 팀원들도 떠나 후임들이 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이겨야할 소송에서 패소했다고 시말서를 써야 했다. 이길 때는 공을 주지 않더니 패하니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격이었다. 이미 나온 입장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착찹하였다. 일을 고생해서 벌리는 사람 따로 공치사 하는 이들 따로 책임지는 사람 따로, 이로 인해 돈버는 사람 따로였다. 앞으로 금지금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을 만나면 내 글을 보여주면서 어느 단계에 관여했는지 물어보길 바란다. 나나 금지금팀원들은 금지금 사건에서 유령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세수를 조단위로 절약해줬으니 재경부에서 주는 포상금이라도 신청해보라고 했지만 받은 적은 없다. 그 돈은 누가 받았는지 모르겠다. 이상이 내가 체험한 금지금 사건 일지다. 여기서 그만 마무리하고 싶다. 보람보다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더 많다. 인간군상들의 단면들이다. 한가지 금지금 거래 전체 각본을 짠 세력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을 것이고 그들이 나라를 돌린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인 것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금지금 운송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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