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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king worker Mar 27. 2018

도시 농부의 삶을 꿈꾸며

[40의 일기 No.2-텃밭 프로젝트]

 일상을 살기로 결심한 어느 날, SNS에서 텃밭을 분양한다는 게시글을 봤다.

 도시 농업 활동을 하는 비영리 단체의 글이었는데, 서울의 한 복판 어느 건물 옥상에 마련된 그 단체의 옥상 텃밭을 분양 받을 사람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계정을 팔로 한 후 관심을 가지고 게시글을 봐 오기는 했지만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최근에 환경 문제나 좋은 식재료를 섭취하는 것에 관심이 좀 생겼고 부모님의 귀농 이후 나의 노년의 삶을 그릴 때 식재료를 자급자족하는 모습을 더 자주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마침 나는 수업이 줄면서 수입이 줄어 정기 배송을 받던 야채의 주문을 취소했고, 더불어 시간도 더 늘었고 일상을 살기로 결심한 참이었다.

 텃밭 분양 모집글은 매력적이었고 월 회비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뭐든지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꼭 해야 하는 일이거나 강력히 원하는 일이 아닌 경우에는 나의 의지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나는 어쩌면 분양 신청 폼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까지는 쉽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내 후회하거나 겁을 먹고 취소하거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분양을 받는 과정은 완수한다고 해도 분양을 받은 후 첫 삽을 뜨러 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돈만 내고 밭을 놀리는 기간이 길어지고 그러다가 의욕이 어느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감안하자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던 월 회비가 좀 크게 느껴졌다.


  물론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까지 생각을 정리한 건 아니다. 그냥 '나 혼자 시작하기에는 너무 큰 프로젝트'라는 생각과 그에 비해 드는 기회비용(월 회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이 부담을 나눈다면 어떨까? 밭은 1인당 두 두둑을 분양 받는다고 하니 하나씩 맡아 농사를 지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때 동료 Y가 떠올랐다. Y는 몇 번인가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좋았다는 얘기를 했었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텃밭에서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는 일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Y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한 시간쯤 뒤 답장이 왔다. 몇 마디 주고받은 우리는 8분 만에 분양 동지가 되기로 결정하고 나는 그날 저녁에 분양 신청을 했다.  

  

  그렇게, 평생 농사라고는 지어 본 적도 없고, 동경하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는 두 명의 무지한 인간이 도시 농부 되기 도전을 시작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뭘 심을지도 결정하지 못했고 작물들을 언제 심고 언제 수확하는지도  모르는 나와 Y가 각자의 밥상에 손수 재배한 채소를 올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이 도전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고 생활 반경과 관계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우리는 이 마음을 바꾸지 않고 텃밭 분양 농사꾼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할 수 있을까?


 4월이 이렇게 기다려지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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