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어학연수 한번 다녀온다고 내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
나의 20대는 다를 줄 알았다.
뚜렷한 꿈이 없어 숱한 고민에 빠졌던 10대를 지나 20대가 되면 반듯한 직장, 자유, 독립, 자가마련, 연애, 결혼 등 모든 것이 타임라인에 맞춰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다. "때가 되면 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을 남발하던 때가 무색할 만큼 20대는 지극하게 평범하고 놀라우리만치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나마 그중 확실하게 보장받은 것은 '자유', 성인이 된 자유다. 법적으로 음주가 가능해지고 더 이상 막차가 끊길까 불안해하지 않고 언제든 당당하게 택시를 타고 귀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알바에만 국한되지 않고 회사에 정식으로 취업할 수 있는 등 종사할 수 있는 직업의 범위도 넓어졌다.
하지만 내 삶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애초에 꿈이 없었기에 꿈의 직장도 없었을 터. 일단은 내 밥벌이라도 하면서 고민해 보자는 생각에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회사들 위주로만 공략하며 일단은 버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대 초반의 나에겐 직업정신 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주말마다 친구들을 만나 놀고 내 앞가림 정도만 할 수 있는 정도로 버는 것에 안주하니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이 회사 저 회사 전전하며 이직을 밥먹듯이 하기 일쑤였다.
남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대학 졸업장, 토익, 기술 자격증 등 자신 있게 내밀만한 스펙하나 없던 나는 비로소 24살이 되어서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공부는 늦게 할수록 달다 했나, 왜 이제야 시작했을까라는 후회가 밀려올 정도로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이 전혀 괴롭지 않았다. 그렇게 서서히 감을 잡다 보니 “영어를 배웠으면 써먹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혼자만 내뱉지 말고 무대를 넓혀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나를 던져보자 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이 생각은 곧 ‘미국 어학연수’라는 결승점에 도달했다.
유학도, 교환학생도, 취업도, 이민도 아닌 관광비자로 다녀오는 어학연수는 그저 여름휴가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그 3개월을 준비하는 과정에 들인 시간과 돈, 뜻밖의 변수에서 온 갈등들을 헤쳐나갈 때마다 얻는 경험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과연 어학연수를 다녀온다고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까?”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긴 할까?” “다녀와서도 내 삶이 그대로면 어쩌지?” 등 아무리 결단을 내려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마련이었지만 이 또한 내가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길이기에 난 그 불확실함에 베팅을 걸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만 25세가 되던 해, 나는 퇴사와 동시에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