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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사실은 매일 자기 전에 명상을 해

by 레이지마마


“엄마, 나 사실은 매일 자기 전에 명상을 해. 벌써 4개월쯤 됐어. 친구들이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봐 제대로 앉아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누워서 눈을 감고 엄마가 알려준 대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껴. 잠들어 버릴 때도 있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 솔직히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있고. 어쨌든 계속하고는 있어. 하루도 거른 날은 없었어.”


네 이야기를 듣자마자, 엄마는 ‘와, 우리 아들 참 대견하구나.’라는 마음과, ‘오죽 힘들었으면…”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어. 사실 고등학생 축구 선수가 시키지도 않는데 혼자 명상을 하는 경우는 드물잖아.


네가 종종 말했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는 마음 때문에 힘들다고. 경기가 잘 안 풀리면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비난하는 것 같아 계속 신경 쓰이고, 경기 중 실수라도 하면 스스로 멘탈이 흔들려 집중력을 잃는다고. 나는 네 입장이 되어 본 적은 없지만, 그 기분이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


축구장에서 공을 찬다는 건 무대에 서는 것과 다름없잖아. 다음 경기를 뛰려면 감독님 눈에 들어야 하고, 진학이나 취업을 하려면 스카우터 눈에 들어야 할 테지. 한 경기 한 경기마다 멋진 플레이를 선보이고, 승리에 기여해야 한다는 압박이 클 거야. 패스를 잘 연결시켰을 때 기립 박수를 치는 사람은 없지만, 연결이 안 되면 야유를 하잖아. 때로는 야유보다 실망스러운 한숨이 더 신경 쓰일 테지. 아슬아슬한 골을 시도했다가 못 넣으면 욕을 먹고, 들어가면 환호를 받지. 나의 한 동작 한 동작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그 결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 그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어휴 상상만 해도 심장이 오그라든다.


나는 도저히 못했을 거야.

네가 멘탈이 약한 게 아니라,

운동선수라면 다들 겪는 어려움일 것 같아.


“명상을 하면 도움이 될 텐데. 평정심을 기르는 데 명상만 한 것이 없거든”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별다른 대꾸가 없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었어. 그런데 듣고 있었구나. 좁은 기숙사 2층 침대에 누워 친구들 몰래 혼자 숨을 쉬고 있었구나. 그만큼 네가 힘들었구나. 잘 하고 싶었구나.




작년 이맘때쯤, 일기장에 썼던 글이다.


1년이 지났고, 아들은 대학 축구부에 진학했다. 여전히 주전 경쟁을 하며, 매일매일 경기력을 평가받는다. 경쟁과 압박감은 피할 수 없는 운동선수의 운명인 건가? 아들은 늘 자신의 멘탈을 탓했다. 강한 멘탈을 키우고 싶다며 관련 책도 보고 유튜브도 봤다. 그런 차원에서 명상도 꾸준히 한다고 했다.


안쓰러웠지만 내가 경험해 보지 못 한 세상이니 쉽게 조언도 할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으면 그만두어도 괜찮은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아들은 여전히 축구 선수를 꿈꾸고 있고, 그걸 포기하라 말라 할 권리는 나에게 없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들과 대화 중에 1학년 때 축구를 그만두는 친구들이 반 이상 된다는 말을 들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주전 경쟁에서 계속 밀리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축구 선수로 취업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면 현실적인 대안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전성기가 다른 건데, 좀 더 해봐도 되지 않나?”

“부모님께 죄송하잖아. 축구 뒷바라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너희가 그런 생각도 해?”

“대부분 다 하지.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 축구부에 계속 있는 건 불효지.”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아직까지 나 때문에 아빠 엄마가 너무 고생했잖아. 특히 다리 다쳐서 치료하고 재활하는 동안 돈도 너무 많이 썼고. 실비 보험도 안 돼서…"


그놈의 실비보험! 나는 빵 터져서 웃었는데, 아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 아빠가 희생한 걸 생각하면 자기가 좀 더 잘하고 싶은데, 요즘 플레이가 잘 안돼서 괴롭다며... 급기야 서럽게 울었다.


아들이 축구 선수인데 실비 보험을 제대로 안 들어 놓은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그 대가로 돈을 많이 쓰긴 했지만, 아들이 미안해할 일은 아니다. 그걸로 부모에게 빚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뭘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서진아, 잘 들어. 아빠 엄마가 너희를 뒷바라지하는 이유는,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야.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한 거야. 네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면서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알아? 아들이 운동장에서 땀 흘리고, 뛰고, 웃고, 울고… 경기장 따라다닌 추억만으로도 엄마, 아빠는 너무 행복했어. 그걸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은 거야. 네가 앞으로 축구 선수로 성공하든, 안 하든 그건 엄마에게 중요하지 않아. 네 인생이니까.


물론 네가 잘 되길 바라지. 하지만 남들 눈에 아무리 화려해보여도 본인이 행복하지 못하면 좋은 인생이라 할 수 없어. 네 인생이 만족스러운지 아닌지는 너만 아는거야. 네가 어떤 길을 가든, 엄마 아빠는 무조건 너를 응원할 거야. 가족이니까. 엄마 아빠도 행복하게 잘 살려고 노력할 테니, 너도 응원해 줘. 그리고, 이미 성인이니 앞으로는 어떤 결정을 할 때 우리를 떠올리지 마. 아직 학생이니까, 돈이 필요하면 부모와 상의해. 지원해 주고 안 해주고는 우리가 결정할게. 도움을 못 받았다고 원망하지도 말고, 받았다고 해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마. 할 만해서 하는 걸 테니까. 우리 서로 응원하면서, 각자 잘 살자."


그날 이후, 아들은 뭔가 달라졌다. 어두웠던 표정이 밝아지고, 한결 편안해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후 아들은 블로그에 글을 한 편 썼다. 축구 선수로 성공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컸는데, 그날의 대화가 삶의 태도를 바꾸는 데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나는 너에게 바라는 게 없어. 그냥 존재만으로도 감사해. 네 인생은 네 거야.”라는 등의 구태의연한 말은, 구태의연하기에 더욱더 힘주어 말해야 하는 것 같다.


부모의 당연한 역할에도, 자식들은 (감사를 넘어) 빚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나는 아이의 발목에 납덩어리를 매달고 싶지 않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그래야 비로소, ‘부모로서 나의 임무를 완수했다.’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25. 10. 29.

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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