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의 일기 No.3-텃밭 프로젝트]
아침에 눈을 뜨니 약속 시간 20분 전이었다. 맙소사. 어제 자기 전에 마신 맥주가 화근이었다.
오늘의 약속은 다행히(?) 상대방이 나와의 만남이 아니더라도 움직일 계획이었던 일이었다. 바로, 나의 텃밭 메이트 Y와 우리의 텃밭을 처음 방문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주일 전 합정의 한 모임 공간에서 열린 분양 오리엔테이션에서 텃밭 분양을 확정 지었다.
나와 Y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농사꾼에게도 텃밭을 분양해 주고 필요하다면 교육도 해 주는 이 은혜로운 도시 농업 활동 단체의 오리엔테이션은 우리의 불안함을 불식하기에 충분했다. 모르는 게 있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문제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절하고 따뜻했으며 나 같은 내성적인 인간이 불편하고 어색하여 한 발 물러서지 않을 정도로 '개인 존중'의 분위기를 느꼈다. 지나치게 소규모인 것도 지나치게 대규모인 것도 불편해하는 나에게는 규모도 적당했고 많이 신입 분양 농사꾼들에 대해, 알고 왔을 거라는 기대도 모를 거라는 식의 고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농사 자체가 아니라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단지 그런 분위기였기에 텃밭을 가꾸는 일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다는 거다.
그렇게 우리는 그 자리에서 텃밭 분양 계약서-이렇게 쓰니 너무 거창한 것 같은데 달리 붙일 이름이 없다-에 사인을 하고 월 회비 납부를 위한 자동이체 신청서까지 작성했다. 그리고 짜잔~ 이날 참석한 분양인들 끼리 분양 받을 밭의 위치를 뽑았다. 우리의 밭은 5번. 수도 옆 자리가 좋다고 해서 은근히 기대했는데 우리 자리는 수도꼭지 옆 옆 자리가 되었다.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고 오늘, 나의 텃밭과 첫 대면을 하는 날 나는 지각을 하고 말았다. Y에게 카톡을 보내고 후다닥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텃밭이 있는 건물은 -우리의 텃밭은 '옥상텃밭'이다- 걱정한 것보다 찾기 쉬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1년 동안 나에게 농사를 가르쳐 줄 텃밭은 생각보다 아담했다.-사이즈를 듣기는 했지만 내가 워낙 길이, 무게, 부피의 실제와 수치 사이를 연결하는 감각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듣고 생각한 것보다 수도와 가까워서 물 주기가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분양 받은 두 개의 두둑 사이에 공간이 있어서 필요하면 널찍한 화분을 갖다 두고 뭔가를 더 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서 휑한 공간이지만 곧 주변 밭들도 농사를 시작하고 우리도 본격적으로 뭔가를 재배하게 되면 이곳은 파릇파릇해지겠지.
우리는 단체에서 분양 농사꾼들에게 나눠 주는 씨앗들과 텃밭에 세워 둘 수 있는 명패를 받았다. 그리고 단체에서 제공해 주는 퇴비를 옮겨다 두었다.
내가 오기 전에 선배 회원들로부터 이것저것 들은 Y가 필요한 물건들과 농사 팁에 대해 말했다. 우리가 오늘 대화에 올린 농작물들은 가지, 토마토, 부추, 루꼴라 등이었다. 이런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밭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초록색 생명을 잘 돌볼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선 다음 주에 저 퇴비를 잘 뿌려 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