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복잡해지지만 우리의 시선은 어쩐 일인지 더 좁아진다. 고등학교에서부터 이과와 문과로 갈라지고, 대학에 들어가면 더 세분화된 학과로 흩어진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자가 된다고 해도 대부분은 자신이 파고드는 좁은 땅을 깊게 판다. 세상은 커졌고 지식은 깊어졌지만, 그만큼 서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과학자는 감정 없는 계산 속에, 철학자는 근거 없는 감상 속에 갇힌 채 서로를 의심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서로의 언어를 모르게 되었을까.
사실 과학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Science’라는 말이 생기기 전, 그것은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이라 불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면서도 동물의 해부를 기록했고, 탈레스는 “만물은 물이다”라 말하며 물리학과 형이상학을 동시에 열었다. 플라톤의 제자 에우독소스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하며 별의 철학을 썼고, 중세의 이븐 시나와 이븐 루슈드는 신학과 의학, 수학과 윤리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지식은 나뉘지 않은 하나의 바다였다.
근대의 문턱에서도 그 경계는 여전히 희미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우리가 흔히 철학서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책은 그가 발표한 과학 논문들 — 『기상학』, 『광학』, 『기하학』 — 의 서문이었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하면서 동시에 빛의 굴절을 계산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저자이자, 바람의 방향과 지구 자전에 관한 물리학 논문을 쓴 학자였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철학자이면서 색채이론에 관한 논문을 남겼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운 물리학자였지만, 동시에 신의 질서와 종말론을 탐구한 신학자였다. 그들에게 과학은 곧 철학이었고, 철학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또 다른 실험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분업, 그리고 학문의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지식의 지도는 찢어졌다. 인간의 사유는 점점 더 미세한 틈으로 흩어졌고, 각자는 자신이 속한 울타리 안에서만 진리를 증명하려 했다. 그렇게 과학과 철학은 서로의 언어를 잃었다. 하지만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존재로서, 두 세계는 여전히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며 움직인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오독하지만, 바로 그 오독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태어난다.
20세기 초, 물리학자들은 세계의 가장 깊은 층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결과를 마주했다. 입자는 관찰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관찰자의 시선이 그것의 상태를 결정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보어의 상보성 이론은 현실의 본질이 ‘관찰’이라는 행위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과학적 발견은 곧 철학과 예술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물리학자들이 입자의 확률을 계산할 때, 철학자들은 인식의 불확실성을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물리학의 수식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았다.
“세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보는 만큼만 존재한다.” 과학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순간이었다. 물론 이는 엄밀한 과학적 해석이 아니라 창조적 오독이었다. 하지만 그 오독은 인간에게 새로운 책임을 일깨웠다. 세계는 관찰자 없이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이 세계를 결정한다는 자각. 그것은 과학의 결론이 아니라 윤리의 언어였다. 양자역학은 불확실성을 두려움이 아니라 겸허의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다.
반면, 19세기의 또 다른 과학인 진화론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찰스 다윈은 생명의 다양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가장 적응한 종이 살아남는다”고 말했지만, 그 말에는 경쟁의 찬양도, 우월의 논리도 없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관찰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문장을 사회에 옮겨놓았다. 허버트 스펜서는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문명과 인종, 계급의 질서에 끼워 넣었다. 그렇게 사회진화론이 태어났다. 제국주의는 그것을 이용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고, 나치는 인종청소의 논리를 그 안에서 찾았다. 다윈은 인간의 교만을 반성시키려 했지만, 인간은 그 말로 다시 교만을 합리화했다. 과학의 언어가 권력의 언어로 변할 때, 오독은 창조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나는 이런 역사를 떠올릴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해석하는 존재’인가를 실감한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본다. 오독은 지식의 오류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다. 다만 그 오독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양자역학의 오독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었고, 진화론의 오독은 인간을 오만하게 만들었다.
한쪽은 “진리는 관찰자와 함께 있다”고 말하며 책임을 일깨웠고, 다른 한쪽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하며 폭력을 정당화했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만의 오독을 시도해보려 한다. 과학을 왜곡하지 않되, 거기서 오는 영감과 사유의 실마리를 붙잡고 싶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불확실성을 겸손의 언어로, 진화론의 세계에서 경쟁을 공존의 언어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과학은 진리를 말하지만, 철학은 그 진리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다. 진리를 향한 오독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 그리고 어쩌면, 칸트의 말을 조금 바꾸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 없는 철학은 공허하고, 철학 없는 과학은 맹목적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다시 해야 할 일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 혹은 서로의 언어를 기꺼이 오독하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