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경험
경험의 멸종 - 크리스틴 로렌
이 책의 내용은 표지의 제목과 그 아래 짧은 문장만으로 다 요약이 가능하다.
<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수 있을까>
이 문장을 이해한다면 책 속의 내용은 길고긴 사례의 인용일 뿐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는 것과 책을 전부 읽는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책의 제목과 한 문장만 읽고 이 책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말하자면 그게 지금의 기술로 ‘매개‘되는 사회이다.
인터넷과 핸드폰. 소셜 미디어와 스트리밍 서비스. 이제는 그런 것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기술"들은 우리에게 엄청난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댓가도 치르게 만들었다.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 '경험'에 포커스를 맞추어 이야기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대신 기술을 '매개'로 하여 '경험' 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걸 더 직접적이고 투박하게,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찍먹'만 하고 진짜 맛은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한다는 말이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 Yi-Fu Tuan은 ”경험은 위험을 극복하는 것이며 ‘경험’이라는 단어는 ‘실험 experiment’, 전문가expert, ‘위험한 perilous’과 어원이 같다‘ 고 했다.“
그는 경험은 낯선 곳으로 과감히 나아가고 불확실성과 잠재적인 위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의 위험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것은 경험이 아니다.
P. 44
책에는 경험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여행에 대한 파트가 꽤 많다. 여행은 우리가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떠올리기에 가장 상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해외 여행을 하면 시야가 넓어지고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다는데 진짜인가요?" 같은 글을 종종 보게 된다. 이 말 속에 묻어있는 의심은 한편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질문 자체의 문제를 지적할 수 밖에 없기도하다. 여행이라는 말의 범위는 매우 넓다. 즉 일이 아닌 목적으로 해외를 가는 모든 행위가 여행이라는 범주로 들어갈 수는 있으나 그 여행의 방법과 무엇을 겪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것, 방향 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관광은 안전하고 통제된 것, 미리 정해진 것이다." 현대의 기술은 관광업의 이상적인 시녀다. 기술은 통제, 편의, 안전을 촉진하고 불안감의 완화를 약속 한다. 기술은 모험이 빗나갈 경우의 안전망을 여행자의 손에 쥐여준다.
P. 228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려한다. 서두에 말한대로 짧게 요약한 걸 보는 걸로 진짜 그 컨텐트를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멸종'의 대표적 행위이니까. 관심이 간다면 꼭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영화를 유튜브 요약본으로 보는건 그 영화를 정말 본 것일까 아닐까? 요약본을 보고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았다"라고 말하는 걸 몇번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꽤 길어보이지만 읽기 어렵지 않은 책이고 그 속에 나오는 수많은 인용과 예시를 차분히 읽어나가는 건 그걸 짧게 요약 정리한 것보다 분명히 더 좋은 '경험'이다. 두꺼운 책을 읽는건 현대인의 기준으로 들이는 시간 대비 얻는 이득은 낮은, 시쳇말로 '가성비' 떨어져 보이는 행위처럼 보이겠지만 우리의 삶은 편리함과 효율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쓸데없어 보이는 작은 시간들이 모여 진정한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이야기해보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초라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경험을 한게 있다면 바로 여행이다. 지금까지 대략 70개국 정도를 다녔다. 그 중 상당수의 나라는 자전거를 타고 2년여간 페달을 밟으며 한 여행이었다. 그 이야기도 언젠가 풀어볼 생각이지만 이번엔 나의 첫번째 해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이가 드러나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나의 첫 해외 여행은 97년이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약 한달 조금 못되는 기간의 유럽 여행. 그때를 상상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묘사하자면 인터넷이라는 게 존재는 했지만 일상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여전히 전화선을 연결해 PC 통신을 하던 시절이었다. 유로화가 생기기 전이어서 국경을 넘을때마다 나라에 맞춰 환전을 해야했다. 비행기내 금연이 거의 자리를 잡았지만 소수의 항공사에는 여전히 흡연석이 남아 있었다. 핸드폰은 커녕 디지털 카메라도 생기기 전이었고 여행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여행 안내서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갔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여행을 했지만 그 첫 경험은 여전히 강렬하게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의 대부분은 실수이고 고군분투의 시간들이다. 지금처럼 미리 인터넷으로 숙소를 예약할 수도 없었고 기차를 타려면 직접 역에 가서 표를 사야했다. 여행 안내서에 나오는 추천 식당들은 몇개 되지 않았고 구글 리뷰도 네이버 블로그 정보도 없었다.
