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누이, 이른바 모아이의 섬.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을 향해 돌을 깎았다. 숲이 사라지고 토양이 메말라가도 그 손은 멈추지 않았다. 석상은 점점 커졌고, 섬의 나무는 점점 줄었다. 한때 이 섬의 몰락은 인간이 스스로 숲을 베어내고 생태계를 파괴한 ‘자기파괴’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게 변했다. 인간의 개간뿐 아니라, 이주와 함께 들어온 설치류가 씨앗을 먹어 숲의 재생을 막았다는 연구, 기후 변동과 외부의 충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주장들이 이어졌다. 원인은 다양해졌지만, 그 안에서 한 가지 사실은 여전히 선명하다. 현실이 무너질수록 사람들은 상징에 더 매달렸다. 그것만이 아직 남은 ‘질서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석상은 점점 거대해졌고, 제식은 더 정교해졌다. 닥친 현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쏟아야 할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허비한 셈이다.
마야 문명도 그랬다. 하늘을 읽고 별의 질서를 기록한 문명, 정교한 신전과 달력의 문명. 그러나 그 하늘의 평온 뒤에는 오랜 가뭄과 흉작이 이어지고 있었다. 곡식이 줄고 땅이 갈라지자 사람들은 더 많은 제물을 바쳤고, 신전의 계단은 하늘을 향해 더 높아졌다. 그들은 하늘의 질서를 기록했지만, 땅의 균열을 읽지 못했다. 믿음이 흔들릴수록 의식은 커지고, 절망이 깊을수록 상징은 단단해진다.
조선 말기 또한 다르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상흔은 나라의 기초를 무너뜨렸다. 인구는 줄고 제도는 낡았으며, 백성들은 굶주렸다. 그럼에도 양반과 선비들은 예법과 명분을 논하며 붕당 싸움에 빠졌다. 굶주린 백성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예가 더 바른가 하는 논쟁이었다. 전쟁이 끝나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정당했지만, 그 정당함이 현실을 구하지는 못했다.
세 문명은 서로 다른 시대에 있었지만, 같은 길을 걸었다. 세상이 무너질수록 인간은 상징에 매달렸다. 그것은 믿음의 순수 때문만이 아니었다. 두려움을 다루는 가장 익숙한 방식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위협받은 신념일수록 인간은 그 신념에 더 집착한다”고 말했다. 불안을 밀어내려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 그것이 반동형성이다. 제도와 문명의 역사에서도 이 심리는 반복된다. 경제학자 폴 데이비드는 “우연한 작은 사건들이 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굳혀버리는 연쇄”라고 했다. 한때 잘 작동했던 길이 위기에 처하면, 사회는 새로운 길을 찾기보다 그 길을 더 두껍게 덧댄다. 라파누이는 석상을, 마야는 신전을, 조선은 예학을 더 높였다. 위기를 헤쳐나가기보다, 위기를 감추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생각을 멈추지 않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명은 생각보다 기억을, 개혁보다 복제를 선택했다. 익숙함은 안전했지만, 그 익숙함이 결국 자신을 삼켰다. 우리는 불안할수록 더 단단한 틀을 찾는다. 그러나 그 틀이 낡아 있을 때조차,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인류는 언제나 두려움을 다루기 위해 상징을 키워왔다. 그 상징이 석상이든, 제식이든, 제도든, 결국 같은 일이었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석상을 세운다. 이름은 자본, 그리고 성장. 이 체제는 오랫동안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기반은 끊임없는 확장과 경쟁이었다. 더 많은 자원, 더 큰 시장, 더 빠른 속도. 하지만 이제 확장할 세계가 거의 남지 않았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예언이 아니라 현재가 되었고, 불평등은 숫자가 아니라 매일의 일상이 되었다. 유럽의 거리는 시위로 흔들리고, 미국은 세계를 아우르지 않겠다고 하며 자신들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여전히 움직이지만, 이제 그 손은 곳곳에서 미끄러진다. 자본주의는 속도를 멈출 수 없다. 그러나 멈추지 못하는 속도는 종종 파멸을 향한 달리기다. 그럴수록 사회는 숫자를 신으로 바꾼다. 성장률, 주가, GDP, 효율, AI, 데이터. 우리는 그것들을 석상처럼 높이 쌓아 올리고, 그 앞에서 다시 절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신을 만든다. 오늘의 신은 그래프와 수치, 그리고 그것들이 약속하는 끝없는 확신이다. 숫자가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하겠지만, 숫자는 불안을 덮는 가장 손쉬운 믿음이다.
