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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영 변호사 Dec 30. 2021

대법원 2021. 3. 18.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8다287935 전원합의체 판결


1. 나는 2014년에 캐디가 몰던 골프카트에서 떨어져서 뇌사 상태에 빠진 약사를 항소심에서부터 대리하여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였던 사실이 있다.

위 항소심에서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대위하는 경우 그 대위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에 대한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살피고 또 살펴보았지만 나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설시한 해당 법리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고, 오랜 검토 끝에 나는 종래 대법원 판례의 법리가 여러 측면에서 매우 부당하고 위 대법원 판례가 변경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분명히 나와 같은 문제 인식을 한 법률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위 대법원 판례에 대한 비판적 논문을 쓴 것이 있는지를 샅샅이 찾아보았고, 당시 동부지방법원에 재직 중이던 황중연 판사가 2012년에 쓴 논문을 발견하게 되어, 법원도서관에 가서 위 논문의 사본까지 떠왔던 기억이 있다(온라인으로는 위 논문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위 항소심의 마지막 준비서면에서, 위 논문 사본을 참고자료로 첨부하면서, 종래 대법원 판례의 입장은 여러 측면에서 부당하므로 내가 위 항소심에서 개진한, 타당한 새로운 견해에 따라 판결을 선고하여 달라고 주장하였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말의 기대는 저버리지 않고 있었는데, 역시나 결과는 항소기각이었다.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를 제기하였고, 당시 실제 대법원에 제출하였던 상고이유서의  "나." 목차에서 나는 아래와 같이 상고이유를 개진하였다.

"나. 원심 판결의 법리오해(전원합의체 판결로 종래 대법원 판결이 변경되어야 함)

그러나 원심이 인용한 종래의 대법원의 태도를 따를 경우 과실상계 후 가해자가 지급하여야 할 총 배상액의 범위 내에서 보험급여액 전부를 우선적으로 구상할 권리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게 보장하는 결과 피해자는 자신이 실제로 지출한 치료비 중 가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완전히 배상받지 못하게 되고, 이는 국민건강보험법이 보장하고 있는, 피해자가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 축소를 의미한다는 이유로 대법원 판례와는 다른 입장에 선 유력한 견해가 있는데, 위 견해에 따르면 과실상계 전의 피해자의 손해액 중 공단부담금 부분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만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이전되고 따라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그 공단부담금 중 가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액수만을 구상할 수 있으며, 당연한 귀결로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하여 본인이 치료비로 지출한 본인부담금 중 가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액수를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게 됩니다.

예컨대 총 치료비 손해가 1,000만 원인데 그 중 공단부담금이 600만원이고 피해자의 과실비율이 50%인 경우를 가정하면, 종래 대법원 판례의 입장에 따르면 공단이 가해자에게 구상할 수 있는 금액은 총 치료비 1,000만 원 중 가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액수인 500만 원 전액이고,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자신이 직접 지출한 치료비인 400만 원에 대하여는 가해자로부터 전혀 배상을 받을 수 없게 되는데, 이는 순전히 피해자의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즉 피해자 과실 100%인 경우와 피해자 보호의 측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위 유력한 견해의 입장에 따르면, 위 사안에서 공단은 가해자에 대하여 공단부담금 600만원 중 가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액수인 300만원(=600만원 ☓ 0.5)의 구상권을 취득하고,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하여 본인이 치료비로 지출한 액수인 400만 원 중 가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액수인 200만 원(=400만원 ☓ 0.5)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요컨대,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 제1항이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내지 보험급여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는 볼 수 없고, 위와 같은 경우와 이 사건의 경우에 있어서 부당하게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고 동시에 요양급여 혹은 손해배상의 공백 문제를 야기시키는 종래 대법원 판례의 입장은 이제 변경되어야 합니다[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참고자료1 ‘서울동부지방법원 판례연구회 논문집 창간호(2012년), 판사 황중연 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제3자에 대한 구상권의 범위; 대법원 판례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내용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2015. 6. 12.에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서 위 상고이유는 배척이 되었고, 결국 상고 기각 판결이 선고되었다.

2.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9년에 공교롭게도 위와 동일한 문제가 쟁점이 되는 사건을 다시 맡게 되었고, 위 사건 제1심에서 2020. 1. 7.에 마지막으로 제출하였던 참고서면에 이르기까지 나는 일관되게 종래 대법원 판례의 입장은 부당하므로 새로운 견해에 따라 판결을 선고하여 달라고 주장을 하였으나, 결국 2020. 1. 14.에 선고된 위 1심 판결에서도 기계적으로 종래 대법원 판례의 법리에 따라 판결이 선고되었다.

항소 여부를 논의하는 중에 의뢰인이 나에게 물었다. 항소했을 때 현실적으로 내가 개진한 위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얼마나 있냐고.