지금이야 그래도 영어가 꽤 늘어서 여행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고 간단한 대화 정도는 문제 없지만 당시엔 수능 영어 문제 푸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직후였고 회화는 해본적도 없었다. 숙소를 예약하러 가서 직접 가격을 물어보고 비싸면 더위 속에 또 다른 곳을 찾아 무작정 걸어야했다. 로마에서 힘들게 잡은 숙소는 당연히 에어컨은 없었다. 열대야에 잠을 이룰수 없을만큼 더웠고 큼지막한 바퀴벌레들이 룸메이트가 되어주었다. 기차표를 잘못 예약해 야간 열차에서 지정석 없이 쫓겨다니듯 자리를 옮겨 다닌적도 있다. 이렇게 늘어놓으면 고생만 하다 온것 같지만 그 사이사이에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도 당연히 많다.
우피치 박물관을 보려 피렌체에 갔지만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못들어간다는 걸 도착 후에야 알았다. 실망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가보니 성당 앞에서 무료 브라스 공연을 하고 있었다. 노을과 함께 그 공간을 가득 채우던 아름다운 연주. 연주가 다 끝나고 발길을 돌리니 골목마다 온갖 밴드와 마술사, 예술가들이 자기만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가로등과 건물 사이에 늘어진 꼬마전구들을 따라 놀이공원에 처음 온 아이처럼 들떠 한참을 돌아다녔다. 스위스에선 돈이 없어서 융프라우는 포기했지만 별 기대없이 간 로잔에서 잊지못할 노을을 만나고 물 속의 내 발이 보일만큼 투명했던 호수에서 수영을 했다. 파리는 동선 때문에 두번을 들렀는데 그때 배워서 여지껏 기억하는 불어가 하나 있다. Gard du Nord. 갸흐 드 노흐. 파리 북역. 그때는 표를 사려면 무조건 창구에서 목적지를 말해야 했다. 영어를 모르는지 아니면 알아도 무시하는지 몰라도 North Starion 이라는 말은 소용 없었다. 처음 시도에서 시행착오 끝에 어렵게 표를 사고 두번째에는 자신있게 창구로 향했다. 내 앞에는 미국인 관광객이 몇번이나 영어로 북역을 외치고 있었고 역시나 창구 직원은 고개만 갸웃하고 있었다. 나는 영어도 불어도 잘 못하지만 나서서 자신있게 갸흐 드 노흐 실부뿔레를 외쳐 그 미국인을 도와 주었다. 그 짧은 한마디로 창구 직원과 미국인 관광객으로부터 고맙다는 말과 미소를 받았다. 별 것 아닌 그 기억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들은 예상치 못하고 만났기 때문에 아름답다. 미리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거기에 무엇이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 알고 가면 그 예상치 못한 순간의 확률은 낮아진다. 여전히 낯선곳에서 마주치는 불확실성은 존재하지만 인터넷 이전의 시대에 비할바는 아니다. 인터넷으로 미리 정보를 알아보는 지금과 달리 거의 매순간이 불확실하고 그 불안감은 대부분 실패와 실망으로 이어진다. 그 실패의 경험은 당시에는 일종의 스트레스지만 실패와 실패 사이에 반짝이는 순간들은 그로인해 더 찬란해진다. 인터넷이 생기기 전, 이전의 경험자들이 책으로 여행 가이드를 만들어 주기도 전에는 어떠했을까? 책 속의 표현대로 여행은 말그대로 예상치 못한 것, 방향 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기가 있다. 그건 바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이다. 그 책이 좋은 이유는 여행에서 그가 느끼는 경이로움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커녕 여행 안내서도 없는 길. 때로는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는 미지로의 길.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 풍경들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순수한 놀라움들. 이제는 그런 여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같은 여행을 하려면 애써 넘쳐나는 정보를 거부해야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인간은 불안에 쉽게 휘둘리는 존재이고 그 불안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그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여름에 몇주에서 한달 가까이 가는 여행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주일의 휴가를 가기조차 힘든 사람들이 많다. 제도와 인식에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여유 있게 여행을 즐기는 환경은 아직 부족하다. 그런 세상에서 짧은 얼마간의 '관광'을 진짜 여행이 아니라고 무시하거나 폄하하는건 옳지 않다. 그러나 여행마저도 효율성을 따지고 경험보다 '보여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여행의 기간보다 경험의 방법이 더 중요하다. 물론 유럽이나 선진국의 사람들이 항상 우리보다 더 좋은 경험을 하는건 아니다. 그들도 늘 핸드폰을 붙잡고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겠지만)