지금이야말로 세계가 손을 맞잡고 이 위기를 다뤄야 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국경은 높아지고, 서로의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이미 각 나라 안에서 분열이 커져가니,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함께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사이 착취는 형태를 바꿔 살아남는다. 플랫폼은 사람을 연결하는 기술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누가 누구의 시간을 더 오래 점유하느냐의 경쟁이 되었다. 데이터와 광고의 회로 속에서 인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소모’되고 있다. 예전에는 대륙이 수탈의 무대였다면, 이제는 사람의 시선과 시간이 새로운 자원이다. 착취는 도구를 바꿨을 뿐, 본질은 여전하다.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노동이 아니라, 서로의 주의와 감정까지 소비하며 살아간다.
한국도 이 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몇 해째 성장률은 낮아지고, 청년들의 행복지수는 떨어진다. 정치성향을 떠나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그래도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보이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와 소수의 사람들만으로 해결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보인다. 와중에도 어떻게든 실용이 아니라 기득권을 유지하고 되찾으려는 무리들의 저열한 공격들은 넘쳐나고, 외부에서는 끝없이 파도가 들이친다. 마치 씨앗을 심고 먹을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시점에, 누군가는 여전히 석상의 모양을 논하고 있다.
탄핵된 대통령이 시대와 맞지도 않는 ‘공산주의니 음해세력이니’ 하는 말을 늘어놓을 때, 그것은 조선의 선비들이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싸우던 예송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의 위기를 앞에 두고도, 여전히 명분과 적개심으로 눈을 가린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탄핵이 이루어진 후에도 여전히 그 밑에서 권력을 누리던 이들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과 행동들은, 나무가 사라져가는 섬에서 무슨 도움이 될까.
그보다 더 절실한 문제들이 있다. 예컨대 캄보디아에서 벌어졌던 사기와 인신매매 사건처럼, 돈이 도덕보다 앞서는 세계의 비극이 그것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허위 구인에 속아 끌려가고, 폭력과 빚으로 묶인다. 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같은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개인의 타락보다 구조의 무관심이 더 깊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한국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그 외 국내의 쌓여있는 문제들과 외부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일들을 풀어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어디선가 오직 정치적인 이유 혹은 권력 싸움에만 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인간은 석상 앞에 모인다. 그 석상이 신이든, 권력이든, 진영이든.
모아이의 얼굴은 신을 향했지만, 섬의 미래는 그 얼굴의 등 뒤에 있었다. 신을 향한 믿음이 깊어질수록, 바다와 숲은 더 멀어졌다. 마야의 신전이 하늘로 높아질수록, 대지는 물을 잃었다. 조선의 의례가 정교해질수록, 백성의 밥상은 비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세우고 있는가. 더 큰 성장률, 더 빠른 기술, 더 단단한 진영, 더 비싼 집값. 그것들이 우리의 구원이 되지 못한다면, 언젠가 종말의 기념비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두려움을 다루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늘 상징을 키운다. 그것이 신이든, 숫자든, 진영이든. 그러나 진짜 필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숲을 심고, 물을 지키고, 사람이 사람 곁에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 그것이 문명의 마지막 과제다.
보지 않으면, 보지 않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 살아남은 후손들이나 먼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이 우리의 유적을 연구한 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니다. 다만, 끝내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길 위에서 그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비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