나는 답했다. 내가 생각할 때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여러 측면에서 매우 부당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법원 판례가 변경되지 않는 이상 하급심에서 새로운 견해에 따라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 마음 같아서는 항소에 상고까지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으나, 의뢰인의 주머니 사정 등 현실적인 상황도 고려를 하여야 하였기에, 논의 끝에 항소를 하지 않기로 하였고, 결국 위 1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이 되었다.

3. 그로부터 1년 2개월이 흘러, 지난 2021. 3. 18.에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래 대법원 판례의 입장을 변경하였는데, 변경된 판례의 입장은 위 2014년 사건 및 2019년 사건에서 내가 개진하였던 주장과 완전히 동일하다.

심지어 위 2014년 사건의 상고이유서에서 내가 기존 판례의 부당성을 주장하면서 언급하였던 예시가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전문에 거의 그대로 실려있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별도의 판례평석이나 판례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 내용이 매우 상세한데, 이는 가히 기존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만큼 대법원 내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아주 정치하게 그 법논리가 도출이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다수의견은 무슨 학원 강사가 학생들에게 판례 해설이라도 해주듯이, 기존의 대법원 판례가 왜 부당하고, 새로 채택된 법리가 왜 타당한지를 아주 상세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예시까지 들어가면서 설명을 해주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위와 같은 주옥 같은 논고로 종래의 부당한 판례를 뒤집고 타당하게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여 준 다수의견 개진 대법관들에게 경의와 찬사를 표하고 싶다.

더욱이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보충의견을 보고 나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위 보충의견은 실제 관련 소송 실무를 깊게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정보의 비대칭'에 따른 제도의 악용 가능성(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를 판례 변경 후에 나타할 수 있는 제도적 미비점이라고 보았으나, 이는 기실 판례 변경 전에도 얼마든지 일방 당사자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었다)까지 언급을 하면서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점까지 제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 2019년도 소송에서, 나는 앞서 언급한 쟁점에서는 결론상 패소하였지만, 위 전원합의체 보충의견이 지적하고 있는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정보의 비대칭'을 이용하여 우리 측 의뢰인에게 보다 유리한 판결이 선고되도록 기존 제도를 '이용'(양심상 '악용'까지는 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거듭 관련 소송을 수행한 끝에 위 2019년도 소송에 이르러서야 위와 같은 제도의 편면적 악용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하였던 사실이 있다.

그런데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보충의견에서 (나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위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향후 관련 재판 실무를 담당하게 될 법관들에게 어떤 것에 유의하여 판결을 하여야 하는지까지를 매우 상세하게 안내를 하는 것을 보고, 실로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세밀한 부분까지 보충의견을 통해 재판 실무에서의 유의점 및 제도적 보완점을 제시하여 주신 두 분의 대법관들에게는 다시 한 번 더 경의와 찬사를 표하고 싶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개진한 분이 이동원 대법관님이신데, CLF에서 뵌 적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존경하는 분이지만,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동원 대법관님이 개진한 반대의견에는 나는 찬동할 수 없다.

나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정 확충'이라는 목적을 위해 불법행위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타당한 법적 근거도 없이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고 의심을 하였는데(의심 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도대체 왜, 어떤 연유에서 위와 같은 비논리적인 법리를 일관되게 채택하고 있었는지를 위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전까지는 스스로 설명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 반대의견을 보고서야 위 의심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목적을 위해서(즉, 법원이 건강보험공단의 곳간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 수급권자인 일반 국민들의 권리를 타당한 법적 근거도 없이 부득이 일정 부분 침해를 하고 제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식의 기존 대법원 판례의 입장 및 위 반대의견에는 동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게 되었다(이는 나의 학문적 의견일 뿐, 이동원 대법관님 내지 위 반대의견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위 2019년도 소송에서 항소를 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물론 크고,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내 이름 석자를 소송대리인으로 새기지 못한 아쉬움도 물론 크지만, 그 동안 내가 애 쓰면서 개진해왔던 주장이 헛된 주장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앞으로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서 정당하게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아쉬움보다 다행스러움이 훨씬 더 크다.

4. 내가 몸 담고 있는 법무법인의 이름이 J&C(Justice & Challenge), 우리말로 하면 정의와 도전인데, 나는 위 이름에서의 '정의'와 '도전'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단순히 병렬적으로 '정의와 도전'일까, 아니면 '도전을 위한 정의' 또는 '정의를 위한 도전'일까에 대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정의를 위한 도전'이었다. 우리가 하는 도전은 정의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도전의 방향도 정의를 가리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가 있으면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황중연 판사님(확인해보니, 현재는 서울중앙지법의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시다)의 정의를 위한 도전, 미약했고 거듭 무위에 그쳤지만 나도 동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정의를 위한 도전, 비록 나는 위 2019년 사건에서 더 이상 상소를 통해 다툴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이어진 여러 변호사님들의 고되고 값진 정의를 위한 도전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위 전원합의체 판결이라는 정의를 비로소 이루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비록 당장은 패배하더라도, 우리가 정의를 위한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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