여행이 시야를 넓혀주고 이 세상을 더 잘 알수 있게 해주는가? 그 대답은 YES 이기도 하고 NO 이기도 하다. (여행이 반드시 무언가를 얻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매우 자본주의적이다. 그 이야기는 길어지니 일단 넘어가자. 애덤 스미스는 2년간의 그랜드 투어를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부론을 완성했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능력이 있는건 아니다. 물론 그는 부유한 공작의 아들을 위한 개인교사였고 그 투어의 보상으로 평생 연금을 받으며 책을 썼으니 그야말로 큰 소득이긴 했다.)
굳이 말하자면 Better than nothing이지 않을까? 늘 같은 곳에 머무는 것보다는 어디든 가면 적어도 새로운 자극은 받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배움으로 삼을 수 있다. 오히려 경계해야 하는건 스스로의 마음이다. 낯선 곳에 가서도 자신에게 익숙한 관습,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새로운 자극만 즐기려 한다면 그건 오만이고 낭비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집에서 여행 유튜브를 보는 것과 큰차이 없는 경험 아닌 경험으로 남을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진짜 경험으로서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길게 말했지만 나도 그럴듯한 대답은 가지고 있지 않다. 각자의 환경과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답은 없다. 당연한 것도 없다. 나의 경우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내 삶의 틀을 벗어나는 희열, 대부분 지루하고 실패하지만 단 한 번 만날지 모르는 미지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시스템의 일부이자 조연일 뿐이지만 여행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주인공인 척 할 수 있는 달콤한 착각. 그게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아닐까?
가능하다면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보길 권한다. 그 방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지금껏 수많은 여행자를 만났다. 한쪽에 의족을 단채로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하는 이도 있었고 채 돌도 안된 쌍둥이를 데리고 지구 반대편을 다니는 부부도 보았다. 휴대용 LP플레이어와 음반을 들고 베토벤과 모짜르트 같은 유명한 음악가들의 집 앞에서 그걸 틀고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는 청년을 만났고 우울증에 걸려 회사를 그만두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어코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던 친구도 있었다. 그 외에도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길을 떠났던 많은 여행자들을 보면서 나는 이 문제 많은 세상 속에 남아 있는 희망들을 보았다. 그렇게 대단하고 요란한 방식이 아니라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혹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많다. 어쩌면 리뷰에 의지하지 않고 무작정 어딘가의 낯선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에 배탈이 날 수도 있지만 그 실패와 실패 사이에 생각지 못한 보석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떤 여행자인가?
어쩌면 그 질문은 어느새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관광객은 예측 가능성과 편리함을 원한다. 여행자는 불안이 음악의 꾸밈음처럼 여행의 작지만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여행의 핵심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소설가이자 여행 작가인 폴 서로는 《여행자의 책》에서 "최고의 여행에는 단절이 필수다. 사람들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는지 모르는 것은 행운이다"라고 말했다.
P. 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