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싫어하는 그 행동과 닮아가는 나.
또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는다. 최신의 일보다는 과거의 일을 열거하더니, 이내 자신의 자식 자랑으로 이어진다. 그 분의 첫째 아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고 했다. 유학을 갔다왔다는 얘기와, 다시 유학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귀에 딱지가 앉은 그 질문으로 이어졌다.
"결혼 생각은 없으세요?"
자신의 딸은 독신주의자라 걱정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결혼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며, 또래보다 안정적인 삶을 도모할 수 있단다. 듣기 싫은 말을 쏙쏙 골라하는 것도 재주일테지만, 마지막 화룡정점으로 그 발언의 열기를 더한다.
"우리 딸이랑 나이가 비슷해서 하는 말이에요."
불과 3, 4년 전의 나였다면 우레와 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자신의 딸도 제멋대로 주물럭거릴 수 없으면서, 남의 귀한 집 자식에게 자신만의 잣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모습에 자칫 감정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발언을 서슴없이 벌컥 뱉어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트러블을 사서 찾아내던 질풍노도의 20대는 지났는지,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 그러실 것 같아요."라며 애써 공감하는 표정을 지보였다. 나름의 온화한 표정이 잘못이었을까? 이내 왜 결혼 생각이 없냐고, 다소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을 콕 집어 묻는다. 당황하는 내 모습이 눈에 보였는지, 자신이 아름아름 강사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한다는 다소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버벅이며 꺼냈다.
나는 돈부터 자녀 문제까지 모두가 고민이라고 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했지만, '젊었을 때에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어'라는 마인드로 매년 해외 여행을 2번은 갔다 온지 벌써 5년이 지났다. 멋쩍은 미소로, 통장은 비었지만 마음은 풍요롭다고 말했다. "요즘 애들이 많이 그렇죠."라며, 애써 공감하는 리액션을 해주신다. 나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얄팍하지만, 전공 과목으로 아동 발달과 아동 심리 등이 있었다. 부모의 책임에 대한 수업도 들었다. 우리네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순전한 '나'를 포기해야 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비로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책임감을 다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고, '나'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가 없어 결혼 자체를 보류중이라고 나름 똑부러지게 전달했다. 나의 언어 전달 능력이 형편없었던 것일까?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내 넘어서는 안 되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얼마나 벌었는데요? 우리 둘째는 3년 일했는데, 6천 정도 모았다는데."
자칭 강사님이 깨끗이 비운 커피 잔을 내다 놓으며, 무언가가 강렬하게 오버랩되었다. 어제 내가 우리 직원들과 길게 나눴던 그 알량한 얘기들이 말이다. 나름 걱정 혹은 조언이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내가, 비워진 커피 잔 속에 진하게 굳은 커피 자국처럼 선명히 떠올랐다.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집중해서 일하자고 했다. 성격상, 이런 직업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다소 비수로 꽂힐 말들도 서스름없이 붙였다. 비수만 꽂았을까? 내 과거들을 들먹이며, 나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었는데 너희는 왜이렇게 열심히 할 마음이 없냐며 타박했다. '이렇게 하면 같이 오래 일 못 한다'는 다소 무거운 엄포까지 이어지며, '요즘 애들'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리며 잔소리에 잔소리를 더해갔다.
집에 오며 한참을 후회했다. 내가 싫어했던 선배 혹은 대표 혹은 팀장들을 닮아가는 것 같아, 갑자기 깊은 사색에 잠겼다. 각자의 열정과 나름의 방법으로 나와는 다른 노력을 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나의 관찰력을 믿고 그들을 재단하여 판단했다는 생각에, 큰 오만이였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정말 그들을 위한 조언을 했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었다. 개인적인 일들을 나의 잣대로 들이민 것이 아니다. 10년차 선배로서의 살이 될 수 있는 업무에 관한 조언이다. 이것은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자기합리화이며, 스스로에 대해 지나친 면죄부를 주는 일일까?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에게 물어도, 그들은 큰 도움이 됐다며 손사레칠 것이다. '선배'라는 이유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8년 전의 나처럼 말이다.
"이런 조언이 꼰대같이 들려?"
또래보다 분명 돈을 적게 번 것이 맞다. 결혼이 안정감을 준다는 것도, 결혼을 해보고 많은 지인을 둔 그 분의 입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분명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잔뜩 해주고 싶으셨을 거다. 언젠가는 혼자 외로이 방 안에 꾸벅꾸벅 졸고 있을 흰 머리의 나를 걱정해주시는 따듯한 말이다. 강사님이 커피를 다 비우기 전, 나는 다소 내 자신을 내려놓으며 작은 한숨과 함께 한탄했다.
"결혼 마음 먹는 것이 마음 먹는 것처럼 쉽지가 않네요."
강사님은 자신의 세대가 아닌 것에 대해서 쉽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똑똑히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며 진심 어린 위로로 마지막 커피를 삼키셨다. 강사님의 뒷모습에서 예전의 버스 안 풍경이 불연듯 떠올랐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서있을 때면, 어김없이 '가방은 이리줘'라며, 쭈굴해진 손을 내밀어 주시던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그 따듯했던 손길 말이다. 세상이 차가워지면서, 그런 따듯한 작은 위로들을 '부담스럽다'라는 형용사에 가둬놓았지만, 아직 우리 어른들은 젊은 세대의 힘듦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으신 것이 아닐까. 비록 그 방식이 서툴고, 부담스럽다하더라도 말이다.
나 또한 가시밭을 조금 더 쉽게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혹, 사이즈에 맞지 않은 작은 구멍이라면 들어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직원들도 험한 가시밭을 모두 건넜을 때의 환희를 경험할 자격이 있으며, 작은 구멍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판단을 스스로 내릴 깜냥이 있을 것이다. 그저 나도 한 가지의 인생길밖에 살지 못하여, 내가 했던 최선의 방법으로 조언하는 것이니, 부디 자신에게 알맞는 조언만 떼다 가져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한걸음 못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